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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원 Oct 30. 2017

심혼전서(心魂傳書)

심리학자 아빠가 혼자 키우는 딸에게 전하는 지혜의 서신

아빠는 수년 동안 끔찍한 통증과 싸우며 살아가고 있어요. 언제나 머리 속의 같은 위치에 주기적으로 지독한 아픔이 찾아와요. 사고 때문일 수도 있고, 아빠 머리 속의 낭종 때문일 수도 있고, 어쩌면 지금도 생생한 트라우마의 기억이 고통을 유발한 것인지도 몰라요.


사랑하는 딸을 혼자 키우기 위해서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름난 여러 병원들을 찾아다녔지요. 하지만 어디에서도 정확한 원인을 발견하지 못했어요. 병원에서 가능한 모든 검사를 해보았지만 누구도 이유를 말해주지 못하더군요. 어떻게 치료를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는지도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그렇게 고통스러운 데도 병원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진통제뿐이었어요. 처음에는 다행히도 한 알이면 충분했어요. 그것이 금세 늘어나게 되었고 언제부터인가는 효과를 기대하기가 어려워졌어요. 지금은 그저 격통에 시달리며 몸부림치는 것이 전부이지요. 통증이 시작되었을 때 아빠는 아무것도 하지 못해요. 일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지요.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먹은 것이 없어도 위액을 끊임없이 토해 내요. 그리고 하루 종일 바닥에 웅크린 모습으로 널브러져서 통증이 가라앉기를 기다릴 뿐이에요. 


처음 고통을 느꼈던 순간에는 이러다가 곧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반복되는 고통을 맞이하다 보니 죽음이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되더군요. 아무리 괴로워도 시간이 지나면 아픔이 줄어들었기에 언젠가부터는 죽음을 걱정하지 않게 되었어요. 고통을 견디는 것이 너무나도 힘겨워서 혹시 이대로 죽으면 편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잠깐 해보았어요. 하지만 갑자기 무엇인가가 잘못되어서 정말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은 이제 하지 않게 되었지요. 죽음은 아빠의 일상에 가까이 있는 존재가 아니었어요.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한없이 두려워졌어요. 아빠와 오랜 시간 동안 우정을 나누며 같이 울고 웃던 친구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어요. 사랑하는 딸에게 고양이 모자와 장갑을 선물했던 삼촌이에요. 아빠와 비슷한 심신의 아픔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었기에 더 큰 동질감을 느꼈던 친구였지요. 몸과 마음이 힘들던 시기를 함께 이겨내고, 즐거운 일들을 함께 나누었던 사이였어요. 해주고 싶은 것이 많다며 앞으로도 그렇게 평생 우정을 나누자고 말하던 친구였지요. 하지만 그 친구는 지금 이 세상에 없어요. 아무것도 남긴 것도 없어요. 그저 아빠에게 아픔과 눈물만을 남겼지요.


아빠는 언제나 사랑하는 딸을 지키며 살고 싶어요. 이 세상에 어린 딸을 혼자만 남겨두고 죽을 수는 없어요. 하지만 아빠의 바람대로만 세상일이 이루어지지는 않을 거예요. 아빠가 언제 어떤 순간에 사랑하는 딸의 곁을 떠나게 될지는 아무도 몰라요. 그 친구와 같은 일이 아빠에게도 생길까 봐 겁이 나요.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갑자기 먼 곳으로 갈 것 같아서 무서워요. 이 세상에 사랑하는 딸이 홀로 남겨지게 될까 봐 두려워요.


"아빠 죽지 말아요! 약속해요!"


얼마 전에 미처 숨기지 못한 아빠의 아픈 모습을 보고 어린 딸이 소스라치게 놀라서 말했지요.


"네, 아빠 안 죽어요. 걱정 말아요. 아빠가 평생 지켜줄게요. 약속할게요."


눈물을 흘리는 딸을 안으며, 고통을 간신히 참고 아빠가 말했지요. 지금까지 아빠가 약속을 어긴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약속을 하면 언제나 안심시킬 수 있었어요. 그렇게 안도하며 울음을 그치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어요. 


'언제나처럼 약속을 꼭 지키고 싶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평생을 함께할 수 있을까?' 


아빠는 인간의 마음과 행동에 대해서 가르치고 연구하고,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치유하는 심리학자예요. 그래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정신적인 유산을 남기려고 해요. 아빠의 몸은 사랑하는 딸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 오랜 시간을 함께 버틸 수는 없을 거예요. 하지만 아빠의 마음과 영혼은 딸의 곁을 언제나 지킬 수 있겠지요. 건강하고 행복하게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아빠의 마음과 영혼이 남아서 전해주고 싶어요. 건강한 영혼을 지닌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마음을 다독이고,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삶의 지혜를 남기고 싶어요. 그 지혜들이 딸의 마음속에서 언제나 함께한다면, 아빠가 세상에 없더라도 외롭거나 슬프지만은 않을 거예요.


아빠는 아빠처럼 홀로 아이를 키우는 분들에게 무료로 심리상담을 해드리며 살아오고 있어요. 그 과정에서 마음에 아픔을 지닌 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드릴 수 있었어요. 하지만 아빠 또한 그분들에게 큰 도움을 받았어요. 즐겁고 행복하게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지혜를 그분들의 삶 속에서 발견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그분들을 돕는 만큼 아빠의 마음이 더욱 따뜻해졌어요. 오늘부터 아빠가 살아오면서 얻게 되었던 마음에 대한 지혜를 편지로 전할게요.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분들과 함께하고 그분들의 소중한 생명을 살리면서 얻게 된 것이에요. 그분들이 웃음을 되찾고 다시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알게 된 것이지요. 행복하게 살아가는 분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배운 것이기도 해요. 삶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하지만 학교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 것들이 아빠가 전해주고 싶은 지혜의 내용들이에요.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며 익히기는 어려울 거예요. 행복한 삶을 위해서 꼭 필요함에도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것들을 이제부터 들려줄게요. 


심혼전서(心魂傳書)


아빠가 남길 편지의 제목이에요. '리학자 아빠가 자 키우는 딸에게 하는 지혜의 신'에서 네 글자를 따왔어요. 그리고 동시에 '아빠의 마음과 영혼을 옮긴 편지'를 뜻하기도 해요. 심혼전서를 통해서 사랑하는 딸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거예요. 평생을 함께할 수 있을 거예요. 사랑해요. 아빠 딸로 태어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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