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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Jan 07. 2022

점심 한 끼, 짜장면

                                

한 끼의 점심,

누구에게는 그저 그런 일상의 시간,

누구에는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주는 시간,

누구에게는 정성스러운 끼니에 감사하는 시간,

누구에게는 함께 해줌을 감사하는 시간,

누구에게는 영혼이 없는 밥상을 받는 시간, 

오늘 나와 함께 하는 점심의 한 끼의 시간은 어떤 느낌의 식사일까?     


어느 날, 인근에 있는 중학교 위클래스에서 연락이 왔다. 

한 소년이 학교생활에 어려움이 있다며 도움을 요청하였다. 

여러 가지 정황을 보니 아빠는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일을 해서, 소년의 학업에 전혀 신경을 못 쓴다고 하였다. 


엄마는 지적장애로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다고 하였다. 

이런 가정에서 성장하고 있는 학생은 온종일 집 밖에 나오지 않으려고 하였다. 

자기 방에서 컴퓨터 게임을 밤새 하고, 아침에 일어나지 못해 등교를 못 하는 날이 지속되었다. 

출석 일수가 모자라 학교에서는 초비상이었다.


학교 측과  청소년 상담센터, 정신건강복지센터 담당자와 긴급 사례회의를 하였다.

학생을 만나보니, 얼굴이 햇빛을 못 본 티가 많이 날 정도로 푸석하고, 창백했다. 

몸은 왜소하였으며 맥이 없어 보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말이 통하지 않은 엄마와는 소통을 안 한 지 꽤 오래되었다고 한다. 

엄마의 말도 안 되는 잔소리가 싫어 컴퓨터 앞에서 헤드셋을 끼고 게임만 한다고 하였다. 


일단 학교 출석을 위해 어떤 도움을 주면 되냐고 하였더니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들다고 하였다. 

회의에 참석한 기관들은 조를 짜 아침에 자녀를 깨워 등교시키는 것에 의견을 모았다. 


학생 또한 그렇게 하면 학교는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였다. 

회의 이후 매일 학생을 등교시키는 프로젝트에 각 기관이 열 일을 하였다.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았다. 


이른 아침부터 엄마는 어디를 가는지 집에 없었고, 잠이 들어버린 자녀가 초인종 소리를 듣지 못하는 건지 일부러 못 듣는 척하는지 문을 안 열어 주는 게 다반사였다. 

어떤 날은 담당자가 창문이 열려 있는 곳으로 들어가서 자녀를 깨운 적도 있었다. 

기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녀의 출석 일수를 채우기가 힘들었다. 


그때 마침 국립중앙청소년 디딤센터에서 공문이 내려왔다.  

국립중앙청소년 디딤센터는 정서 · 행동 영역에서 우울, 불안, ADHD 등의 문제로 학교생활이나 대인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 대상으로 상담·치료·보호·자립·교육 등의 전문적이고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여성가족부가 설립한 거주형 치료·재활시설이다. 


이곳에 입교하게 되면 학교 출석도 인정해주고, 인터넷 게임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입교자를 돕는다. 


디딤센터 입소에 대해 학생의 의견을 물었다. 

당장에 학교 수업 일수를 채우지 못하면 중학교 중퇴로 학업을 마쳐야 하는 부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학생은 당장에 학교 수업 일수보다도 엄마와 한 거주지에 있는 것이 싫어 시설에 입소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학생의 아빠도 입소에 찬성하였다. 입소기간은 3개월 정도 되었다. 입소를 위한 모든 행정절차를 마쳤다. 

디딤센터의 입소를 돕기 위해 동행하였다. 

차 안에서 학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묻는 말에 짧은 말만 할 뿐이었다. 


입소시간이 점심시간 이후라 학생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무엇이 먹고 싶은지 묻자 학생은 짜장면을 먹고 싶다고 하였다. 근처 중국집으로 데려갔다. 


“짜장면 곱빼기 시켜줄까?” 

“아니요” 

“탕수육 먹을래?”

“아니요”

“....” 소년은 말이 없었다. 

“짜장면 얼마 만에 먹는 거야? 간혹 먹은 적 있어?”


소년은 고개를 숙이면서 절레절레 흔들었다.


말이 짧은 소년을 바라보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너 참 힘들었겠구나. 가족과 따뜻한 외식 한번 못했다니···’


중국집 주방에서 짜장면 볶는 냄새가 솔솔 풍기더니 짜장면이 나왔다.

“천천히 먹어”


학생이 면발을 끊지도 않고 후루룩 먹는 동안 내 어린 시절 짜장면 한 그릇의 추억이 잠시 떠올랐다. 

그 옛날 짜장면은 입학식, 졸업식 하는 날 아주 특별한 행사 이후에 먹는 별식이었다. 


간혹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아빠가 수금이 잘되는 날, 가족끼리 중국집이라도 간다고 하면 가기 몇 시간 전부터 마음이 설렜다. 


나는 중국집 가기 전까지 부모님의 마음을 살폈다.

혹여 중국집에 가기 전에 부모님의 심기를 건드려 오랜만에 먹는 짜장면을 먹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숙제도 미리 해 놓았다. 

남동생들이 싸움박질하여 외식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까 봐 노심초사했다. 

음식점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어찌나 가벼운지 중국집에 도착해서 짜장면과 탕수육을 시키면 노란 단무지와 썰어놓은 양파와 짜장을 먼저 세팅을 해주었다.


왜 이리 짜장면이 늦게 나오는 걸까? 아빠한테 식사 기도를 빨리해달라고 하고 기도가 끝나자마자 종지에 담긴 단무지를 한입 물면 아! 이 맛이야. 


종지에 담긴 단무지를 입에 넣으면 아삭거리면서 입안에 단맛과 새콤함이 가득하고 나면 그때서야 짜장면이 식탁에 올려졌다. 


그때 먹었던 풍미 가득한 짜장면은 가족들과 함께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는 기분 째지는 유년의 추억이 있다.


학생이 나와 짜장면 한 그릇을 먹으면서 어떤 느낌을 들었을까? 

그저 그런 일상으로의 점심 식사 혹은 영혼이 없는 밥상으로 느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어린 시절 가족들과 함께 먹었던 짜장면을 먹으면서 느꼈던 기분 좋은 감정이 아주 오랜 후에 내가 유년 시절에 먹었던 짜장면 한 그릇의 추억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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