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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야 Sep 17. 2019

오래 두고 지켜보는 마음

세 번째, 상사 이야기

내가 겪은 두 번째 상사는 서울에서 만난 대표 C와 팀장 D이다. 가장 오랜 기간 본 만큼 가장 기억에 남은 사람들인데, 그들에겐 미운 마음도 미안한 마음도 두루두루 갖고 있다.




첫 번째 회사를 그 모양 그 꼴로 나온 뒤, 나는 진로를 디자인으로 변경했다. 전부터 하고 싶었는데, 이왕 이렇게 된 것 진로를 바꾸자는 마음이었다. 약 1년 정도 준비를 한 뒤 기쁘게도 서울에 있는 작은 디자인 회사에 취직하게 되었다. 대표 C와 팀장 D는 그곳에서 만났다.

    

사실, 대표 C의 첫인상은 좋았다. 면접 일정을 잡을 때도 지방에 사는 나를 배려하여 일정을 조정했다. 면접에서도 내 포트폴리오를 관심 있게 살펴보며 진정성 있는 질문을 했고 내 질문에도 성의껏 대답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거의 1시간 넘게 면접을 했는데도 싫다는 느낌보다 ‘이 사람이 정말로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는 파트너를 찾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쩐지 이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느낌. 먼저 합격 전화 온 다른 회사를 거절하고 이 회사의 연락을 기다린 건 8할이 면접 때 대표의 좋은 인상과 느낌 때문이었다.

     



내 바람대로 합격 전화가 왔고 디자이너로서 한발 내디뎠다. 회사는 총 다섯 명으로 이루어진 작은 규모의 회사였다. 그래서인지 전체적으로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였다. 점심시간엔 여유롭게 산책을 하고 와도 되었고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 노래를 사무실에 틀어 놓고 일 할 수도 있었다. 연령대가 비슷한 사원들끼리는 거의 친구처럼 지냈고 대표나 팀장에게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편안하게 할 수 있어서 나는 내 선택이 꽤 만족스러웠다. 그 때문인지 비교적 회사에 빠르게 적응해 나갔다.  

   

하지만 몇 개의 프로젝트를 거치며 만족은 불만족으로 바뀌어 갔다. 반년쯤 다녔을 무렵, 나는 교육용 삽화와 캐릭터 작업 프로젝트를 연달아 작업하고 있었다. 그게 나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그때 나는 조급했는데 그건 내가 디자인 전공자들보다 늦게 디자인을 시작했다는 것에서 스스로 느끼는 압박감 때문이었다. 나는 비록 늦게 시작했지만 이 만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어 했고, 그러기엔 지금 하는 프로젝트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뭐랄까,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 일종의 간지가 흘러넘치는 작업이 하고 싶었다.     


그러나 회사 일이라는 게 직원이 하고 싶다는 일만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사실 교육용 삽화나 캐릭터 작업 외에 다른 프로젝트로 들어왔지만 그때 나는 이미 교육용 프로젝트를 맡고 있었고 게다가 다른 프로젝트에는 더 적합한 직원이 있었다. 대표 C의 입장에선 프로젝트에 적합한 직원을 배치했겠지만, 그때 나는 그게 불만이었다. 내게도 다른 프로젝트를 경험할 기회를 주기 바랐다.     


다행히 그 회사는 그런 불만을 토로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대표와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나는 그때 내가 가진 불만을 토로했다. ‘나도 교육용 삽화나 캐릭터 작업 말고 다른 종류의 작업을 하고 싶다.’, ‘내가 기획해서 작업까지 해 볼 수 있는 작업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등의 경력 반 년짜리 새내기 디자이너의 욕심 가득한 말을 들으면 대표 C는 ‘지야 네가 지금 잘해 주고 있는 것 안다.’, ‘다른 프로젝트도 당연히 시켜 볼 것이지만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기다려 줘라.’라며 서두르는 나를 달랬다. 그리고는 늘 ‘오래 지켜보고 싶다.’고 했다. 

    



‘오래 두고 지켜본다.’는 게 그땐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때 나는 1년 안에 디자인적으로 나의 무언가를 이룩해서 입지를 굳히고 싶어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1년 이란 그 짧은 시간 안에 무언가 이룩하려고 했을까 싶다. ‘무식해서 용감하다.’는 말이 그런 경우일까? 아무튼, 그때 나는 대표 C의 그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래서 내내 불만이었다.


하지만 이후 다른 회사에서 미처 적응하기도 전에 등 떠밀려 어푸어푸 일을 하고 있는 나를 보며 ‘오래 두고 지켜본다는 게 어쩌면 나를 배려해서 한 말이었을지도 모르겠구나.’하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아무쪼록, 대표 C는 여태 내가 만났던 상사 중에서는 가장 괜찮은 사람이었다. 스스로가 직원의 의견에 귀 기울이려는 노력이 늘 보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서운한 기억이 없는 건 아니다. 때론 본인이 의도치 않더라도 사람을 서운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그건 다음 이야기에서 계속 보면 좋을 듯하다.

한 달에 한 번 대표와 대화의 시간을 가질 때면 나는 몇 가지를 토로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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