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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정석 Mar 31. 2021

우울감과 싸우는 방법들

온라인 유학 생존기

    온라인으로 수업을 들으며 가장 힘든 점은 생각보다 자주 우울감이 밀려온다는 것이다. 과제가 너무 많아서,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 새벽 다섯 시 반에 일어나야 해서 나는 종종 우울하다. 과제를 미루고, 밀린 과제를 허겁지겁하고, 또다시 과제를 미루는 건 사실 과제를 하기 싫은 마음보다는 밀린 과제를 사력을 다해 마무리하고 나면 밀려오는 허탈함과 탈진감 때문이다. 나의 시야는 그때마다 내가 지나고 있는 주에 해야 할 잡다한 일의 목록보다 종강과 다음 학기, 다음 학년, 그리고 대학교 과정 전체에 다다른다. 


    반복적이고 꾸준한 일을 해내는 데에는 강력하고 확실한 동기가 필요하다. 가끔 그런 동기 없이도 꾸준한 일을 해내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그 사람들이 인생에 대한 확실한 동기가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내게 있어 대학교 입학 전 12년의 시간은 그런 강력한 동기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다. 내 주변에는 너무나 당연하게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이 있었고, 그래서 나는 학교가 내가 속할 유일한 공간이라고 믿었고, 그 대전제에 물음을 던질만한 뚜렷한 계기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학교에 다녔다. 그런데 대학, 특히 방구석 유학은 그런 확실한 외적 동기를 제공해주지 않는다. 주변 사람이 내 대학 생활이 당연한 것인 마냥 포장해주지 않으며, 대학은 더 이상 내가 속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도 아니다. 지금 당장 아르바이트를 구하거나 전업 작가가 되거나 세계일주를 떠나도,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계획들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는 구체적이고 확실한 다른 동기가 필요하겠지만, 그건 대학에서 공부를 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어떤 선택이 다른 것들보다 더 쉽고 자연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그 선택을 정당화하는 것은 나의 논리에서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내게 그러한 동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좋아하고, 그런 기회가 생길 때마다 보람과 동기를 느낀다. 그러나 그러한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직업과 위치에 다다르기 위해서 밟아야 할 수많은 계단들 중에, 나의 동기에서 벗어나는 몇 가지 길들이 있다. 모니터에서 사람들과 마주하며 수업하는 것, 집에 머무르며 과제량에 눌려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것 등은 내가 기대했던 과정의 모습도 아니고, 오히려 그 과정의 동기를 침식해간다. 

    우울감은 그래서 위험한 것이다. 우울감은 우울감을 재생산할 뿐만 아니라, 내가 처한 상황이 우울감의 원인인양 포장하기 때문이다. 과제를 하다가 우울감이 밀려오면, 내가 이 수업을 듣고 있기 때문에 우울한 것처럼 믿게 되는 식이다. 물론 그런 논리가 타당하지는 않지만, 반복된 우울감 속에서 개인은 쉽게 무너진다. 건강한 상태라면 하지 않을 일들, 예를 들면 낮잠을 두 시간씩 자거나 끼니를 거르거나 하는 일이 잦아지거나 한다. 이런 신체적인 변화는 정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우울감은 이러한 과정 속에서 재생산된다. 


    어떻게 이런 정신적인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내가 자주 시도하는 방법은, 건강한 상태의 사람들을 접하는 것이다. 동기부여가 충만한 사람들이 쓴 글이나 이야기는 정신적인 충격 작용을 조금이나마 도와준다. 여행 브이로그나 아이패드 공부법 영상 같은 것들을 보면 조금이나마 자신을 그 세계에 투영할 수 있고, 나도 마치 그런 충만한 사람인 것처럼 스스로를 속일 수가 있다. 이런 자기기만적인 방법이 먹히는 이유는, 인간은 스스로 믿고 싶은 대로 되기 때문이다. 우울한 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 억지로라도 웃으면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는 숱한 자기 계발서들의 충고는 이런 논리라고 볼 수가 있다. 건강한 상태에서 쓰인 글과 콘텐츠를 접하는 건, 콘텐츠뿐만 아니라 창작 과정에 스며든 정신의 상태까지 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내가 그렇게도 싫어했던 자기 계발서들의 오그라드는 격려 문구 같은 것들의 유용함을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왜 출판 시장에 그렇게 많은, 다 잘 될 거라는 내용의 베스트셀러들이 있는지도. 결국 아무런 의미가 없는, 허울만 좋은 문장과 말들에서도, 지친 사람들은 힘을 얻을 수가 있다.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오그라드는 문장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물론 좋은 글과 콘텐츠로 자기기만을 펼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이런 요법에는 내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어느 시점에는 영상과 글 속의 주인공들과 내 삶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는 시점이 온다. 만들어진 콘텐츠는 제작자의 본모습이 아니라 조금은 각색된 일부라는 것을 알게 되고, 브이로그를 찍는 사람들이 사실 일어나는 장면과 조깅하는 장면을 찍기 위해서 미리 일어나 있어야 하고 한참 멀리 뛰어가다가 다시 카메라를 가지러 돌아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타인의 삶의 다큐멘터리라고 믿었던 것들이 사실 편집된 예능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되면 결국 유일한 창구는 사람을 직접 만나는 것이다. 내 앞에 물질적인 인격이 앉아 있을 때, 그 사람에게서 위안과 위로의 말을 들을 때, 우리 모두 각자의 두려움과 곤란함을 안고 살아가고 있음을 재확인할 때, 우울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어서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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