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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gigam Mar 11. 2021

세기말의 자화상

가면을 자화상으로 그린 화가 제임스 엔소르

차디찬 샌드위치의 부스러지는 빵가루 틈새로 바다 버러지 같은 모양의 새우들이 삐져나온다. 이글거리는 태양의 파편에서 튀어나온 듯 유난히 빨갛고 뒤틀린 모양의 새우들. 대서양을 마주한 바닷가의 비릿한 분위기에 한껏 움츠러든다. 구불구불한 모래사장 위에 누워있는 사람들이 일광욕을 하는 건지 죽어서 누워있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고요한 바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던 시절, 바닷물이 수직으로 떨어지는 끝 지점에 해당한다고 생각될 만큼 일직선에 가까운 수평선이 길게 뻗어있다. 


James Ensor, The Baths at Ostend, 1890


바다를 마주한 카페에 앉아 따뜻한 커피와 함께 샌드위치를 입안으로 집어넣고는 한껏 위축된 어깨를 가까스로 펴고 계산을 위해 점원을 불렀다. 오스탕드로 출발하는 기차를 타기 위해 새벽 댓바람부터 설쳤더니 아무리 커피를 마셔도 좀처럼 정신이 차려지지 않았다. 독일 쾰른에서 미술사를 공부하던 시절, 제임스 엔소르의 그림을 더 잘 이해하고 싶어서 방문한 오스탕드. 엔소르의 눈에 비친 세기말 분위기가 박제되어 두꺼운 통유리를 끼고 바라보듯 희뿌옇다.


19세기 말 세워진 카지노는  2차 세계대전 때 무너져 내렸다. 한때 벨기에 국왕인 레오 2세가 즐겨 찾는 휴양지로 명성이 높았던 바닷가 도시, 엔소르는 바닷가 인근의 집에서 평생을 살았다. 1층에는 영국 출신의 엔소르의 아버지와, 벨기에 출신의 어머니가 운영하던 작은 기념품 가게가 있었다. 조개껍데기를 비롯 각종 가면을 판매했고, 이는 엔소르 그림의 주된 모티브가 되었다. 엔소르 그림 속엔 기기괴괴한 가면과 해골이 가득하다. 가면을 기기괴괴하게 그렸다기보다, 가면 자체에 본래 기기괴괴한 속성이 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할 거다. 사람 얼굴의 형상이나, 눈과 입이 텅 비어있는 채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림 속 가면들은 서로를 바라보지 않는다. 정면을 바라본 채 공허한 시선을 어딘가에 두고 있다. 군중 속, 화려한 의상의 한 남자가 고개를 돌려 그림을 바라보고 있을 관람객과 눈을 마주친다. 제임스 엔소르의 자화상이다.


James Ensor, Self-Portrait With Masks, 1899


엔소르는 평생에 걸쳐 수많은 자화상을 남겼다. 주류 예술계의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엔소르는 스스로가 창조의 원천임을 알리기 위해 자신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군중 속 화가로, 또 예수님으로 그리곤 했다. 하지만, 부모 집에서 얹혀살며 평생 자괴감에 빠져 비관했을 그의 시선은 또 다른 자화상들, 가령 바퀴벌레로 그린 모습으로도 드러난다. 자아도취와 자괴감의 양극단을 오가는 그의 자화상 중, 그 두 가지 모습이 한데 합쳐진 작품이 있다. 영화 <올드보이>에 등장하면서 어느 정도 잘 알려진 작품 <Man of Sorrows>다. 비현실적으로 대칭적인 이목구비와 과장된 눈코 입이 영락없는 가면처럼 보인다. 더 자세히 보면, 가시면류관을 쓰고 피를 흘리는 모습의 한 사내가 눈에 들어온다. 정면을 바라보며 대칭을 이루는 구도가 서유럽 미술사 전통의 고통받는 예수를 표현하는 Vera Icon을 연상시킨다.  


James Ensor, Man of Sorrows, 1891


베라 이콘(Vera Icon)이라고 불리는 성상은 좌우 대칭이 완벽한 구도가 특징이며, 관련해서 비슷한 발음의 베로니카(Veronica)라는 성인의 전설이 전해진다. 사람들의 이유 없는 미움을 받으며, 인류의 죄를 대신해 죽임 당하던 날 갈보리 십자가 길을 오르던 예수님. 그 예수님이 흘리셨던 핏방울을 닦기 위해 천을 내민 여인이 베로니카 였고, 그 천으로 얼굴을 닦으면서 예수님의 얼굴이 그대로 찍혔다는 내용이다. 베라 이콘은 Vera=True, Icon=Image, 즉 진실된 형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예수님의 얼굴이 그대로 찍혔기 때문에 진짜 그림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인간의 몸을 입고 내려온 예수님이야말로 언젠가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인생 가운데 바로 진리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Hans Memling, Veronica holding her veil, 1470


15세기 전까지만 해도 얼굴을 정면으로 그리는 것은 신과 왕을 표현할 때만 허용되었다. 좌우대칭이 똑 떨어지는 정면은 그 자체로 절대성을 나타낸다. 요즘이야 현실을 기준으로 진짜와 가짜를 가리는 세상이 되었지만, 19세기 이전만 해도 현실에 선행되는 로고스가 그 기준이었다. 그래서인지 예수님 얼굴을 나타내는 베라 이콘엔 일반적으로 초월적 느낌이 내재되어 있다. 참된 형상이라는 의미를 담는 베라 이콘이 거짓 얼굴의 뜻을 가진 가면과 일견 비슷한 형상을 띈다는 점이 놀랍진 않다. 참된 얼굴과 거짓 얼굴 모두 추상화를 거처 정면을 응시하는 경직된 얼굴이 되었으니 말이다. 


이 두 가지를 모두 담은 엔소르의 자화상에 창조와 파괴, 삶과 죽음이 뒤엉킨다. 수많은 자화상 중 이 그림이야말로 자신에 대한 솔직한 성찰이 아니었을까. 스스로에게서 창조의 원천을 찾기 시작했지만, 결국은 파국을 맞은 세기말의 진정한 모습, 베라 이콘은 아닐까.  


바닷가 인근의 다소 삭막한 분위기의 골목길에 위치한 엔소르의 생가에 들어서자 화려한 크리스마스트리가 반짝이고 있었다. 둥근 오나먼트에 비추인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카메라 렌즈와 둥근 오나먼트가 서로 마주 보며 영원히 반복될 것 같은 시선, 엔소르 눈에 비친 세기말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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