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형이랑 결혼했다 말하던 그녀가 변했다
오늘 하루는 해외주식 펀드매니저인 남편이 되어.
나의 아내는 변했다. 아이를 낳고는 더더욱. 12년 전에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달콤한 연애시절까지 (아니 신혼 때까지도) 그녀는 나를 정말 잘 챙겨줬지만, 요즘은 나에게 짜증과 화만 낸다. 지난주에 퇴근 후 오랜만에 친구들과 모임을 마치고 난 뒤, 허기가 져서 라면을 끓여 먹을 때 냉장고에 김치 좀 찾아달라고 했더니, 정말이지 불같이 신경질을 냈다. 한숨을 푹푹 쉬더니, “애도 아니고 눈이 없니? 손이 없니?”라고 나를 비꼬며 빈정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 여자가 정말 나를 사랑해서 결혼한 것은 맞는지 의심이 된다. 예전에는 사람들과 같이 나눠먹으라며 회사에 도시락을 싸다준 적도 있고, 나를 살뜰히 챙겨주는 모습이 좋았는데, 그런 모습은 눈을 씻고 찾아볼 수도 없다. 그래서 가끔은 서운하다.
아내는 아들이 태어난 이후 온 우주가 이 아이를 위해 돌아가는 것처럼 행동했다. 아이를 본답시고 내가 60살까지 다니길 원했던, 회사 복지가 좋아 여자가 다니기에 꽤 괜찮은 직장으로 소문난 유명 모 기저귀 회사도 관둔다고 했다. 나는 그때 필사적으로 그 결정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아이를 돌보며 일하는 엄마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회사 근처로 이사도 제안했고, 최대한 도와주려고 했는데 아내는 너무 쉽게 사직서를 내버렸다. 그때 그녀에게 느낀 실망감, 당혹감, 막막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술을 마셨다. 군대 이후 끊었던 담배도 피웠다. 나는 외벌이 가장으로서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 회사에서 누구보다 더 최선을 다해 일을 했다. 아이를 돌보는 데는 소질이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잘하는 것이 우리 가족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회사에서 일하는 것보다 가정과 아이를 선택한 것처럼, 나도 내 나름의 방식으로 최선의 선택을 했다. 회사 일에 집중하기.
아이가 3살 때쯤 일이었나? 새벽에 자고 있는데 아이가 이불에 갑자기 구토를 했다. 열도 나는 것 같았다. 이런 적이 처음인 초보 엄마 아빠는 그 길로 근처 응급실에 달려갔다. 병원에서 온갖 종류의 검사를 다하고 날이 밝아와 출근 시간이 가까워졌다. 요로감염이 의심된다며 뭐 검사를 해보자는데 나는 의사 말을 믿기가 힘들었다. 애는 긴장해서인지 소변을 보지도 않고 몇 시간째 아이가 쉬하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불필요해 보였다. 회사에 가야겠다고 말하자, 애가 지금 이 지경에 회사를 가는 게 말이 되냐는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그래도 결국 설득해서 추가적인 검사를 하지 않고, 대형 병원 응급실에서 온갖 종류의 약을 처방받아서 집으로 왔다. 다른 병원에 갔더니, 요로감염은 무슨, 그냥 구내염이었다.
아내는 내가 회사 일보다 아이 양육에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면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내 주변에 없는 다정다감한 아빠들의 이야기를 내 앞에서 하지는 않지만 은연중에 가끔 누구네는 뭐 했다더라?라고 이야기를 하면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밤에 자기 전에 책을 읽어주는 문제도 그렇다. 나는 애랑 공을 차고 밖에서 놀면 놀았지, 책을 읽어주는 것은 내 스타일에 맞지 않는다. 책은 혼자 읽어야지, 왜 애 자립심이 떨어지게 엄마가 읽어주냐고 말했을 때, 뭐 이런 아빠가 다 있지? 하는 눈빛으로 째려보던 그 눈빛만 생각하면 아직도 등골이 오싹하다.
얘기하다 보니 한 가지 서운한 게 더 생각났다. 나는 간식을 과하게 챙겨 먹는 편이다. 그중에서도 아이스크림과 과자를 좋아하는데, 내 취향보다는 아들이 좋아하는 것을 더 많이 사다논다. 연애할 때 31가지 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에서 나의 최애 아이스크림을 통째로 사 가지고 걸으면서 같이 먹어주기도 했는데 요즘 그녀는 아이스크림은 입에도 대지 않는다. 내가 너네 맛있는 것 사주려고 얼마나 지옥 같은 회사에서 열심히 뼈를 갈아 일하고 있는데, 내 고생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 섭섭하다. 식사시간에도 아내의 아들 사랑이 여실히 드러나는데, 아들이 제일 좋아하는 연어초밥을 내가 몇 개 뺏어먹자, 애보다 더 화를 냈다. 김치 못 찾는다고 구박하고, 나를 위한 간식도 안 사주고, 회사에서 고군분투하며 애쓰는 나에게 고생한다고 말도 안 해주고, 힘들다고 말하면 그만 좀 징징대라며, 너만 힘드냐, 나도 죽겠다라고 외치는 듯한 나의 아내. 나를 마치 매달 20일 날에 월급이나 보내는 기계인 양 취급하는 것 같은 그런 아내의 눈빛과 말투가 오늘도 참 쓸쓸하다. 결혼 전에 내가 무슨 말만 해도 까르르 웃어주고, 신경 많이 써주던 그 시절의 내 여자 친구가 그립다. 주식 시장은 오늘도 또 왜 폭망인가. 나에게 좋은 날은 과연 언제 오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