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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정석 Mar 02. 2021

닫힌 방에서 나는 춤을 추고

온라인 유학 생존기


 나는 미국 유학생이다. 작년 가을에 입학해 몇 주 전 두 번째 개강을 맞았다. 그렇지만 미국에 있는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건 아니다. 이런 애매하고도 비정상적인 상황을 만든 것은 당연히 코로나다. 원래 세워뒀던 내 계획에 따르려면 작년 가을에 벌써 비자를 받고 태평양을 건너갔어야 하지만, 지금은 산 중턱에 파묻혀 있는 내 방 안에서 온라인 수업을 들으며 아등바등 학점 방어전을 펼치고 있다. 대학 새내기가 학교를 못 가는 일도 이미 서운한데, 위스콘신 주의 낙원 같은 봄 날씨를 두고 낮밤까지 바뀌어가며 과제 폭탄을 맞는 일은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 내 몸이 거주하고 있는 이곳은 마치 영화 ‘마션’에 나오는 화성 베이스캠프 같은 곳이다. 속세와 단절되어 맑은 공기와 물은 무한정 공급되지만 시간의 흐름은 바깥보다 훨씬 느린, 그런데 이제 과제 마감이 다가오는 시간은 빠른.


 이런 정신과 시간의 방에 갇혀서 미친 듯한 분량의 과제를 하고 있자면 가끔 공부가 내 적성에 너무 맞는 일이고 나는 이 일을 즐기고 있다는, 일종의 자기 세뇌가 필요하다. 이를 테면 미국의 역사를 배우는 일은 내가 알지 못했던 지구 반대편의 미지의 세계를 알아가는 아주 중요한 과정이며, 프랑스어 과목은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생텍쥐페리의 소설들을 원문으로 읽기 위해 필요한 필수 덕목이라는 마음가짐 말이다. 그런데 최근 그런 자기 합리화를 거치지 않고도 정말 즐겁게 듣고 있는 과목 하나가 생겼다.


 때는 바야흐로 2021 봄 학기 과목 상담시간, 온라인 수업 ‘덕분에’ 영어가 생각만큼 늘지도 않고 점점 영어로 토론하는 일에 부담을 느끼기 시작하던 나는, 담당 상담사에게 내 영어 말하기 실력이 이렇게 이렇게 망가져 가고 있고, 내 MBTI는 확고한 INFP(인프피, 내향의 극단에 있는 유형이다)라 그대로 놔두면 나는 불안감에 말라죽을지도 모른다고 토로했다. 그랬더니 첫 번째로 돌아온 답이 연극 수업을 들어보라는 제안이었다. 연극 수업이라니, 지금 본인 스스로 확고하게 낯을 가리는 사람임을 인정한 사람에게 연극 수업을 들어보라니, 이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의심이 들었지만, 상담사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 강좌는 사실 연극 수업이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찾는 수업에 가깝다, 낯을 가리는 사람들이 자신감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고 내 정체성에 대해 계속 함께 이야기해보는 자리라며, 영어 말하기뿐만 아니라 내향적인 성격을 바꾸는 데에도 도움이 많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거 듣고 있자니 완벽한 인프피 벌크업 세트가 아닌가. 감히 생각도 해보지 못한 연기 수업이 내 수강신청 대기열에 추가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무모한 선택을 어떻게 할 수 있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정말 괜찮을 거라는 상담사의 확신 어린 조언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정말 영어 스피킹의 마스터가 된 내 먼 미래를 상상해보았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때 내게는 어느 정도의 절실함이 있었던 것 같다. 성격에 대한 고민이나 영어 실력에 대한 의문 같은 것들이 계속해서 머리에 맴돌았고, 그런 상태에 있는 사람은 종종 평소에 하지 않을 만한 일들을 시도하고는 하니까. 


