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실기시험은 크리스마스로 모두가 들뜬 겨울에 진행되었는데 그동안 배웠던 수많은 동작들과 그 원리들을 한 번에 테스트받는다고 생각하니 시험 보기 몇 주전부터 스트레스에 위염이 도질 지경이었다. 이제 길고 긴 수련생활을 마칠 수 있다는 안도감이 들었지만 패스를 못하고 다시 시험 보게 되는 나를 상상하고 부르르 떨기 일쑤였다. 아이를 보다가도, 남편과 밥을 먹다가도 동작이 생각이 안 나면 교재를 뒤지고 연습을 했다. 배속에 날아다니는 나비가 한 무더기 들어차 있는 그런 불안하고 불편한 느낌은 시험 치기 전 한 달 내내 지속되었다.
사실 나는 반드시 끝내야 했다. 지난 일 년 동안 집중한다는 이유로 하루 종일 일하고 온 남편의 초췌한 표정을 외면하며 아이 둘 육아를 전담시켜 왔다. 주말에 스튜디오로 사라지는 내 덕분에 남편은 휴식을 거의 강제반납했으며 반년이 넘어가기 시작하자 서로가 말하지 않는 감정들의 스파크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서로를 위해 애써 모른 척하지만 싸해지는 공기와 그 뒤에 쌓여만 가는 피로들이 점점 아우성을 치며 극을 향해 가고 있었다. 둘째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라지는 엄마에게 서운한지 막 울어댔고 주말약속조차 잡지 못하는 남편의 인내심테스트가 결승라운드를 향해 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워킹맘의 삶처럼 반은 필라테스에 반은 육아에 몸담는 생활에 적응하느라 나의 에너지도 방전되어가고 있었다. 더 길어지면 나조차도 지속할 에너지가 남아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끝내야 했다. 그런 마음으로 시험을 준비했다.
실기는 다양한 기구와 매트동작들을 이해하고 직접 시험관 앞에서 티칭 하면서 중간중간 돌발질문에 답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예를 들어 "이 동작을 척추측만증이 있는 멤버에게 가르친다면 어떻게 변형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듣고 가르치는 시범을 보이거나, 동작의 이름을 말하면 그 자리에서 세팅부터 동작의 목적까지 티칭을 시연해 보는 식이었다. 기구의 종류도 많고 스튜디오에는 수업이 하루 종일 있었기 때문에 시험은 두 번에 나누어 한 번에 2-3시간씩 이루어졌다.
나를 가르친 마스터 선생님이 테스터어서 나를 잘 알고 있다는 점이 약간의 안정감을 주었지만 반대로 나의 단점 또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혹시나 드러날 나의 단점을 커버해야 한다는 그 압박감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첫날 시험을 기나긴 시간을 지나 무사히 치르고 두 번째 날 티칭을 모두 마친 후 마스터 선생님이 점수를 리뷰하며 합격여부를 말하려 했던 그 오분의 시간은 나에게 블랙홀처럼 느껴졌다. 온갖 생각이 나를 잡아먹기 직전, 마침내 축하한다며 합격증은 우편으로 올 거라고 말하던 그 순간을 나는 잊지 못한다. 뛸 뜻이 기뻐서 춤이라도 추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웬 걸, 집에 가서 시체처럼 자고 싶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쉬어야지.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천천히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축하를 받고 일주일 동안은 필라테스의 필자도 생각하지 않고 쉬었다. 시험을 끝낸 후 그 일주일 동안이 나에게 가장 평온하고 행복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만큼 쏟아부었고 그만큼 힘들었다. 같이 진행하던 원어민 트레이닝학생들은 금방 잘도 따는 것처럼 보였는데 막상 내가 해보니 이건 나만 다른 시험을 준비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길고 힘들었다. 이제 자격증을 땄으니 됐다. 이제 다음 단계는 이거보다는 쉽겠지. 이제 일할 일만 남았네!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물론 나의 용감한 무지함은 그 후 취직면접과 병아리강사시절을 보내면서 산산이 부서졌다.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티칭과정을 마친 직후 소중했던 나의 마음이 더욱 선명하고 아름답게 기억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해서 나의 산후 고통 속에 시작한 필라테스의 여정은 강사과정을 마무리하며 한 챕터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강사자격증과정을 완료하는 것은 이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게 문을 열어주는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한참이 지난 후 깨달았지만 나에게는 그저 그런 자격증이 아닌 나의 인생의 물길을 완전히 바꾸어주는 게임체인저였다. 남의 땅에서 힘든 임신출산을 겪으며 심신을 흔들어대던 그 혼란과 그 결과 폐허가 되었던 내 몸, 필라테스가 아니었다면 그저 갖지 못한 한국에서의 시간들을 억울해하고 힘들어하며 스스로를 수렁 속에 끌어내렸을지 모른다. 밟지 못한 내 땅과 사람들을 그리워할수록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 땅과 사람들이 이방인이 되었고 나는 물에 뜬 기름이 되었다. 두 가지를 다 사랑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것 아니면 저것, 기울어진 추처럼 내 마음은 그 평온한 발란스를 도대체 찾을 수가 없었다. 운명처럼 필라테스를 만나면서 수렁에 빠져들던 몸을 조금씩 꺼낼 수 있었고, 나는 기름이 아님을 선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과 기름은 섞일 수도 있다는 걸 처음 느꼈다. 여기가 내 땅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새로운 느낌이 이민생활 10년이 훌쩍 지나 처음 내 마음속에 들어왔다.
가끔 회원들이 어떻게 필라테스를 시작하게 되었냐고 묻는다. 그러면 나는 다른건 몰라도 이건 확실하다고 이야기해준다.
"건강하고 인생, 그거 자신하는거 아닌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