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난나 씨 Sep 28. 2019

어쩌다보니 시골, 어쩌다보니 동거 #06

:지금 이 맘 때만! 가을의 맛

::고소한 들깨꽃 튀김::

“지금 이 맘 때만 먹을 수 있는 거예요.”


주인집 언니가 들깨꽃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 이 맘 때... 그 말이 계속 맴돌아 들깨꽃을 땄다. 작은 꽃망울 속에 깨를 머금고 있어 꽃에서도 고소한 냄새가 난다. 튀김으로 먹는다는 말에 에어 프라이어를 꺼냈다. 튀김은 처치 곤란한 기름이 많이 나와 에어 프라이어를 이용한다. 튀김가루가 없어 부침가루를 살짝 입혀 튀겼다. 


고소한 맛과 향이 담백하게 입안에 퍼진다. 가을의 맛이다, 라고 생각했다. 가을에게 맛이 있다면 딱 이런 맛일 것이다.  


우리가 사는 동네는 밤으로 유명하다. 마을 어귀부터 뒷산까지 밤나무 천지다. 봄에 밤꽃 향이 흐드러지게 피더니 어느새 입을 짝짝 벌려 토실토실한 알맹이들을 뽐낸다. 매일 저녁 닌나 씨와 강아지들과 마을 중턱까지 산책을 나간다. 여름에는 오디와 산딸기를 선물해주던 길이 요즘은 밤 천지다.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알밤들을 주워와 쪄먹으니 맛이 예술이다. 앉은 자리에서 대여섯 개는 기본, 많을 땐 열 개까지도 먹는다.  (나중에 밤 칼로리 검색해보고 식겁한건 안 비밀;;)


몇 개씩 주어오다 보니 한 바구니가 되었다. 밤 잼을 만들기로 했다. 실한 알밤을 골라 삶은 뒤 일일이 껍질을 깠다. 우유와 생크림에 부슨 과육을 넣고 뭉근하게 끓였다. 집에 달달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세 시간쯤 지나자 걸쭉한 잼의 형태가 되었다. 한 입 맛본 닌나 씨가 냉큼 식빵을 준비한다. 밤 앙금처럼 포근하면서도, 많이 달지 않다. 은은하게 남는 여운까지! 제법 훌륭한 간식이 탄생했다. 주인집과 뒷집에 선물할 병도 따로 담았다.  


8월 말에 뿌린 무 씨가 싹을 틔우고, 한 달 새 제법 무의 모습을 갖추었다. 무를 솎아줄 시기다. 혹시나 나지 않을 것을 대비해 씨앗을 세 개씩 뿌렸는데, 한 구멍에서 두세 개씩 발화한 무 중 하나를 뽑아주면 된다. 이걸 여린 무, 열무라고 하는지 처음 알았다. 맛을 보니 어찌나 매운지, 작다고 얕보면 안 된다. 이 말은 즉, 지금 이 맘 때는 열무김치를 담글 때인 것이다. 밀가루 풀을 쑤고, 빨간 고추를 갈아 넣으니 제법 김치다운 자태가 완성되었다.

   

“지금 이 맘 때만!” 


시골 살다보니 이 말이 제일 반갑고, 제일 무섭다. 요즘은 대부분 재료들을 사계절 내내 만날 수 있지만, 모든 식물에는 철이 있고, 순이 있다. 하우스가 없는 우리는 더욱 그렇다. 귀차니즘에 몸부림치다가도 저 말만 들으면 혹해서 부지런을 떨게 된다. 지금 이 맘 때만 즐길 수 있는 음식을 맛보기 위해, 고민 하다 이내 재료를 손질 하기 시작한다. 


:: 일 만드는 여자;; 밤 잼의 탄생!:: 
:: 손질한 열무는 꽤나 귀엽다. 모 광고의 무대리가 생각나는 비주얼::


매거진의 이전글 어쩌다보니 시골, 어쩌다보니 동거 #05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