 그렇게 해서 나는 연극 150 수업 수강자가 되었다. 세션에서 같이 수업을 듣는 사람은 6명 정도로 굉장히 적지만, 연극이라는 특유의 강의 주제 때문에 적은 인원으로도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많이 생길 만한, 딱 그 정도의 수업이다. 연극 수업은 예측했던 것보다 훨씬 날 것에 가까웠다. 날 것이란 말은 스스럼없고, 솔직하며, 인간적이라는 이야기다. 나는 옛 희극의 대사나 최신 뮤지컬의 대본을 암기하고 표정과 몸짓으로 우아한 연기를 펼치는, 아니, 펼쳐야 하는 그런 엄청난 무게감의 수업일 줄 알았지만, 사실은 다른 어떤 수업보다 자유롭고 허물없는 분위기의 수업이었다. 


 아직 5주 차 수업이라 수업 전반에 대한 평가나 요약을 할 수는 없겠지만, 연극 수업에서 계속해서 느끼는 특유의 감정이 있다. 이런 감정은 주로 수업을 시작하며 몸풀기를 하거나 호흡 연습을 할 때 올라오기 시작해 다른 학생들의 초보적인 연기 연습을 볼 때, 내 연기를 시연할 때 최고에 달하는데, 그건 말로 옮기자면 진실성 같은 것이다. 교재에서 읽은 단어를 인용하자면 취약함(vulnerability)인데, 내 속마음을 감추기 위한 모든 방어적 성격이나 겉모습을 벗고 ‘아이다운’ 선택을 한다는 뜻이다. 연기를 하는 순간의 배우는 그래서 가장 취약한 상태에 있고, 그런 상태가 되어서야 좋은 연기를 펼칠 수 있다고 배운다. 그러므로 나는 연기 수업을 들을 때 이따금씩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이나 말을 툭툭 해버리고는 한다. 예를 들면 우스꽝스러운 마임을 한다거나 능청스럽게 실패한 마술사 연기를 한다던가, 정말 이상한 구조로 몸을 빙빙 꼬아서 ‘외로움’을 표현하려고 한다던가. 


 그런 행동을 선택하는 데에는, 다시 말해 내 본모습이 아닌 어떤 대상을 표현하려고 하는 일에는 아주 큰 결심이 필요하다. 특히 내향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은 그런 경향이 더 강해서, 내가 이런 동작을 하면 누군가 비웃지 않을까, 또는 이상해 보이면 어떡하지, 하며 오히려 어정쩡한 연기를 하게 되는 수도 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수업을 거듭할수록 ‘나’인 상태로 있는 것보다 오히려 새로운 인격에 나를 대입하는 일이 훨씬 자연스러워진다. 그리고 이런 느낌을 받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연극 수업 세션에 함께 참여하는 다른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 교수님의 태도일 것이다. 연극 수업에서는 이상하리만치 다른 사람이 연기한 결과물을 갖고 이상하거나 어색하다고 평가하는 사람이 없다. 이 공간에서는 학생이 연기한 가장 작은 몸짓이나 표정도 마치 예술적인 것처럼, 그 안에 어떤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5살짜리 아이가 아무렇게나 그린 그림을 미술관에 전시해두면 대단한 화가의 추상화처럼 보이듯, 이제 막 연기를 시작한 초보 배우들의 어색한 몸짓도 의도된 것처럼 보인다. 나 스스로가 예술가라는 자의식을 이 수업 안에서는 계속해서 주입받고, 그러다 보면 정말 어느 순간 예술가다운 선택을 하게 된다. 그런 경험이 연기 수업을 특별하게 만들고, 함께 배우는 다른 사람들을 신뢰하는 길이 되는 것이다. 


 연기 수업은 여러 의미에서 많은 내적 변화가 필요한 시간이다. 과제 마감을 쫓아 정신없이 달리다 수업에 들어가면 10분 정도의 몸풀기 시간을 만나고, ‘마음의 눈’으로 내 몸을 관찰하면서 지금과 여기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그 과정을 통해 ‘나’는 학생 노정석이 아닌, 그렇지만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어떤 존재가 되어 평소라면 감히 시도도 하지 않을 일들을 해버리는 것이다. 영어 말하기를 배우려고 신청한 수업에서 정작 말하기는 거의 늘지 않고 있지만, 연기는 조금 다른 의미에서 좋은 자양분이 되어주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저녁마다 이상한 짓들을 시작한다. 춤을 추기도, 덜떨어진 연기를 하기도, 상상 속에서 새로운 지형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렇지만 항상, 방문은 꼭 닫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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