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의 싸움 그 끝을 향하여

by 후이빈

새해의 기운을 느끼며 시작했던 강사과정이 여름을 지나 가을에 접어들면서 마지막 남아있던 동기에게서 연락이 왔다. 집 근처 다른 지점 스튜디오에서 나처럼 혼자 나름의 고군분투를 하고 있을 거라고 믿고 있던 터였다. 그녀는 강사과정을 그만두고 입대하기로 했다고 했다. 뭐? 입대? 아니 군복 입고 훈련하는 그 미군? 그녀는 사실 두 가지 길을 놓고 고민해 왔다고 했다. 원래 의료공부를 하고 싶었으나 재정상황이 안 돼서 고민하며 강사과정을 진행하던 중, 남들보다 좋은 체력을 가지고 더 나이 들기 전에 군에 입대하여 공부를 지속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는 것이다. 미군에 들어가서 복무를 하면 의대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는 나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지원은 이후 오랫동안 필수로 복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군에 몸을 담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쉽지 않은 결정이라는 것도 역시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동안 고민을 많이 해온 듯했다. 아쉬웠지만 결정을 축하해 주며 앞길을 응원하겠다고 말해주었다.

그렇게 마지막 동기까지 떠나자 조금 우울해졌다. 안 그래도 혼자 연습하고 끝없는 수업관찰에, 지난한 해부학공부까지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 소식이 더욱 나를 가라앉게 만들었던 것 같다. 스튜디오에는 매일같이 드나들었지만 같이 동고동락하는 동기가 없으니 혼자 아등바등하는 것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저기서 티칭 하는 강사와 나는 이렇게 가까운데 보이지 않는 그 간극은 좁혀지는 것 같지 않았고 내가 충족시켜야 할 시간들은 느리게 아주 느리게 채워지는 것만 같았다. 그럴 때면 어느새 내 모습에서 원인을 찾아 타인처럼 비난하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하곤 했는데 그중에서도 단골원인은 영어실력이었다. 주변에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은 당연히 나밖에 없었고 그 큰 틈을 조금이라도 좁혀야 한다는 생각에 수업을 녹음하고 집에 와서 한 문장씩 받아쓰는 연습을 했다. 한 시간 수업을 받아 적는데 하루 종일 걸린 적도 있다. 분명히 다 알아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집에 돌아와 녹음본을 틀면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황당한 경험은 부지기수였으며 그것도 하루 이틀 지나버리면 그나마도 힘들어져 무슨 수업인지조차 잘 모르겠던 적도 있었다. 역시 나는 바닥에서 시작이구나를 깨달으면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조금씩 날짜와 시간, 선생님 이름을 기록하여 헷갈리는 일이 없도록 기록하기 시작했고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받아쓰기를 해서 실시간으로 휘발되는 내 기억의 끝을 붙잡으려 노력했다. 아이를 낳으면서 뇌까지 낳아버린 아줌마의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자 내 마음가짐의 중요한 시작이었다. 곧 녹음뿐 아니라 내가 수업하는 모습을 담은 녹화본도 만들어 무슨 동작인지 헷갈리지 않도록 차곡차곡 모았고 생각이 나지 않을 때마다 들여다보았다. 녹음본과 녹화본은 점점 많아져 외장하드에 따로 담아 내 데이터베이스로 삼았다. 나만의 라이브러리를 구축한 셈인데 이 사실만으로도 내 마음은 먼지뒤에 비 맞은 땅처럼 차분해졌다. 그렇지만 미국인들은 쉽게 할 일도 나는 세 배 네 배의 시간을 들여야 그들과 겨우 비슷하게 해 낼 수 있다는 생각이 한동안 나를 괴롭게 했다. 과정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각양각색의 수습생 선배들을 알게 되었는데 어떤 사람은 과정을 빨리 마치는데만 중점을 두고 자신의 스튜디오오픈만을 고대하고 있었으며 어떤 사람은 모든 에너지와 시간을 몰입하여 과정을 육 개월 만에 끝내려고 했다. 그 선상에 같이 서 있는 나는 일종의 거북이 견습생으로 하루의 반은 운동에 나머지 반은 아이들을 키우는데 쓰고 있었다. 육 개월은 언감생심 일 년 안에 마치는 것도 이루지 못할 까봐 전전긍긍하는 영어가 달리는 아줌마견습생, 아마 그들에 눈에 내가 이렇게 비치지 않았을까.


하루는 영어에 대한 열등감이 다른 하루는 모든 시간을 다 쏟아부을 수 없는 엄마라는 처지가 아래로 아래로 나를 끌어내렸다. 그러다 모든 개인연습시간조건을 충족했을 때, 이론공부챕터가 하나씩 완료될 때 다시 위로 조금씩 나 스스로를 끌어올렸다. 시소처럼 내려갔다 올라갔다를 반복하면서 그 패턴 자체가 익숙해진 감정회로를 무심히 느낄 때쯤,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보조티칭 조건을 완료했다. 그러나 여전히 나의 목소리는 작고 나긋나긋했으며 동작을 잘 못하는 회원을 보면 내 영어를 탓했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은 나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그저 나만의 티칭방식이었으며 같은 말을 해도 열 가지 다른 동작을 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진실을 깨닫기엔 나는 너무 경험이 없었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았던 이론수업은 겨울에 들어설 때쯤 끝이 오긴 했다. 해부학, 특수집단 연구, 기구와 동작에 관한 이론, 기타 등등의 시험범위를 가지고 두 시간의 시험을 통과하는 것으로 이론을 마무리했다. 시험과 문제풀이 익숙한 한국인답게 싱글시절 공부모드를 장착하려 노력했다.


이제 마스터 선생님의 입실하에 직접 티칭을 데모하며 테스트를 받는 실기시험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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