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꾸준함이 만드는 시간의 차이
닮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스스로 한 약속을 변명하지 않고 지키는 사람이다. 한 분야에서 이름이 난 사람들은 자신과의 약속을 어기지 않고 지켜낸다. 반대로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불평과 남 탓만 하는 사람은 성장하기 어렵다.
요즘 운동을 꾸준히 하지 못했다. 해외 출장을 온 탓도 있지만, 퇴근 후에도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지 못한 채 하루를 흘려보내는 날이 많았다. 한 번 흐름이 끊기자 모든 게 무거워졌다. 관성의 법칙은 물리학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삶에도 분명히 작용한다.
매일 운동하던 때에는 강박처럼 체육관으로 향했다. 그런데 딱 한 번 쉬었을 뿐인데, 그 ‘한 번’이 몇 주를 끌어버렸다. 쉬는 데에도 관성이 생긴다. 한 번 놓기 시작하면 그 방향으로 힘이 붙어 계속 흘러가게 된다.
자기 계발서들이 습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꾸준한 사람은 여행 중이거나 바빠도 어떻게든 운동할 시간을 찾는다. 반대로 멈춘 사람은 ‘지금은 좀 쉬어도 되겠지’ 하며 멈춘 상태를 합리화한다. 습관의 무서움은 바로 이 관성의 방향에 있다.
결국 인생에서 중요한 건 ‘매일의 작은 꾸준함’이다. 하루 10분이라도 좋다. 그렇게 쌓인 10분이 10년, 20년이 지나면 엄청난 차이를 만든다. 외국어 공부든, 운동이든, 초반에는 성장의 속도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시기를 견디며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만이 어느 순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자리 위에 서 있게 된다.
문제는, 대부분이 그 ‘하찮은 시절’을 견디지 못하고 포기한다는 것이다.
작년부터 브런치에 글을 올리며 반응이 없어 아쉬운 마음이 들곤 했다. 그런데 이동진 평론가가 19년 동안 거의 매일 블로그에 글을 써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스스로 조금 부끄러워졌다. 아직 충분히 해보지도 않았으면서, 나는 너무 쉽게 실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외국인 앞에서 말문이 막히는 나, 운동을 시작했지만 남의 시선이 신경 쓰여 금세 그만두고 싶은 나. 누구에게나 그런 시작의 시기가 있다. 진짜 승리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 꾸역 꾸역이라도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
어떤 관성을 가지고 살아왔는지는 40대, 50대, 60대에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태도에서 드러난다. 늘 배우고 새로운 것에 도전해 온 사람은 그 자세가 삶에 묻어난다.
요즘 새삼 관성의 힘을 느낀다. 다만 예전과 다른 건, 이제는 그 방향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방향만 바꾸어도 관성은 나에게 도움이 된다. 멈춤의 관성 대신, 꾸준함의 관성으로 조금씩 다시 굴러가 보려 한다.
한 번 사는 인생, 다른 사람들의 삶만 부러워하다 끝낼 것인가?
그러기엔 스스로가 좀 부끄럽지 않을까.
지금의 관성을 깨고 새로운 관성을 만들어내자.
그리고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