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은 진실을 보장한다
세월의 마모에 반들반들해졌지만 결코 울퉁불퉁함을 잃지 않은 뮌스터 구시가지의 돌길을 걷는 건 꽤나 발이 아픈 일이었다. 산책도 구두도 포기하지 않고 동네의 동그란 도심을 걷고 또 걷다가 발이 엉망이 될 때 즈음, 현대식 도로가 이어지는 곳으로 빠져나가면 숙소가 있었다. 천장이 높고 거실벽 한쪽 벽면이 강렬한 핑크색이었던 집. 나의 독일에서의 첫 집이었다. 집주인 울라는 심리 상담을 하던 사람이었는데, 상담만으로 생활이 어려웠는지 방 한 칸을 외국인 유학생에게 저렴한 가격에 내줬다. 큰 키에 말수가 적고 수줍음이 많았지만, 웃을 때는 항상 함박웃음 짓던 사람. 어설픈 미소나 억지웃음을 한 번도 내비치지 않았던 울라는 세입자인 나를 참 따뜻하게 대해줬다. 그런 울라와의 인연의 끈은 길지 않았다. 당시 스무 살이던 나는 미래에 대한 온갖 걱정으로 갈팡질팡 하다 갑작스러운 한국 방문을 결심했고, 당장에 세입자가 나가면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지는 울라의 눈 주위가 당혹감과 서운함에 붉어지게 했으니. 마침 방을 찾고 있던 지인과 울라를 연결시켜줬지만, 결국 난 울라에게 계약서의 필요성을 상기시킨 세입자가 되고 말았고, 그렇게 집주인과 세입자의 순수한 우정에 금이 갔다.
두 달 만에 독일에 돌아온 나는 숙소라고 부를만한 방을 찾기 위해 일곱 번의 이사를 일 년 반 동안 다녀야 했다. 그 후로도 꽤 어리석은 선택을 많이 했고, 그러는 동안 유학 생활은 마무리되었다. 어찌 보면 첫 단추와도 같았던 나의 뮌스터 생활. 만약 그때 울라와 계약서를 제대로 작성했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나는 울라와 우정을 지속할 수 있지 않았을까.
참 뻔한 이야기지만, 인류의 수많은 시행착오를 기록한 역사와, 이를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값진 문화유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비교적 최근 뼈아픈 역사적 과실을 범했던 독일은, 역사의 흔적을 도시 곳곳에 그대로 남겨두는 모습이 참 인상적인 나라였다. 뮌스터에도 그런 역사의 흔적이 있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동그란 구도심 어디서나 바라볼 수 있었던 성 람베르티 성당 첨탑에 달린 새장 모양의 철창 세 개였다.
뮌스터는 종교 개혁 당시 재세례파에게 점령당했었다. 그 누구보다 순수한 신앙적 신념을 지키고자 했던 재세례파는 역사와 전통을 부정할 만큼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했다. 만인사제설과 직접 계시를 주장했던 그들은 도시를 점령한 후 개인의 사유 재산을 부정했으며, 성경을 제외한 모든 서적을 불태웠다. 기존의 권력이 무너진 자리에 자칭 메시아가 등장한 것은 당연한 수순. 결국 가톨릭과 루터파의 연합군에 함락된다. 재세례파의 주요 지도자들의 처형된 모습은 철창에 매달렸고, 도심 어디서나 볼 수 있게 되었다. 단아한 르네상스풍 건물들 위로 높이 솟은 고딕 성당의 첨탑에 달린 철장 세 개. 하늘 제일 가까이에 달린 철창 때문인지 고풍스러운 도시 뮌스터의 유난히 높고 푸른 하늘빛은 어두운 돌바닥에 전혀 와닿지 않는 느낌이었다. 철창이 눈앞에 보이지 않았다면 도시가 좀 더 밝은 느낌으로 뇌리에 남았을까.
보는 것은 우리의 인식에 굉장히 많은 영향을 미친다. 뿐만 아니라 보는 것은 우리가 진실이라고 인식하는 것의 기본 전제가 되기도 한다. 인류는 고대사회부터 눈에 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진실 여부를 판단하고자 해왔다. 특히, 플라톤은 시각을 다른 감각보다 우위에 있다고 여겼는데, 이는 시각이 다른 감각 기관과 달리 빛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었다. 감각 기간과 감각 대상과의 직접적인 작용이 아닌, 제삼자인 빛의 개입이 있어야만 객관성의 확보가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재세례파가 순수한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제삼자의 개입을 부정하지 않고 역사와 전통을 받아들였더라면 어땠을까. 순수한 신앙에 겸손함이 있었더라면 진정한 신앙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니 과거를 기억하고, 최대한 많이 배우자. 그리고 무엇보다 빛이 머리 위로 항상 비추고 있음에 감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