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엽습니다만 귀찮습니다.

육아, 그 지독한 애틋함과 귀찮음에 대하여

by 아임낫체리

아무 것도 안 하는 시간이 이리도 귀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숨만 쉬는 것도 귀찮은 타고나게 무기력한 나란 인간에게 갑자기 막중한 임무가 주어졌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맘껏 귀찮아할 수 있었다.

귀찮으면 아무 것도 안 하는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거다.

하지만 아기를 낳은 순간 하나하나의 선택과 행동들을 귀찮다고 안 할 수도 피할 수도 없게 되었다.

하나의 생명을 생존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흔히들 육아를 하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고 말한다.

육탄전이 펼쳐지는 영화에서 연발로 쏟아지는 총알에 맞아 케쳡같은 피를 터트리는 배우를 보며 같이 아파하는 것. 내가 못가본 세계를 상상하는 것은 이와 거의 동일하다.

힘들다고들 하지만 상상 속에서는 그 힘듦이 막연했다.


출산 전에 내가 상상하고 그리던 '아기'는 어릴 때 가지고 놀던 똘똘이 인형같은 존재였다.

가만히 누워서 눈만 깜빡깜빡 뜨는 인형처럼 그저 그렇게 가만히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막상 실제 겪어본 아기라는 존재는 굉장히 생동감 있으며, 아주 디테일하고 미묘하게 변화하며, 작은 변화에도 매우 큰 영향을 받는 세상에서 가장 난해한 존재였다.


밥을 먹이고, 잠을 재우고, 대소변을 치워준다.

어찌 보면 가장 간단해 보이는 과제들이다.

그러나 그 과제들을 수행하기 위해서 엄청나게 다양한 선택들을 해야 한다.


수유 방식부터 갈림길이 생기고, 모유 수유는 지속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이기에 육아에 적응하기도 전에 어떤 길로 갈지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육아의 질을 좌지우지하는 수면은 부모를 가장 괴롭게 하는 과제 중 하나가 된다.

자주 깨서 밥을 먹어야 하는 신생아기도 당연히 힘들지만 성장할수록 수천만 가지의 이유로 잠을 못 이루거나 깨어나면서 부모를 괴롭히게 된다.


육아를 하면서 가장 간절해진 시간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다.

자는 시간도 더 이상 달콤하지가 않다. 정말 살기 위해 자게 되기 때문이다.


육아란 끊임없이 무언가 선택하고 행동하게끔 만든다.

이미 낳기로 한 순간부터 돌이킬 수도 없고 멈출 수도 없다.


나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게 너무 힘들었고, 사실 지금도 힘들다.

그리고 그렇게 감수해내는 귀찮음만큼 아이에 대한 애틋함도 같이 커져가는 걸 느낀다.

소중하니까 귀찮을 만큼 에너지와 마음을 쓰고, 그럼으로 인해서 더 소중해지는 무한 사이클이 가동되는 것이다.


여전히 지독하게 귀찮아하는 내가 육아를 해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이제 기어다니고 설 준비를 하고 있는 아이 옆에서 한없이 귀찮아하고 있지만, 눈은 항시 아이를 따라다니고, 그 창살 없는 감옥에 적응한 죄수처럼 지내고 있다.


아기는 정말 알아서 쑥쑥 잘 큰다. 따로 알려주지 않아도, 따로 챙기지 않아도 스스로 해내는 것들이 많다.

그러나 그 '알아서' 하기 위해 기반이 되어야 하는 것들은 부모가 무조건 해야 한다.

건강한 영양 상태를 유지해주는 것, 애착관계를 형성해주는 것, 다양한 경험을 시켜주는 것 등등.


귀엽다, 그치만 귀찮다.

어찌 보면 잔인한 것 같지만 사실 가장 솔직하고 적절하게 육아를 설명하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아기를 키워야 어른이 되고 성숙한다는 말이 있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철이 들어 어른이 될 것인지 아닌지도 하나의 옵션이 되지 않았나?

겉만 어른이지 전혀 어른이 되지 못한, 여전히 사는 게 너무 귀찮은 내가 하루하루 한 명의 인간을 생존시킨다는 막중한 임무를 맡아 하루하루 생존해가는 현실 속에서 난 수시로 나의 선택을 후회한다.


하지만 삶에서 했던 모든 선택 중 가장 후회하는 게 소용이 없을 일이다.


가끔 어떤 연유로라도 아이가 내 품에서 사라지는 상상을 하곤 한다.

날이 갈수록 그 상상이 눈물이 나올 만큼 지독하게 아프고 쓰려진다.

이제는 아이가 곧 나이고, 내가 곧 아이인지 오래라서 포기할 수도 없고, 아이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을 거둘 수가 없다.


귀엽지만 귀찮다.

그렇다면 반대로도 말할 수 있다.

귀찮다. 하지만 그걸 감내할 만큼 귀엽다.


갈수록 귀여워질 것이고, 그 귀여움은 무시무시한 파괴력으로 나를 부시고 태울 것이다.

그 귀여움과 지독한 귀찮음 속에 몸을 던져버린 나에게 치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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