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차 야매 농부의 2020년 텃밭 개시!
시골의 겨울은 길다. (코로나가 없었다면) 아이들과 학생들이 겨울방학을 마치고 개학을 준비할 때, 시골에서는 농사 준비가 시작된다. 작년에는 아무 것도 모르고 주위를 따라 가기 바빴지만, 올해는 미리 일정과 계획을 세울만큼 성장했다. 뿌듯 *_*
뼈를 파고드는 매서운 추위는 3월이 되어도 꺽일 줄 모른다. 3월 초 오랜만에 마주한 텃밭에서 가장 먼저 해줄일은 땅 고르기다. 겨우 내내 얼어있던 땅을 말랑말랑하게 해주는 작업이다. 먼저 딱딱하게 굳은 두둑 위에 비료를 골고루 뿌려준다. 2주 정도 뒤 비료가 어느정도 숙성되면 호미로 한땀 한땀 갈구며 땅과 섞어준다. 물론 규모가 큰 논밭에서는 트렉터나 기계의 힘을 빌린다.
3월 20일 이후 첫 작물 감자를 심어준다. 작년 3월 17일에 심었더니 감자가 땅 속에서 얼어서 이번엔 조금 더 늦게 심어줬다. 감자 심은데 감자 난다. 이게 아직도 신기하다. 뿌린만큼 거둔다를 세삼 깨달으며 괜시리 자신을 반성하게 된달까. 감자를 심으며 추위에도 강한 얼갈이 배추와 시금치, 열무 씨를 뿌려주었다.
4월 중순에는 본격적으로 모종을 심을 준비를 한다. 주인집 언니같은 프로 텃밭러들은 훨씬 전에 판에 씨를 뿌려 모종을 만든다. 시골에 살면 날씨에 예민해진다. 내일 아침 0도로 떨어지는지, 비가 오는지 특히 촉각을 세운다. 올해는 날씨가 따듯했다, 4월 중순 갑자기 또 추워졌다. 주인집 언니네도 이제 겨우 싹을 튼 옥수수들이 냉해를 입었다.
텃밭 어디에 무엇을 몇 개나 심을 것인지 구상도를 그렸다. 작년 모종들이 그렇게 커질 것을 상상도 못하고 심었다가 고생했기 때문이다. 특히 토마토와 깻잎은 상상을 초월할만큼 무성해져 두 종류를 붙여놨더니 솎아주기도 힘들고 나중엔 지나다니지도 못했다. 너무 촘촘히 심어 깻잎 아랫쪽은 햇볕을 못봐 누렇게 변했다.
이번엔 엄청난 넝쿨력을 자랑하는 고구마 줄기와 애호박, 위로 타고 올라가는 오이 등을 고려해 계획을 세웠다. 전문가가 다됬다고 엄청 뿌듯해하면서!
날씨가 급 따듯해진 4월의 마지막 주. 다음날 비소식을 보고 바로 모종 판매장으로 달려갔다. 밭에 옮겨 심으면 식물도 몸살을 앓기에 다음날이 흐리고 비가 오는 날이 좋다고 한다. 사람 생각 다 똑같다고, 모종 하우스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 했다.
작년엔 언니가 같이 와서 도와줬는데, 올해는 닌나 씨랑 둘뿐이니 뭐가 뭔지 혼이 쏙 빠졌다. 게다가 목소리 큰 아주머니들이 얼마나 많은지;; 차례를 기다렸다 바보가 되기 몇 차례, 드디어 그 집 딸로 보이는 알바 언니가 무엇이 필요하냐며 말을 걸었다.
미리 준비해두었던 종이를 들고 주문을 시작했다.
"상추 4개랑 ...치커리..."
"상추 3개 천 원이예요. 3개 단위로 팔아요."
처음부터 난관. 어버버버 하긴 했지만, 계획했던데로는 아니지만 어쨌든 무사히 다 샀다. 비실비실해보이는 애들도 몇 있었는데 포스에 눌려 바꿔달란 말을 못했다ㅠㅠ
쇼핑 리스트
흑상추 3개, 치커리 3개, 양상추 3개, 양배추 3개, 오이 4개, 애호박 3개, 방울토마토 3개, 대추토마토 1개, 청양고추 6개, 꽈리고추 2개, 일반고추 3개, 가지 1개, 비트 3개, 파 반판보다 조금 더 적게
서비스- 겨자채 6개, 쑥갓 6개, 상추 12개
충동구매- 월남고추 3개, 파프리카 1개
씨앗- 당근, 얼갈이배추, 시금치
빼먹은 것- 깻잎
총 금액: 모종 23,000원 + 씨앗 8,000원
*참고로 보통 모종은 개가 아닌 주로 부른다.
집으로 돌아와 텃밭에 차곡차곡 심어주었다. 뿌리만큼 땅을 판 뒤 물을 부어주고 모종을 넣고 흙을 덮어준다. 잘 자라나라 자라나라 애정어린 주문과 함께! 당근과 고수 씨도 솔솔 뿌려주었다. 처음엔 상추나 몇 개 키우지 했던 우리지만 작년 텃밭의 맛을 알고 난 후 욕심이 생겼다. 텃밭도 부족해 딸기밭이 있던 집 옆 공터도 개간해 지인이 보내준 오크라를 심어주었다. 손바닥 만한 밭인데도 두어시간이 뚝딱 흘렀다. 후아. 오랜만에 하는 밭일에 허리가 아팠다.
뒷집 순돌이네는 고추만 50주, 주인집은 150주 심었다고 한다. 정말 말 그대로 후덜덜이다. 주인집 언니는 앉았다 일어났다를 계속 한 탓에 무릎에 무리가 가 며칠째 절뚝거리고 있다. 자급자족 텃밭도 이정도인데 진짜 먹고 살자고 농사를 짓는 일은 상상을 초월하는 정성과 노력이 들어가는 것이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우리네 텃밭에는 멀칭 비닐을 씌우지 않았다. 사람들이 꼭 씌워야 한다며, 잡초투성이가 될 거라 걱정했지만 생각보다 괜찮았다. 밭이 작아 매일매일 조금씩 살살 풀을 뽑아도 충분히 가꿀만 했다. 닌나 씨는 풀 뽑는데 이상한 희열과 힐링을 느낀다고 했다. 글이 잘 안써지거나 일이 잘 안풀리면 나가서 풀을 뽑고 왔다.
얼마만큼 자랐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는 물론, 하루 몇 번씩 나가 식물들이 잘 있는지 살펴본다. 조금씩 뿌리를 굳혀 자리를 잡아가는 초록잎들이 사랑스럽다. 씨를 뿌린 곳에선 곧 싹이 올라오려는지 땅이 갈라져 있다. 좁쌀 1/100 크기의 작은 씨앗의 힘이 대견하다. 직접 키우지 않았다면 느끼는 못했을 행복이다.
서울에 살때는 대부분의 시간을 쇼파에서 보냈다. 여기서는 끈임없이 꼼지락 꼼지락 무언가를 하게 된다. 일거리를 만든다고 하는 게 맞으려나. 청을 담그고, 술을 담그고. 장아찌를 담그고;; 시작할때는 왜 또 일을 벌였지 하면서도 마무리는 항상 우리 이거 또 해먹자가 된다. 텃밭이 주는 마법이 아닐까.
올해 농사의 큰 목표는 고추를 잘 말려 고춧가루 만들기와 당근에 성공해 당근 케이크를 구워보는 것이다.
2020년 소태 포레스트 텃밭 개장 완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