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변명할 말이 없었다. 입이 아주 썼다. 짧았던 시간이었지만 진심으로 사랑했노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어차피 지금 말하면 그 어느 것도 진실은 아닐 터였다. 맞은 편에 앉은 사람의 동그란 눈에서는 하염 없이 눈물이 흘렀다. 물기에 가려진 눈동자 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분노. 실망. 원망.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사랑.
앞에 놓인 뜨거운 커피가 채 식지도 않았다. 그는 그녀가 그 커피라도 본인 얼굴에 대차게 부어버리길 바랐지만, 그녀는 오직 울기만 했다. 쓰게 흐르는 커피 향이 도저히 견디기 어려워질 때 쯤 그녀가 일어섰다. 그리고는 단번에 뒤를 돌아 가게를 나가버렸다. 그는 무언가 허무했고, 얼떨떨 했다. 뺨이라도 맞거나, 카페에서 만난다면 적어도 앞에 놓인 음료를 흠뻑 뒤집어 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신체는 멀쩡했다. 그런데 그게 너무나.
그게 너무나도 그를 힘들게했다.
커피는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는데, 입이 아주 쓰다.
그는 자신이 남들의 세치 혀에 놀아난 것일 뿐이라고, 목숨을 다 받쳐 사랑할 사람은 오직 당신이라는 여자 하나 뿐이라고 변명하고 싶었다. 그럴싸하게 진심을 담아 호소할 마음으로, 커피를 잔뜩 뒤집어 쓴 채 절망적인 모습으로 애처롭게 변명하고 싶었다. 그런 '연극'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녀는 그런 연극 같은 덜떨어진 짓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남자는 허무했다. 무엇이 허무한지는 몰랐다.
커피처럼 생긴 까만 물을 입에 털어 넣는다. 목구멍이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