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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링기 Apr 03. 2024

1화_ 포르투갈어를 아시나요

하루에 릴스 세 시간을 본 건에 대하여

브라질은 포르투갈어를 쓰는 나라이다. 남미 대부분의 나라가 스페인어를 쓰는데 혼자서 포르투갈어를 쓰는 이유는 결국 식민지의 역사와 얽혀있다.  이래서 선방 필승인 걸까. 길고 긴 포르투갈의 지배로 인해 브라질은 포르투갈어를 사용하게 되었고, 아이러니하게도 2022년 기준 포르투갈의 인구가 1천만 수준인 것에 비해 브라질의 인구는 2억을 넘어섰다. 이쯤 되면 포르투갈어가 아니라 브라질어라고 해야 하는 게 아닐까?


파견 프로그램에는 언어 교육도 포함되어 있었다. 출국하기 전, 두 달 조금 넘게 포르투갈어를 매일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월급을 받고 공부를 하다니, 거의 다 말랐던 애사심이 다시 샘솟았다. 그러나 사람은 적응의 동물. 감사함은 스쳐 지나갔고 금방 공부에 대한 압박감과 대뇌의 한계를 느끼며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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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적 재능을 가늠해 보자면 없는 것보다는 많은 편이다. 공교육의 희망이라고 부를 정도로 영어를 잘하고, 취미 삼아 여러 언어를 배웠었다. 그러나 삼십 대에 새로 배우는 외국어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게 난가, 싶을 정도로 습득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있었다. 이래서 공부에는 때가 있는 걸까? 나의 과거가 과장된 것인지 혹은 나의 능력이 줄어든 것인지 알 수 없는 가운데 점점 자신감이 침몰했다.

매일마다 새로운 것을 배웠다는 소소한 성취감과 돌아서면 까먹는 나 자신에 대한 심각한 무력함을 교대로 느꼈다. 해야 하는 걸 알지만 노력보다는 휴식과 빈둥거림이 절실했다. 점점 하루의 순 공부 시간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해야 하는데,라는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공부를 끝나고 기숙사로 돌아오면 냅다 누워 핸드폰을 보기 시작했다.


인스타 릴스나 유튜브 쇼츠의 알고리즘은 왜 이리도 촘촘한 걸까. 빠져나갈 구석이 없이 나를 붙잡아두었다. 새벽 한 시까지 릴스를 보다 정신 차리고 한두 시간 정도 공부하는 극한의 비효율을 선보였다. 맙소사. 노력을 하고도 못한 것보다 요만큼 공부했는데 이 정도면 만족하지,라는 패배주의적 마인드가 자꾸 피어올랐다. 하루는 마음을 가다 잡고 공부는 물론 운동까지 하며 나 자신을 불태웠지만, 그다음 날은 자빠져서 유튜브에 올라온 모든 예능 영상을 섭렵하기도 했다. 마지막 시험날이 다가올수록 조금씩 정신을 차리며 외면하던 포르투갈어를 마주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진작에 이렇게 공부할걸. 그렇게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며 한 땀 한 땀 포르투갈어를 배워나갔다.

그렇게 정신 차려보니 출국날이 코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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