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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g Greem Apr 26. 2023

EP.1 이별후유증에 시달리다

불면증과 악몽, 그리고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 후에 오는 것들에 대하여

 해가 길어졌다. 초저녁만 되어도 금방 어두워지던 하늘이 6시가 한참 지나서도 여전히 밝았다. 길었던 겨울이 완전히 끝나가는 모양이다. 거의 일 년만에야 선명하게 느껴지는 계절의 변화에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이번  어떤 봄을 보내게 될까. 지난 봄은 유독 기억이 나지 않는 탓이다. 지난 해 나는 사계절의 변화 말고도 많은 것들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한 해가 다 지나간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봄밤에 장례식장 로비에서 비를 보며 멍하니 앉아있던 기억, 그 밤의 아직 쌀쌀했던 공기, 그리고 이후로 꽤나 오랜 시간동안 악몽에 시달렸던 기억뿐이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갑작스럽게 치러졌던 그 장례식은 어린 날 나를 거의 키워주시다시피 했던 외할아버지의 장례식이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1년이 지나 다시 맞이하는 봄이다. 내 마음의 일부는 이별 후로도 한참을 그 봄에 머물러 있었다. 장례식 이후 나는 불면증과 악몽으로 고통 받았다. 간신히 잠이 들면 꿈은 나를 할아버지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았던 안치실로, 모든 것이 잿빛이었던 그곳으로 다시 데리고 갔다. 할아버지가 어색할 정도로 반듯하게 누워있던 은색으로 번짝이던 금속 안치대, 은회색 머리칼, 잿빛 얼굴, 마지막으로 잡아보았을 때 온기 없이 뻣뻣하던 잿빛 손의 감촉까지. 모든 것이 그 날 그대로였다.


 매일 밤 꿈은 대체로 비슷했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누워있는 얼굴이 바뀐다는 것이었다. 나는 매번 눈물을 참고 다가가 수의에 쌓인 채 누워있는 사람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러면 어느 날은 할머니가, 엄마가, 이모가, 동생이 대신 누워있었다. 같은 꿈을 꾸는 대도 불구하고 꿈속의 나는 번번이 그게 꿈인 걸 몰랐다. 그래서 매일 소중한 사람을 잃는 경험을 했고 울면서 잠에서 깨어났다. 그러나 잠에서 깨어나도 기다리는 건 '꿈이었다'는 안도감이 아닌 할아버지가 더 이상 이 세상에 함께 있지 않다는 현실이었다. 고통스러웠다.    


 장례식 이후 금방 봄이 완연해졌지만 좋아하던 봄꽃 구경을 가지 않았다. 활짝 폈던 벚꽃이 금방 다 져버렸다는 사실도 다른 사람들을 통해 간신히 알았다. 날이 더워지는 것도, 다시 쌀쌀해지는 것도 잘 느끼지 못했다. 매년 가장 좋아했던 여름 옷 쇼핑을 하지 않았다. 당시엔 일상적인 것들을 즐길 수 있는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나는 괜찮아진 척을 하는 데에 온 힘을 다 쓰고 있었다. 가을이 와도 매년 즐거운 마음으로 구경하던 계절의 변화가 기쁘게 와닿지 않았다. 노랗고 빨갛게 물드는 낙엽 색깔이 이젠 괜찮아지기를 재촉하는 알람처럼 느껴졌다. 소중한 사람을 보낸 마음은 한 해가 지나도록 괜찮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일상의 시간은 야속하다 싶을 만큼 빠르게 흘러갔다. ‘이제 괜찮아질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 나는 스스로를 다그쳤다.   


 그래야할 이유가 많았다. 걱정시키지 않기 위해서, 내가 슬퍼하면 더 슬퍼할 사람들이 있으니까, 정신적으로 연약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서 등등. 그러나 사실 나는 괜찮지 않았다. 우연히 본 TV 속 할아버지들의 모습에도, 길가다 마주친 할아버지와 어린 손녀의 모습에도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를 가장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었던 사람이 더 이상 이 세상에 함께 있지 않다는 사실이 나를 한없이 공허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공허함 뒤로 밀려드는 자주 함께 하지 못한 마지막에 대한 후회, 후회, 또 후회.


 힘든 일에는 시간이 약이라던데, 기다려도 슬픔이 멈추지 않고 일상에도 지장을 주기 시작하자 나는 점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일상이 무너지는 느낌인데 지금 나는 정신적으로 괜찮은 걸까. 성인이 된 이후 제대로 겪는 첫 이별이라 그런걸까. 언제쯤 괜찮아질까 등. 그러나 나를 가장 두렵고 무기력하게 만들었던 것은 이런 일상에 대한 걱정들만은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나의 무의식은 더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이별 후에야 제대로 알게 된 것들 때문이었다. 


EP.2 로 이어집니다. 



P.S.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을 겪은 적이 있나요? 다른 분들은 이별 후에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이별과 소중했던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데 가족들과 나누기는 어려울 때 누군가와 감정을 나누고 싶진 않았는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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