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 아빠가 혼자 키우는 딸에게 전하는 지혜의 서신
건강한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마음속에 무엇이 만들어지는지 생각해 보았나요?
눈을 감고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한 가지 모습만 떠오르지는 않을 거예요. 서로 다르게 말하고 행동하는 수많은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지요. 외면이 하나뿐이라고 내면에도 단일한 형태의 자신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에요. 다른 표정을 짓고 다른 생각을 하는 다양한 자신의 모습들이 마음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어요. 그리고 그들은 독립적으로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삶을 이끌어 가요. 그렇게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자신의 모습들 중에서 특히 삶에 큰 영향을 주는 세 종류의 자신이 있어요.
첫 번째는 '나는 사실 이런 사람이다'라는 스스로의 자각에서 비롯된 "실제의 자신"이에요. 정체성에 대한 앞의 두 편지들에서 언급했던 분의 경우에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즐기지 않고 혼자서 할 수 있는 과업을 선호하는 자신"이겠지요.
두 번째는 '다른 사람들은 나를 이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라는 관점에서 만들어진 "타인이 바라보는 자신"이에요. 그분의 상황에서는 "항상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고 화목한 관계를 유지하며, 여러 사람과 함께 하는 업무에서도 앞장서서 최고의 성과를 거두는 자신"이 되겠지요.
세 번째는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에서 형성된 "이상적인 자신"이에요. 그분이 꿈꾸는 모습은 "자기가 진정 바라는 것들을 선택하면서도 타인과의 갈등을 원만하게 해소할 수 있는 자신"이었어요.
이 셋은 항상 서로 비교하고 조율하면서 생각, 정서, 행동에 영향을 주고 있어요. 그렇기에 사람들은 각자 내면에 있는 자기, 타인, 이상의 영역이 서로 협조하거나 대립하면서 세상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지요. 외부의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말과 행동만을 보겠지만, 사실 그 안에서는 매우 복잡한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에요.
건강한 정체성이 형성되었을 때는 이 셋이 적절하게 균형을 이룰 수 있어요. 진정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하고, 그 길을 흔들리지 않고 나아갈 수 있게 되지요. 하지만 정체성이 제대로 확립되지 못하면서 세 가지 형태의 자신들이 상호 간에 균형을 잃게 돼요. 그러면서 마음이 건강한 상태가 아니라는 신호를 보내게 되고, 삶의 여러 영역에서 문제가 나타나게 되지요.
첫 번째 나보다 두 번째 나의 영향력이 커질 때 나타나는 신호는 불안이에요. 실제의 자신과 타인이 바라보는 자신 간의 균형이 깨지며 발생하는 것이지요. 여러 가지 상황들이 원인이 될 수 있어요. 자기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삶을 살고자 할 때마다 경험하는 부정적인 피드백으로 인해서 첫 번째 자신이 힘을 잃은 것일 수 있어요. 타인이 원하는 방향을 택할 때마다 돌아오는 달콤한 피드백이 두 번째 자신의 힘을 지나치게 강화시켰을 수도 있지요. 혹은 두 번째 자신의 모습으로 살지 못할 경우에 얻게 되는 부정적 평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타인이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에 더 집착하게 되었을 수도 있어요. 어떤 경우에서 균형이 깨진 것이든 두 자신 간의 차이가 커질수록 불안은 더욱 심해지고, 더 많은 삶의 영역에서 고통을 겪게 돼요. 다른 사람들이 바라는 나의 모습으로 살아갈수록 만족스러운 것이 아니라 점점 더 괴로워지는 것이지요.
첫 번째 나보다 세 번째 나의 영향력이 커질 때는 우울이 신호를 보내게 돼요.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에서 실제의 자신이 멀어질수록 더 큰 좌절과 무력감을 경험하며 우울이 심해지는 것이지요. 그런 상황에서는 자기 자신이 지닌 것들에 대해서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가 어려워요. 뿐만 아니라 자신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을 비롯해서 자신이 속해있는 세상까지도 부정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지요. 마지막으로 자신의 미래까지도 아무런 희망이 없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 불안과 마찬가지로 어느 한 가지만 원인이 되어서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에요. 어떤 이들은 이상적인 자신에 대한 기준이 지나치게 높아져서 첫 번째 자신과 세 번째 자신 간의 차이가 크게 벌어질 수 있어요. 그러한 경우에는 실제의 자신이 이상을 따라잡기가 굉장히 어렵겠지요. 또 어떤 이들은 이상적인 자신에 대한 기준은 별로 높지 않지만, 여러 부정적 요소들의 방해로 인해서 첫 번째 자신이 세 번째 자신의 이상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원인이 무엇이든지 간에 중요한 것은 둘 사이의 간극이 넓어질수록 삶은 더욱 고통스워진다는 것이에요.
사랑하는 딸의 마음속에서 세 자신은 어떤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나요?
아마도 각각 저마다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을 거예요. 마치 하나의 몸을 세 명의 주인들이 함께 소유하고 동시에 조종하고 있는 것과도 같은 상황이지요. 그러한 순간에 어느 한 명이라도 병약해진다면 몸을 건강하게 통제할 수 없을 거예요. 그렇다고 어느 한 명의 힘이 지나치게 강해진다면 나머지 둘이 제대로 역량을 발휘할 수 없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우선 세 가지 자신들이 각각 바람직한 모습으로 형성될 수 있어야 해요. 그리고 이들이 서로 간에 균형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하지요. 인생에서 만나는 중요한 타인들과의 긍정적인 관계 속에서 건강한 정체성을 확립할 때 그 두 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될 수 있어요.
사랑하는 딸이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며 건강한 정체성을 지니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자신이 진정 원하는 바를 알고 이루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요. 사랑하는 딸이 행복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아빠가 응원할게요. 오늘도 사랑해요. 아빠 딸로 태어나서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