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이 없지만 답을 찾는 효도의 나날.
“야, 일을 하다가 아 귀찮은데.라고 생각이 들잖아? 그때 해둬야 문제가 없어.”
4년을 같이 일했던 선배님이 남겼던 문장이다. 그는 효율적인 근무 패턴을 갖고 있었다. 무쓸모한 문서작업을 제일 싫어했다. 그래서 나를 대신해 앞장서서 많은 일을 없애주었고 참 감사했다. 그렇다고 마냥 노는 타입은 아니었다. 정말 해야 할 일만 했다. 그런 선배님이 남긴 말이라 참으로 마음에 와닿았다. 아무도 찾지 않지만 해야 할 것 같은 일은 귀찮다는 생각이 들고 여유가 있을 때 미리 해두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유난히 공감이 갔다. 회사는 물론 개인 생활에서도. 특히 가족과의 관계에서 말이다.
20살 때부터 나와 살았고 혼자 십몇 년을 살았더니 결혼을 했지만 아직 나의 아이덴티티는 1인 가정에 가깝다. 소설 가시고기와 엄마를 부탁해를 보고 오열하는 타입이지만 부모님에게 전화는 오질 나게 하지 않는 게 바로 나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부모님께 강조한다. 덕분에 어쩌다 전화를 하면 엄마가 “무슨 일 있어?”라고 되묻는데, 그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의 사후 목적지는 불효자의 집결지 한랭지옥이 아닐까 걱정된다. 아무튼 수년간의 거리 조정을 통해 나와 부모님의 적정한 안부 주기, 전화 주기, 카톡 주기를 설정하였고 지속 가능한 효도를 위해 야박한 주기라고 할지언정 꾸준히 지키고 있다. 엄마한테 더 자주 전화해야지, 카톡도 자주 해야지 싶지만 왜 그리 귀찮은지 혹은 내키지 않는지 모르겠다. 이래서 내리사랑만 한 게 없는 걸까.
그런 내가 결혼을 해서 두 명의 부모님이 더 생겨버렸다. 새로 생긴 부모님과의 거리 설정을 잠시 고민했으나, 남편도 무던한 성격이고 나도 나대지 않기로 다짐했다. 굳이 무리하지 말자. 지속 가능한 효도, 그것이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비록 시부모님들은, 특히 시아버지는 새로 생긴 며느리와의 가깝고 다정하고 잦은 소통을 희망하시는 것 같았지만 애써 흐린 눈으로 버텼다. 첫 발을 자칫 잘못 내딛으면 진짜 끝이다. 내가 추구하는 지속 가능한 효도를 위해 나 또한 힘을 내자. 남편에게는 지속적으로 전했다.
“오빠, 우리의 효도는 못해도 30년을 하는 거야. 장거리 마라톤을 천천히 달려야지 100미터 마라톤처럼 힘을 다 쏟으면 우리도 힘들고 부모님도 속상하실 거야.”
다행스럽게도 우리의 니즈는 상통했으며 결혼 전과 별 다를바 없는 패턴으로 효도 생활을 유지해오고 있다. 전화는 최대한 적게, 직접 전화가 오는 일은 없게, 부부가 같이 있을 때 바꿔주는 형태로 통화를 하고 직접적으로 전화를 걸고 받는 일은 없도록 할 것. 야박해 보여도 일평생 뜨뜻 미지근한 관계를 이어나가고 싶어 만든 규칙이랄까. 나도 그에게 전화를 강요하지 않고 그 또한 나에게 전화를 요청하지 않는다.
그러다 12월 말, 소파에 누워 인스타 릴스를 보며 인생을 낭비하다가 문득 양가에 전화를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곧이어 귀찮은데,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이때 해야 한다고 깨달았다. 회사일과 같은 것이다. 아무도 찾지 않고 귀찮지만 일단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자발적 통화를 했더니 네 분 모두 어찌나 좋아하시던지. “아니 바쁜데 뭐하러 전화를 했어~” 너스레 떠는 시아버님의 목소리에서 작은 들뜸이 느껴졌다. 남편도 별 말은 없었지만 기분이 더 좋아 보였다. 한랭지옥이 조금 멀어진 기분이 들었다.
아직도 뭐가 맞는지 모르겠다. 일평생 말이 많은 나인데 부모님과의 전화는 늘 과묵해진다. 그래도 올해는 전화 패턴의 조정을 고려해야겠다. 나의 효도가 장거리 마라톤이라는 보장은 사실 없는 것이니까. 별안간 단거리 마라톤으로 끝나버리면 얼마나 슬플까. 그러니 조금 바꿔봐야겠다. 예전이 3g 요금제였다면, 이제 lte 정도로 바꿔봐야지.
물론 5g는 안된다. … 버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