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승원 Nov 08. 2017

정체성의 지혜 1/3

심리학자 아빠가 혼자 키우는 딸에게 전하는 지혜의 서신

오늘 아빠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불안과 우울로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분을 만났어요. 


그분의 어머니는 젊은 시절에 남편을 여의고 홀로 어린아이를 키웠어요.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이 고통스러웠지만 아이를 위해서 하루하루 꿋꿋이 버텨왔지요. 넉넉하지 못한 생활이었지만 언제나 아이가 최우선이었어요. 아이의 교육을 위해서 자신의 많은 것을 희생했어요. 결코 쉬운 삶이 아니었지만 고맙게도 아이는 누구보다도 건실한 어른으로 성장했어요.

어른이 된 아이는 많은 이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어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갖게 되었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어요. 수려한 외모와 예의 바른 태도로 많은 사람들과 긍정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어요. 어느 곳에서 누구와 함께 있든지 갈등 없이 화목하게 지냈고, 모든 이들이 그분을 좋아했어요. 

하지만 아무도 그분의 웃음에 가려져 있는 진짜 표정을 보지 못했어요. 내면에 무엇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지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어요. 사실 그분은 마음속에 가득히 담겨있는 답답함을 숨기고 살아가고 있었어요. 겉으로는 여유로워 보였지만 속으로는 숨 막히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지요. 자신이 삶의 주인이라고 느끼지 못하고 있었어요. 인생이라는 영화에서 감독이 아닌 항상 연기자에 불과했기에 자유로움과 행복을 망각하고 있었어요. 그렇게 살아오면서 불안과 우울이 마음속에서 점점 커지게 되었고, 더 이상 참고 견디기가 어려워졌어요.


무엇이 그분의 삶을 그렇게 고통스럽게 만들 것 같은가요?


모든 이의 부러움을 사는 삶을 살고 있었지만 그분은 행복하지 않았어요. 직업, 능력, 외모, 대인관계 등 모든 조건을 충분히 갖춘 것처럼 보였지만 전혀 만족스럽지가 않았어요. 사실 그분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편하지 않았어요. 다른 이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그들 앞에서 무엇인가를 수행해야 하는 것 자체가 굉장한 부담이었어요. 그래서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하는 현재의 일을 하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어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이 필요한 일을 꿈꿔오지도 않았어요. 인정을 받지 못해도, 돈을 벌지 못해도 좋았어요. 사람들에게 시달리지 않고 그저 묵묵히 혼자서 작업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대학에 진학할 때 자신이 원하는 학과를 선택할 수 없었어요. 그분의 어머니가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어머니는 많은 이들의 눈에 띄고 자랑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되기를 바랐어요. 전혀 다른 진로 사이에서 갈등이 있었지만 결국 어머니의 뜻에 따랐어요. 언제나 그런 식이었어요. 까다로운 어머니의 조건에 맞출 수 없어 연애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어요. 선택의 순간에 의견의 차이가 생기면 어머니의 의견을 따라야 했어요. 그렇지 않았을 때 시작되는 한탄과 넋두리를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효도라는 허울 좋은 핑계로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기를 포기하고 말았어요. 그와 동시에 어른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형성해야 하는 확고한 정체성을 획득할 기회를 자신도 모르게 상실하게 되었어요. 언제나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지 못하게 되었고,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하고 흔들리게 되었고, 인생에서 자신의 역할을 명확히 알지 못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주관이 없는 삶을 살아오면서 고통이 커져만 갔고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상태에 처했지요.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부모를 비롯한 타인들부터 분리가 이루어지고 굳건한 정체성이 확립되어야 해요. 물리적인 환경까지의 분리가 아니더라도 적어도 정신적으로는 분리가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정체성의 확립은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내면에 어떤 모습의 자기가 있는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인지하게 되는 것을 뜻해요. 자신이 진정 좋아하고 원하는 것들과 싫어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게 되는 것이지요. 아울러 정체성이 확고히 형성되어야만, 자신이 바라는 것들을 택했을 때 남게 되는 선택지들에 대한 아쉬움을 충분히 감수할 수 있어요. 선택한 것을 얻기 위해서 선택하지 않은 것들이 지니는 긍정적인 가치들을 과감히 포기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게 자신의 선택이 만들어내는 부정적인 요소들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선택에 대한 믿음을 지니게 돼요.


누구나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정체성의 형성 과정을 거치게 돼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혼자만의 힘으로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부모, 교사, 친구, 애인 등 삶에서 만나는 중요한 사람들과의 건강한 상호작용이 필수적으로 동반되어야 하지요. 어린아이는 모든 부분에서 부모의 보살핌을 받아야만 해요. 먹고 입는 것과 같은 사소한 사항들부터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선택하는 것과 같은 삶의 중요한 영역까지 부모의 결정을 따르게 되지요. 하지만 점점 자라면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요. 이때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 다른 이들에게 충분히 인정받고 존중받는 경험이 쌓이며 점차 건강한 정체성이 형성되는 것이지요. 그렇게 자신이 직접 삶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비율이 늘어나면서 마침내 인생의 방향을 자신이 흔들림 없이 결정하는 법을 배우게 돼요. 인생이라는 영화에서 배우로만 활동하다가 감독의 역할까지도 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과정을 경험하며 굳건한 정체성을 확립해야만 건강한 성인으로 살아갈 수 있어요.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는 인생의 방향이 어디인지를 알고, 의심 없이 최선을 다해서 그 길을 나아갈 수 있는 것이지요. 몸이 자랐다고 해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에요. 자기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지녀야 하지요. 하지만 어른이 된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건강한 정체성을 지니게 되는 것은 아니에요. 여러 요소들의 방해로 인해서 정체성이 제대로 정립되지 못할 수도 있어요.

 

무엇이 건강한 정체성의 확립을 가장 크게 방해하게 될까요?


사랑하는 딸은 무엇이 가장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사랑하는 딸이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 꼭 알아야 하는 내용이에요. 아빠가 딸을 돌보며 더 주의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아빠의 생각은 다음 편지에서 들려줄게요. 오늘도 사랑해요. 아빠 딸로 태어나서 고마워요. 

이전 11화 우울의 지혜 3/3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