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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원 Nov 08. 2017

정체성의 지혜 2/3

심리학자 아빠가 혼자 키우는 딸에게 전하는 지혜의 서신

건강한 정체성의 확립에 가장 방해가 되는 존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나요?


행복한 삶을 위하여 바람직한 정체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타인과의 관계가 굉장히 중요해요. 그중에서도 특히 부모를 비롯한 양육자와의 건강한 관계가 필수적이에요. 부모와의 관계에서 바른 정체성의 기반이 다져지게 되고, 계속해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는 힘을 얻게 되지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시기에 가장 큰 악영향을 줄 수 있는 대상도 또한 자녀를 가장 사랑하고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예요. 자녀가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독립을 한다는 것이 부모의 입장에서 결코 편안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자신의 곁을 떠나가는 것이 마음 아프기도 하고, 자녀의 앞날이 걱정되기도 하지요. 그러한 상황에서 마음의 균형을 잃지 않고 굳건히 버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에요. 견디다 못해 무의식적으로 자녀의 독립을 방해하게 될 수 있어요. 그래서 많은 부모들이 사랑이라고 이름 붙인 포대기로 자녀를 안고서 자신의 곁에 두려고 해요. 자신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녀의 삶을 위해서라고 합리화하면서요. 

하지만 자녀를 구속하는 역할을 하는 순간 그 포대기에는 더 이상 사랑이라는 이름표를 붙일 수 없어요. 그때부터는 지배와 소유를 위한 올가미가 되는 것이지요. 자녀를 지배한다는 것은 자신과 자녀의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자녀의 욕구나 바람을 허용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만 나아가도록 강요하게 되지요. 자녀를 소유하려고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과만 좋은 관계를 형성하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이는 더 이상 건강한 관계라고 할 수 없어요. 자녀가 스스로 더 큰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기회들을 빼앗고,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하는 관계이지요. 그럼에도 자신의 말과 행동이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해요. 자녀를 위해서라고 착각하면서 끝없이 지배하고 소유하려고 들지요.


그렇다면 건강한 정체성을 위해서는 어떤 관계가 이루어져야 할까요?


자녀를 보살피는 것은 곧 부모가 지닌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자원들을 전하는 과정이에요. 자녀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건강한 자원들을 물려주어야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 이후에 자원을 활용해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자녀의 몫이에요. 이때 부모는 자녀의 의견을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어야 해요. 부모가 원하는 방향이 아닌 자녀가 꿈꾸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것이지요.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는 분야를 자녀가 스스로 찾고, 스스로의 방식으로 성취하며 기쁨을 얻을 수 있도록 응원해야 해요. 그것을 넘어서는 것은 지나친 간섭이 되고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될 거예요.

하지만 오랜 시간을 자녀와 함께했기에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어요. 부모만이 자녀의 미래를 위한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정당화하며 균형을 잃게 되지요. 부모 자신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자녀들을 위한 선택이라는 거짓된 믿음을 지니면서요. 그래서 자녀들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때,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서운해하며 한탄을 하게 돼요. 화를 내기도 하고, 눈물을 보이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면서 어떻게든 자녀의 마음을 바꾸려고 하지요. 


정체성에 대한 첫 번째 편지에서 아빠가 얘기했던 분은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 때 항상 어머니의 의견을 따랐어요. 그때마다 그분에게 돌아왔던 것은 "착한 복덩이"라는 칭찬이었어요. 그 말을 들으며 한편으로는 속상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았고 안도할 수 있었지요. 지금도 그분에게는 "착한 사람"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녀요.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기쁘지도 만족스럽지도 않아요. 

그분이 살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착하다는 말이었어요. 어머니를 포함한 모든 이들에게 착하다는 평가를 받아왔어요. 어머니를 고생시키지 않는 아이, 분란을 일으키지 않는 학생, 다른 이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는 동료라는 말을 들어왔지요. 하지만 그러한 평가 안에 자기 자신을 편하게 한다는 내용은 담겨있지 않았어요. 그분에게 있어서 착하다는 것은 타인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진심을 무시해야 하는 것을 의미했어요. 자신이 원하는 것을 택할 때 발생하는 갈등을 견딜 수 있는 힘이 그분에게는 없었어요. 그래서 자신의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렇게 살아갈수록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행복한지를 점점 더 알 수 없게 되었어요. 안타깝게도 착하다는 말은 그분의 삶에 도움이 되지 못했어요.


착하다는 말은 본래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어요. 하지만 그분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부모가 자녀에게 착하다고 말하며 칭찬하는 것이 항상 긍정적인 기능만을 하는 것은 아니에요. 부적절한 상황에서 착하다고 칭찬을 하는 것은 오히려 건강한 생각과 행동을 방해할 수 있어요. 혼나거나 벌을 받는 것보다 때로는 착하다는 칭찬이 더욱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오직 부모가 원하는 방식으로 말하고 행동할 때만 착하다고 칭찬을 하는 것이 그러한 경우예요. 그런 칭찬은 자녀의 삶에 독이 되어 돌아오게 돼요. 착한 아들과 딸이 되기 위해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고 있는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지요.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말과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게 되고, 하고 싶은 행동을 단념할 수밖에 없어요. 이처럼 자신의 바람을 분명하게 나타내는 것이 존중받지 못하는 경험이 반복된다면, 당연히 건강한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도 어렵게 될 거예요. 그 대신에 확고한 정체성을 해치는 다른 무엇인가가 내면에 만들어지고, 불안과 우울을 야기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마음속에 만들어지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빠가 말했던 분이 "착한 복덩이"라는 칭찬을 듣는 과정에서 얻게 된 것들이 무엇이었을지 생각해보고 사랑하는 딸의 의견을 말해주면 좋겠어요. 이 내용을 이해하게 되면 자신의 내면을 보다 쉽게 들여다볼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행복한 삶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거예요. 아빠의 생각은 다음 편지에서 들려줄게요. 오늘도 사랑해요. 아빠 딸로 태어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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