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코로나에 확진돼버린 자의 일기
#1. 혹시 이것도 설레발 때문인 걸까.
살면서 설레발을 조심해야 한다. 업무가 조금 한가하다고 메신저로 “지금 월루 중, 개꿀”라고 말하는 순간 숨어있던 일이 달려든다. 뭐든 일희일비하는 편이라 설레발에 데인 적이 많았지만, 뒤통수를 맞은 경험이 나를 성장시켰고 이제 좋은 일이 생겨도 쉽게 설레발을 치지 않는 진중한 사람으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다.
코로나도 마찬가지였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코로나에 걸렸던 22년 상반기, 나는 기이할 정도로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었다. 백신 접종 시 전혀 아프지 않았던 것이 신호였던 걸까? 많은 모임과 약속을 다녔고 심지어 나를 제외한 전원이 코로나에 감염된 술자리도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 실드에 둘러싸인 것처럼 나는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았다. 괜히 기분이 좋았다. 어쨌든 코로나에 걸리지 않으면 좋으니까. 허나 좋은 감정을 함부로 드러냈다가 전염병에 걸릴까 싶어 입조심을 계속했다. 그러다 웬만한 주변 사람들이 모두 코로나에 걸리고, 실내 마스크 제한 해제가 거론되자 나도 모르게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아직 한 번도 코로나 안 걸렸잖아요. 어쩌면 인류 면역의 희망일지도 모르겠어요.”
“진짜? 야, 대박이다. 너 슈퍼항체인가 봐!”
몇 번 입방정을 떨어도 아무 일이 없었고 안심한 나머지 자기소개에 코로나 미감염자를 추가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추켜세워주는 게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그게 뭐라고. 내 안의 작은 관종이 최강 면역자 타이틀을 받고 신나서 춤을 추는 것이 느껴졌다.
… 어쩌면 이 설레발로부터 확진이 유래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2. 코로나는 사람을 헷갈리게 하지 않는다.
물론 긴 시간 동안 코로나를 의심했던 순간이 몇 번 있었다. 묘하게 미열이 느껴져 체온계로 측정해 보니 37.5도였을 때, 묘하게 목이 따갑다고 느껴졌을 때, 사무실에서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졸음이 올 때. 물론 마지막 증상은 평범한 회사원이라면 누구나 겪는 것임이 확인되었지만.
아무튼, 몇 차례나 설마…? 하는 증상이 발현되었었다. 그러나 검사를 해보면 어김없이 자가 키트에서는 한 줄이 떴고 부적이라도 받아온 냥 한 줄짜리 키트를 보면 코로나 유사 증상이 싹 가셨었다. 코로나에 걸렸던 친구들은 그랬다. 코로나는 그렇게 긴가민가하지 않다고, 걸리면 알 수밖에 없다며. 그들의 말이 맞았다. 코로나는 사람을 헷갈리게 하지 않았다.
설 연휴가 끝날 무렵, 본가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묘하게 피곤하고 열감이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오고 씻고 잠시 자고 일어났더니 강렬한 열감과 오한이 느껴졌다. 이건가? 하는 의심이 아니라 이거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열을 재보니 38.7도. 혹시 몰라 잠시 뒤에 다시 재보니 39.2도까지 올라갔다. 분명 난방이 뜨끈하게 돌아가고 있었지만 나의 몸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명절 피로로 인한 일시적인 몸살일지도 모르니 하루만 더 버텨보았지만 증상은 더욱 강렬해졌고 자가검사 키트에서 난생처음 두 줄을 만나게 되었다. 와우. 이거구나?
#3. 타이레놀은 명약이다.
나는 계절별로 상비약의 유통기한을 살피고 재고를 보충하는 타입이다. 특히 코로나 사태 이후 타이레놀과 감기약은 종류별로 갖춰두고 관리해 두었는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타이레놀 대용량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고속버스터미널 약국에서 타이레놀을 산다고 하니 약사 아저씨가 마침 좋은 물건이 들어왔다며 마약 거래처럼 제시한 물건이었다. 하도 비밀스럽게 이야기해서 진짜 타이레놀이 맞는지 혹은 몰래카메라인가, 싶을 정도였다. 허나 정식 타이레놀이었고 30알에 만 원이라 가격적으로도 이득이었다. 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후 약국마다 돌아다니며 주기적으로 타이레놀 대용량의 재고를 물어봤었는데 정말로 구매하기 힘들었다. 고속버스터미널의 약국 아저씨가 귀인이었던 셈이다.
