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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gigam Oct 19. 2021

진품을 알아보는 법

세월이 흘러도 번뜩이는 눈빛

집 문 앞에서 강의실 문 앞까지는 한 시간 반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학생증으로 버스와 지하철, 근교까지 가는 기차가 무료인 덕분에 차비에 대한 부담은 없었다. 독일의 검표 시스템은 느슨해서, 매번 검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때때로 다니는 검표원을 마주치게 될 때에만 표를 제시하면 되었다. 학생증엔 얼굴 사진이 나와있지 않아서 원칙적으로는 신분증을 함께 소지하고 다녀야 했으나, 그렇게까지 세세하게 검사하는 검표원은 잘 없는 데다가 소매치기로 잃어버릴 염려가 있기도 해서 학생증만 들고 다니는 게 일상이었다.


그러다 하루는 깐깐한 검표원을 마주쳤다. 학생증만으론 안된다며 신분증을 요구하는 검표원 말이다. 신분증을 소지하지 않았기에 벌금과 같은 조치가 취해질 것으로 생각했으나, 뜻밖에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키가 크고 깡마른 검표원과 땅딸막한 검표원 사이에 끼어서 도심 지하철 역에서 경찰서까지 끌려가는 기분이란. 녹색 유니폼을 입은 경찰들은 내 학생증을 보더니 가짜라고 단언했다. 위조범의 혐의가 있어서 경찰서로 연행되어 온 것임을 깨달았다. 어찌어찌 잘 해결되어 무혐의로 나왔지만, 진위 판별의 표식이 외부에 있는 학생증은 그 자체만으로는 사실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체감한 순간이었다.


증서가 증명하는 것이 신분인 경우에는 동일 인물임을 확인할 수 있는 얼굴 사진이 있어야 한다. 문서 상의 서명이나 직인은 진짜임을 나타내는 최소 조건이다. 특수한 재질의 종이에 내용을 프린트하여 복제가 어렵게 하는 것도 문서의 유일성을 보장하는 보편적인 방법이다. 


예술품의 경우는 어떠한가. 진품임을 증명하기 위해 증서라는 게 별도로 발행되곤 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진위 여부를 판가름할 수 있는 표식은 이미 작품 내부에 있다. 유럽의 낡은 골동품 가게에서 먼지가 수북하게 쌓인 그림 한 점을 구입했다고 가정해보자. 작가가 누군지 유추하기 위해 먼저 서명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할 것이고, 그려진 대상이 어떻게 묘사되었는 지를 살펴보면서 화풍이 서명된 작가의 것과 일치하는지 분석할 것이다. 또한, 그림이 그려진 캔버스나 종이, 안료가 사용되던 시기를 작가의 활동 시기와 맞춰보는 방법이 있다. 그 외에도 작품에 그려진 대상의 내용을 통해 특정 작가가 즐겨 그리던 소재인지, 그림 내 다양한 소재들이 특정 미술사조의 특징을 모순 없이 따르는 지를 판별할 수 있다. 이러한 작품의 정보와 내용의 일치를 통해 어느 정도까지 진위 여부를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쾰른 성당의 동방박사 제단화. Stephan Lochner의 작품. 1445년작.


작품의 모든 요소가 제작과 관련된 정보를 드러내지만, 그중에서도 작품의 배경은 가장 간단하게 시대를 유추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예를 들어 중세시대에 그려진 제단화의 배경은 주로 금색이다. 이는 금색이 영원을 나타내는 초월적인 성격을 드러낸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이후부터는 제단화의 배경이 자연 풍경으로 바뀌었는데, 이때 묘사된 자연이 나타내는 것은 현세의 풍경이 아니라 예수님 재림 이후 새 하늘과 새 땅이다. 17세기 이후부터는 건축의 내부 인테리어가 배경을 채우게 되는데, 이는 계몽주의 이후 인간의 이성에서 답을 찾기 시작한 사람들이 초월적 영원이나, 창조주가 빚은 자연이 아닌,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에서 온전함을 기대하기 시작한 것을 반영한다. 따라서 골동품 상점에서 구입한 그림이 제단화이고, 묘사된 대상이 중세풍이라면 바탕색이 금색이어야 진품일 가능성이 높다. 그게 아니라 건축물 인테리어를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면, 그 그림은 후대에 그려진 짝퉁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겠다.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는 여러모로 당시 상식을 뛰어넘는다.


물론 이러한 유추 방법이 전혀 통하지 않는 그림들이 있다. 특히 기존의 가치가 아닌 새로운 시도와 혁신이 담긴 작품들이 그렇다. 얀 반 에이크의<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는 유화를 사용하여 그려진 가장 오래된 그림 중 하나로, 당대에 제작된 회화 작품은 대부분 템페라를 사용해서 그려졌으니, 시대에 따른 안료를 고려해서는 작품의 연도와 쉽게 연결 짓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이 그림엔 화가의 서명이 벽면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또한 당시 서명을 잘 남기지 않았던 당시의 전통을 고려했을 때 흔치 않은 일이다. "Johannes de eyck fuit hic. 1434"(얀 반 에이크 이곳에 있었다. 1434년)라는 문구는 그림 밖 화가의 존재를 그림 위로 드러낸다. 그 아래 그려진 동그란 거울 속엔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의 모습도 비추이는데, 20세기 초 미술사학자 파노프스키는 이러한 화가의 모습을 결혼식의 증인 참석으로 보고, 이 그림 자체가 결혼을 증언하는 일종의 증명서라고 해석했다. 


얀 반 에이크의 자화상으로 추정되는 작품. 제목은 <터번을 두른 남자의 초상>이다. 1433년작.


사실 이 작품엔 무엇보다 화가의 존재감을 가장 강력하게 드러내는 것이 있는데, 바로 볼록한 거울을 통해 들여다보이는 시선의 주체이다. 얀 반 에이크가 1433년, 즉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를 그리기 1년 전에 그린 것으로 알려진 자화상을 들여다보자. 화가의 오른쪽 눈의 눈동자의 시선이 정확히 중앙을 관통하고 있다. 이 시선의 위치는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에서 볼록 거울이 나타나는 곳과 동일하다.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가 정말로 증명하고 있는 것은, 초상화를 의뢰한 부부의 결혼식이 아닌 화가의 시선 그 자체가 아닐까. 


맑고 분명한 눈동자가 바라보는 뚜렷한 시선이 관람객이 마주 보는 시선을 관통한다. 얀 반 에이크는 유화를 발명한 화가로도 유명하다. 그림의 완성도를 위해 모든 것을 동원해 노력했을 화가. 굳이 유추하지 않아도 바라봄과 동시에 그 시선에 조응하게 되는 작품들이 있다. 진위 여부를 따질 필요도 없음은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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