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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gigam Jul 11. 2021

대성당의 꼭대기에 오르면 비로소 보이는 것

진짜 유물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

학교를 가려면 항상 기차역을 지나야 했고, 기차역 옆엔 쾰른 대성당이 있었다. 너른 광장을 둘러싼 관광지 특유의 활기찬 분위기를 지나, 광장 한켠의 현대미술관 주 출입구의 모퉁이를 돌면 작은 도서관이 나타난다. 계단을 오른 후 투명한 유리문을 열고 도서관 내부로 들어가면 가녀린 몸매에 깡마른 얼굴, 정돈된 콧수염과 셔츠차림의 사서가 반긴다. 친밀한 인사 한마디 건네는 법이 없었는데도 항상 잘 왔다는 기분을 전달하는 정중한 사람이었다. 도서관 내부는 작아서 사서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고, 소장된 책을 보려면 주문해서 사서를 통해 받아야 했지만, 절제된 태도와 말투가 부담이 없어 늘 방문하게 되는 곳이었다. 언제나처럼 미리 주문해둔 책을 받아서 도서관의 창가에 자리를 잡으면 그때부터 성당에 빠져 공부는 뒷전인 게 문제였지만.


밤 중의 쾰른 성당과 현대미술관 전경. 사진: Thomas Robbin, 출처: wikimedia


쾰른 성당의 웅장한 첨탑이 잿빛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광장에는 성당뿐만 아니라 고대 로마시대 유물을 전시하는 박물관과 전 세계 내로라하는 근현대 예술품을 소장 중인 미술관이 있다. 창밖에서 펼쳐지는 관광지 특유의 활기찬 분위기가 두꺼운 유리 통창을 사이에 두고 침묵으로 변환되는 과정을 목격한다. 마치 역사의 현장을 경쾌하게 거니는 광장을 수축시켜놓은 작은 블랙홀에 앉아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하긴, 두꺼운 책들이 강력한 밀도와 중력으로 그 무엇도 빠져나올 수 없는 시공간과도 같은 글들을 담고 있었으니까. 추측하건데 그 도서관이 역사의 중력을 가졌던 가장 큰 이유는 쾰른 성당의 남다른 육중함 때문이었으리라. 아래서 바라보는 첨탑의 거대함도 대단했지만, 첨탑을 가까이에서 보게 되었을 때의 그 충격이란! 그 육중함의 실체는 상상 이상이었다.


이 거대한 성당은 1248년 지어지기 시작했다. 수업 시간에 잠깐 실물을 볼 기회가 있었던 쾰른 성당의 설계도는 양피지의 양다리 부분에 첨탑 두 개를 그려놓은 모습이었는데, 그 모습 그대로 실제 완공이 되었다는 것도 그렇지만 1880년에야 비로소 완공이 되었다는 사실이 정말 놀라웠다. 완성되지 않은 첨탑과 함께 지냈을 600년의 세월은 어땠을까. 성당이 완공되면 세상에 종말이 온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였다고 하니, 그 분위기가 짐작된다.

Meister Arnold, West facade, 1280

600년의 세월을 견디고 마침내 완성된 쾰른 성당은 그 명성만큼이나 유명한 유물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유명한 것은 단연 동방 박사 3인의 유골함이다. 신성 로마 제국 시절 이탈리아 원정을 통해 가져온 이 유골함을 인치 하기 위해서 쾰른 성당이 지어지기 시작했고, 이 유물을 직접 보기 위해 유럽 각지에서 찾아온 성지순례객들이 구매한 양초가 성당 건립의 비용을 상당 부분 충당했다고. 이쯤에서  '동방 박사 3인의 유골함'은 과연 진짜 인가 하는 의문점이 생기게 된다. 독일 쾰른에서 온 방송인 다니엘의 말에 의하면 19세기에 사람들이 궁금증을 참지 못해 열어봤고, 그 내부에 실제로 3명의 유골이 놓여있었다고 하는데, 그게 진짜 동방 박사의 유골인지 아닌지는 솔직히 누가 알겠는가.

https://youtu.be/1Qg1EA6 teTQ


성물함은 보통 그 내용물의 모양을 본떠서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동방박사 3인의 유골함은 바질리카의 모양으로 되어있다. 고대 로마인들의 공공건물이던 바질리카는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이후 교회 건물이 되었다. 교회 건물인 성당을 의미하는 'Cathedral'은 주교가 앉던 '의자'를 일컫는 말에서 유래했는데, 실제로 주교의 의자는 각 성당마다 중심에 놓여 있어 그 상징적 의미가 위치적으로 드러난다. 가령 성 베드로 성당의 중앙 제단에는 17세기 베르니니가 만든 청동 주물 속에 네 명의 교회의 아버지가 '베드로의 의자'를 들고 있는 형상이 세워져 있다. 베드로가 로마 선교를 하는 동안 앉았던 의자의 파편을 모아 만든 것이라 전해지는 이 유물은 사실 875년 서프랑크의 카를 2세가 서로마 황제 대관식을 거행할 때 교황청에 기증한 의자라고 한다.


Bernini, Cathedra Petri, 1657–1666

성 베드로 성당은 로마 선교를 하다가 순교를 당한 베드로의 무덤 위에 세워졌고, 이는 마태복음 16:18의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라는 말씀의 실현이라고도 볼 수 있다. 교회의 정통성을 드러내기 위해 베드로의 유물을 전면에 드러낸 것이다. 의자가 진품인지 가품인지는 둘째 문제였을 거다. 화려한 청동 조각으로 치장까지 한다면 더 무엇이 필요했을까. 쾰른에 이처럼 거대한 대성당이 세워지게 된 것도 동방 박사 유골함이 주는 정통성 때문이었다. 비록 그 정통성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성 베드로 성당이나 쾰른 성당 모두 '진짜' 유물을 찾는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그 원동력으로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최대 규모의 예술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다. 쾰른 성당의 높은 첨탑 위에 올랐을 때 가장 감명 깊었던 것은, 그 누구의 눈길도 닿지 않을 성당 꼭대기 첨탑의 조형물의 완벽함이었다. 인간이 아닌 하나님이 지켜보고 계시다는 마음으로 성당을 완공했을 사람들의 진심. 그 육중한 진심이 완성되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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