여하튼 별생각 없이 집에 놔두었던 타이레놀이 코로나 초창기에 큰 도움이 되었다. 39.2도를 찍자마자 타이레놀 두 알을 바로 삼켰고 잠시 후 열은 빠르게 떨어졌다. 설 연휴라 병원에 갈 수 없어 하루 하고도 반나절은 타이레놀만으로 컨디션 관리를 했는데, 6시간에서 8시간 간격으로 두 알씩만 먹어주어도 열도 잡히고 말 그대로 살만했다. 약이 좋은 건지 내가 약발을 잘 받는 건지 두 알 먹으면 30분 이내로 열이 떨어졌다. 약을 먹었다고 속이 쓰리거나 아프지도 않았다. 무안단물, 만병통치약 모두 다 비켜라. 타이레놀이 짱짱맨이다. 덕분에 병원에 들르기 전까지 무탈하게 지낼 수 있었다. 존슨앤드존슨, 고마워요. 덕분에 잘 살았습니다.
#4. 뭐든 다 때가 있는 법.
코로나 증상 첫 발현 후 이틀이 지나 방문한 병원에서 나라가 인정한 코로나 확진자가 되었고 아무런 배려도 지원도 없는 코로나 확진자의 삶이 시작되었다. 억울했다. 21년도나 22년도 언젠가는 나라에서 쌀도 주고 반찬도 주고 휴가비도 줬다고 한다. 그러나 23년도에는 보건소에서 명백히 자비로 치료하고 알아서 나으라는 문자만 올뿐이었다. 야속해라. 만 60세 이상도 면역 저하자도 기저 질환자도 아닌 30대 일반인은 어떠한 보장도 받을 수 없었다.
게다가 나는 분명히 코로나인데 회사에서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나를 부려먹었다. 이미 너무 늦었기 때문인 걸까. 코로나 확진자에게 연락하는 것은 상 중 상주에게 업무를 부탁하는 것처럼 죄악시되던 시절도 있었다. 요즘은 “어이구, 코로나라면서? 푹 쉬고 메일 좀 확인해줘~” 라며 업무를 문의하는 전화가 자연스럽게 온다. 뭐든 다 때가 있는 법인 걸까. 초창기 코로나 환자들이 사생활 침해에 시달렸다면 후반기 코로나 환자들은 무관심에 시달리고 있었다. 남들 다 걸릴 때, 우르르 쾅쾅 같이 걸렸더라면 더 나았을까. 사람은 늘 가보지 않은 길을 궁금해하기 마련이다.
천만다행으로 약발이 잘 받는지 면역이 아직은 괜찮은지 약만 먹으면 말짱하게 일상생활을 할 수 있었다. 덕분에 일도 잘하고 집안일도 잘했다. 한동안 회사 일이 바빠 어질러졌던 집이 많이 깔끔해졌다. 이쯤 되면 코로나는 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인 걸까.
#5. 인류의 희망은 누구일까.
나의 코로나 증상 발현 이후 무려 4일 동안 남편은 자가키트 음성이 나왔다. 따로 자자고 했지만 어차피 시간문제라며 같은 침대를 고집했던 그였다. 은근히 코로나 양성을 기대하며 코를 찔러도 매번 한 줄만 나오자 그는 “내가 진짜 인류의 희망이다.”라고 아픈 사람을 도발했지만 얼마 뒤 발열 증세와 함께 두 줄이 나오며 부창부수 코로나의 길로 들어섰다. 짜식. 당신도 설레발에 당했구만. 내가 인류의 희망이 아니면 너도 아니다, 인마.
아직 주변에 코로나 무경험자들이 남아 있다. 이들 중 진정한 인류의 희망은 누가 될 것인가. 나는 큰 탈 없이 병을 앓고 지나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피부에 열꽃이라든지 후각이 둔해졌다든지 졸음이 쏟아지는 증상을 겪고 있다. 역시 병은 걸리지 않는 게 최고이다. 나는 이렇게 감염자가 되었지만 주변 지인들은 더 이상 아프지 않기를 바라본다.
액땜이라기엔 귀찮고 아픈 1월이다. 최소한 로또 2등은 되어야 이 시간이 납득될 것 같은데. … 이번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