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선도시 Jan 11. 2024

02. 인하우스 서비스 기획자가 일으키기 쉬운 오류

날아오는 일을 쳐내는 와중에 놓치게 되는 '나'라는 프로덕트 

  서비스 기획(앱 프로덕트 기획)을 해오면서 '기획자'라는 직업은 모든 것이기도 하면서, 그 무엇도 아니기도 한 그레이존에 존재하고 있단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인류가 앱 서비스라는 프로덕트를 적극적으로 사용한지 실제로 따지면 그리 오래지 않았고, 그 프로덕트를 만들기 위한 전문가들의 업무 포션에 대한 명확한 정의도 대중적으로는 전혀 보급이 안되어 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같이 일하던 UIUX 디자이너도 종종 그런 혼란을 겪곤 했다. 내가 임하고 있는 직업의 존재가치, 존재의 이유에 대해서 나 또한 때때로 물음표를 떠올리게 되었다. 


  초심자 시절에는 개발자를 위한 UIUX 문서와 설계서를 만드는데 주안을 두었다면, 미들급 정도의 경력이 된 시점부터는 비즈니스 모델을 설계하고 데이터 분석을 통해 개선방향을 제시하는 업무의 포션을 늘렸다. 스토리텔링과 마케팅 전략을 중점으로 쌓았던 기존의 이력이 자연스럽게 이런 방향으로 이끌어주긴 했으나, 정신없이 실무에 뛰어들어 부딪치며 학습하고 데이터를 쌓아가다 보니, 정작 명확하게 어떤 포지션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고, 앞으로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포지셔닝을 할 것인지에 대해 스스로 정의를 내려본 적이 없다. 


  분명 어떤 서비스를 만들어달라는 클라이언트의 요구가 있을 때 막힘 없이 기획을 쭉쭉 해나갈 수 있을 만큼의 스킬이나 경험은 쌓았다. 그야말로 경험으로 터득한 힘이다. 기획을 잘 하네, 이 분야에 탤런트가 있네 라는 인정도 분명 받았고, 스스로도 어떤 종류의 앱 프로덕트도 만들 수 있게 되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지만, 정작 왜? 내가 좋은 기획자인지, 정말 기획자인 건 맞는지 상세히 점검을 해본 적은 없다. 체계가 정착되지 않은 스타트업에서의 일들은 그야말로 '쳐내는' 흐름으로 갈 수밖에 없었고, 내가 깰 수 없는 사내문화라는 높은 장벽이 만든 회사원 A씨라는 아이덴티티가 이 분야에서 전문가로서 존재해야 하는 나를 가끔 사장시키는 느낌까지 받기도 했다.   


  그렇게 프로젝트 경험과 실무 스킬만 정신없이 쌓아가다 보니, 나의 능력을 제대로 점검해보고 시험해보고 싶은 생각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도전이나 시도는 누구에게나 불안하고 불편한 것이고, 나에게도 물론 그렇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려면 그런 전환점은 반드시 필요하고, 용기 혹은 무모함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할 때도 있다고 생각한다. 딱 서른 중반이 된 이 시점이 내겐 그래야 할 때라고 생각되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냐 하면 모든 것이 계기였다고 말할 수 있다. 내 성향에, 경력에, 업무 경험에, 생활 속에 그야말로 나를 둘러싼 전반에 도전을 해야 하는 계기는 항상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행은 할 수 있을 때 할 수 있는 거다 보니, 어느 시점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저 유예한 시간이 더 길었을 수도 있지만.)


  내가 서비스 기획자라는 분야의 독립적인 프로페셔널리스트로 첫 발을 내딛기 위해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은 퍼스널 브랜딩이었다. 단기 속성으로 퍼스널 브랜딩의 개념부터 제대로 익히기 위해 읽은 조연심 선생님의「하루 하나 브랜딩」속에서 내린 퍼스널 브랜드의 정의는 이러하다.

  '특정 산업이나 분야에서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자신의 고유한 기술, 경험 및 자질을 식별하고 전달하는 것',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가로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관행'.

  이 문장을 읽으면서 '차별화'라는 키워드에 뼈를 맞았다. 정말 많은 일을 했고, 정말 많은 걸 배웠지만 스스로 이 분야에서의 차별점은 구체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술과 경험과 자질은 분명 인정받거나 쌓아왔는데 그게 다른 사람과 어떤 지점에서 차이가 나고 퀄리티를 약속할 수 있는지에 대해 한 문장으로도 설명할 수가 없으니, 어쩌면 그런 부분을 업무누적으로 바쁜 와중에도 스스로 무의식중에 느껴 답답했었을 지도 모르겠다. 


  내가 가지고 있는 다른 기획자와 구분되는 점은 드라이하게 팩트만 보고 얘기하면 이러하다.


  1. 영화, 영상 매체를 통해 더 감성적이고 범위가 큰 협업 프로세스를 경험해봤다. 

  2. 1번의 경험을 통해서 스토리텔링 능력이나 남다른 세계관은 구축했다.

  3. 브랜딩, 마케팅에 대한 업무를 하면서 트렌드 리딩에 대한 역량을 많이 쌓아왔다.


  이 부분은 강점으로 살릴 수 있는 부분에 대한 차별점이고, 약점으로 꼽을 수 있는 차별점도 분명 있다.


  1. 실무를 통해 부딪쳐가며 쌓은 스킬이다보니 기본기가 약간 부족하다.

  2. 이론보다 실무에 강하다보니 이론이나 개념에 대한 보충학습이 필요하다.

  3. 이 분야 프로페셔널리스트로서의 셀프 브랜딩이 안 되어 있다. 


  업을 해서, 그야말로 돈을 버는 직업인으로서의 나로는 어떤 면에서 증명해보인 것도 있고, 그 가능성을 봤지만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가 개척해서 업을 일으켜낼 수 있을까? 업을 일으킨다는 것을 한자로 풀면 '사업'인데, 지금 당장의 그리는 그림이나 계획으로는 거창하게 사업이라고 명명하기는 좀 모호한 부분이 있다. 지금 당장은 내 손길이 필요해서 '찾아 오는' 고객이 생기는 것이 목표다. 일의 사이클을 좀 180도 뒤집어보고 싶은 바람이다. 누군가에게는 너무 거창한 계획으로 보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별 거 아닌 계획일 수도 있지만, 의미있는 시도가 될 거라는 믿음은 분명 있다. 정체감을 극도로 꺼려하는 개인 성향도 있겠지만, 0일 때와 1일 때의 차이는 극명하기 때문이다.


  그 동안 많은 프로젝트를 이끌며 진행했고, 많은 생산을 했음에도 어쩌면 내가 지나온 시간들은 0이었을 수도 있다. 1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 앞에 온전히 '나'라는 전문가로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팔리는 기획자가 될 수 있을까? 그 질문의 답을 무조건 YES로 만들기 위한 시도이고, 투자이다. 


  사실 내 진짜 꿈은 프로N잡러가 되는 것인데, 하나라도 마스터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게 맞다고 본다. 여러 가지 경험도 많고, 하고픈 것도 많다. 그럼에도 메인은 있어야 한다. 할 수 있는 걸 잘 할 수 있다고 모두가 말하고, 스스로도 확신해서 말할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 그게 지금 내 눈 앞에 열려야 하는 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01. 나는 어쩌다보니 서비스 기획자가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