내가 나다울 수 있는 곳

사람이 고향이 되는 순간

by 예원

고향이라고 느끼는 건, 그곳에 누가 있느냐가 가장 중요할지도 모른다.

나는 학창 시절 자주 이사를 다녔다. 길어야 4년, 짧게는 2년마다 새로운 동네와 학교에 적응해야 했고, 그때마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 그래서인지 중학교 때쯤엔 ‘굳이 친구를 만들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깨달았다.


전학을 갈 때마다 나는 새로운 페르소나를 만들어냈다. 활발한 나, 조용한 나, 똑 부러진 나. 다양한 이미지를 입고 살아보는 건 꽤 즐거웠다. 하지만 페르소나를 쓰고 사귄 친구와의 관계는 늘 오래가지 못했다. 그 덕에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눈 친구는 거의 없었다.


그러다 유일하게 전학을 가지 않았던 고등학교 시절, 처음으로 ‘나다운 나’를 보여줄 수 있는 친구를 만났다. 우리는 많은 시간을 함께했고, 그만큼 나는 그 친구에게 기대며 집착하기도 했다.


부모님은 비교적 방임적인 양육 방식을 가진 분들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걸 존중해 주셨고, 덕분에 나는 항상 마음만 먹으면 떠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고향’이라 부를 만한 곳이 딱히 없었다. 오히려 맞벌이 부모님 대신 날 돌봐주신 할머니 댁이 내겐 더 고향처럼 느껴졌다.


성인이 되어서는 마음 한편에 태어나고 자란 서울을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 20대의 서울은 나에게 유난히 냉정하고 어두웠기 때문이다. 2호선을 타고 한강을 건널 때마다 저 많은 빌딩들 사이에 왜 내 자리 하나쯤은 없는 걸까 현실을 원망했다. 마치 발이 땅에 닿지 않은 채 허공에 떠 있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라도, 때론 미국까지. 그 덕분에 ‘고향에 직장을 얻고 싶다’는 사람들의 마음이 선뜻 이해되지 않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그와 함께 있을 때만큼은 나의 모든 모습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낯설었던 도시의 공기도 처음으로 따뜻하게 느껴졌다. 결혼 후에는 신기하게도 더 이상 어디로든 옮겨가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이제는 안다.

내 발이 단단히 땅에 닿을 수 있도록 만들어준 사람, 그 사람이 있는 곳이 바로 내 고향이라는 걸.


내 고향은, 남편이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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