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에게 보내는 스물아홉 번째 편지
정말 여름의 끝 자락인가 싶다가 다시 더워지는 요즘이야. 9월부터 새로 벌려놓은 일들 시작하는 오늘이었어. 오늘은 한국 시차에 맞춰 일어나느라 아침 6시부터 강제적으로 기상했어. 오랜만에 일찍 일어날려니까 너무 힘들더라. 근데 안 되는 건 아니더라고, 신기하게도. 지난달 해가 중천에 떠있을 때까지 잠을 자다가 겨우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한 날들이 많았어. 어디선가 들었는데 사람이 자유시간이 하루 5시간 이상 있게 되면 무기력 해질 가능성이 높다 하더라. 어떻게 보면 산만하게 일을 벌이는 것도 조금이라도 스스로를 더 나은 상황에 놓으려고 하는 노력이 아닐까 싶어. 하루를 충만하게 보내지 못한 날은 괜히 그 하루가 아쉬워서 오래 책상에 앉아있는 버릇이 있었어. 딱히 뭔가를 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냥 일종의 죄책감 같은 거였을까. 항상 긴 낮 시간을 어영부영 보내고 나면 저녁부터 분주해지면서 정작 하려고 했던 일들을 시간에 쫓겨 마무리 짓지 못하는 날 보면 늘 답답한 마음이 있었어.
이사를 와 뉴저지에 정착한 지도 벌써 3달이 다돼 가. 솔직히 비어있는 시간을 처음에는 사람들로 채워봤고, 더 자극적이고 재밌는 일들로 채웠었어. 그렇게 분명 바빴는데 마음 한편에는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있더라. 그래서 뉴욕의 거리랑 야경도 감탄사보다는 어느 정도의 익숙함으로 다가오는 이 시점에서 이제는 조금 다른 방법을 택해 볼까 해. 많은 경험을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조금 더 확실한 루틴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아. 휴가도 일상을 열정적으로 살아낸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 같은 게 아닐까. 이곳에 있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돼. 뉴욕은 언제나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이지만, 거리에 나와있지 않은 사람들은 빽빽이 들어서있는 저 건물들 한 곳에 자리를 잡고 더 멀리 있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단 걸 이제껏 보지 못했던 거 같아. 그렇다고 내 성격상 아마 하루종일 집에 있는 건 하지 못할걸 알아. 비록 워크는 없지만 워라밸을 만들어 가보려고.
비워내야 채울 수 있다는 마음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는 9월.
외부의 것들에 대한 관심을 나한테 조금 더 돌려볼까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