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픽업 약속 따윈 없었다.
현준을 먼저 보내고, 은설은 집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비어있는 자리에 앉으려다가 임산부석임을 알아채고는 그냥 뒤로 더 들어가 서서 가기를 택했다. 온통 공사판인 도로를 지나면서 버스가 은설의 마음처럼 덜컹이며 흔들렸다.
‘말도 안 돼. 남편과 같이 오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없는 짓이었다. 첫사랑에게 난임진료라니. 하지만 국내에서 가장 성공률이 높은 의사를 가까이 두고도 차선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았다. 은설에겐 그만큼 임신이 절실했다.
임신을 시도한 지 넉 달이 지났을 때, 은설은 이미 약속된 시간을 모두 보내버린 느낌이었다. 정상적으로 부부관계를 했을 때, 25%의 확률로 임신이 이루어진다고 했지만, 은설 부부에게는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정상적인 수태 능력을 지닌 부부의 90%가 12개월 안에는 2세를 갖게 된다 하니, 준수는 마음을 좀 더 느긋하게 가져보자고 했다. 숙제를 마치고 나서 준수와 나누는 말의 대부분은 어느새 임신에 대한 은설의 푸념이 되어버렸다.
“······”
“······”
“그런데 왜 안 되는 거지? 매달 25%의 확률이었는데, 넉 달이면 100% 돼야 하는 거 아닌가?”
“글쎄.”
“사실 내가 수능 볼 때까지 확률과 통계 쪽을 극복 못했었어. 내 계산이 잘못된 거겠지? 자기 확률과 통계 잘했어? 계산 좀 해봐 줄래?”
잠이 들려다가 깬 준수가 귀찮은 기색이 영력한 얼굴로 자기도 확률과 통계는 잘하지 못했다고 했다. 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으므로, 은설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어차피 풀어 설명해 줘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그리고 12개월 안에는 90%가 임신을 하게 된다니까. 임신은 그저 마음을 조금 더 느긋하게 가지기만 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하려 했다. 은설의 뜻대로 마음이 먹어지지 않는 것이 문제였지만.
“······.”
“······.”
“근데 도대체 왜 임신이 안된 걸까?”
“글쎄.”
어차피 혼잣말에 가까웠으므로 은설은 준수가 대답을 하든지 말든지, 자신의 말을 제대로 듣든지 말든지 신경 쓰지 않았다. 실은 터져 나오는 중얼거림을 멈출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지난 넉 달 동안 받았던 스트레스가 입을 통해 풀어져 나오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은설은 비몽사몽 간에 자신의 주절거림을 들어주며 간간히 대답도 해주어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에 시달리고 있는 준수가 안쓰러웠다. 그의 손을 끌어 그가 좋아하는 자신의 귀 위에 얹었다. 준수의 엄지와 검지가 사부작거리며 은설의 귓불을 튕겼다.
“왜 임신이 안 된 건지, 내 얘기 들으면서 자기도 잘 생각을 해봐.”
“웅.”
귀를 내어주니 준수가 다정히 대답했다.
“1번, 우리의 부부관계가 정상적이지 않아서.”
“그건 아닌 거 같은데.”
“아니야. 우리가 비정상적인 걸 수도 있어. 영화나 드라마 보면 신혼 때는 밥 먹다가 말고도 눈이 맞아서 식탁 위에 그릇 한쪽으로 밀어버리고, 응?”
준수가 피식거리며 웃었다.
“솔직히 우리는 그 정도는 아니었잖아.”
“그건 그냥 자기가 영화나 드라마에 너무 심취해서 그렇게 느껴지는 거야. 우리가 정상이고 그게 비정상인 거야.”
“그럼 2번, 자기가 요즘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고 있어서. 자기 올챙이들이 너무 지치고 힘든 거지. 내 난자까지 오기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는 있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닐 거야. 아직 뭐가 고장이 났단 느낌은 받은 적 없어.”
“올챙이가 고장 났는지 안 났는지를 자기가 어떻게 알아?”
“······.”
“3번. 내가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이건 맞는 거 같다. 자기가 받고 있는 제일 큰 스트레스는 ‘임신’이야.”
“아니거든. 겨우 넉 달 노력해 본 거 가지고 스트레스는 무슨.”
이라고 받아치기는 했으나, 은설은 준수의 말이 일리 있게 들렸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이렇게 골똘히 생각했던 적이 이제껏 살면서 몇 번 없었다.
“학교 일이 너무 많아서 내 몸이 나도 모르게 많이 지쳤던 걸까?”
“영양제를 좀 먹어봐.”
“그래야겠어. 마지막 4번, 아주 우연찮게도 넉 달 동안이나 수정의 타이밍을 놓쳐서.”
“음. 그럴 수 있지.”
“기운 센 정자는 7일도 살지만 보통은 이틀 정도면 죽는 대. 난자는 딱 24시간만 살고.”
“그래?”
“자기는 피곤에 절어 있는 30대 중반 직장인이니까 아마도 올챙이들이 이틀 밖에 살지 못할 확률이 더 크겠지?”
“그런 얘기하지 마. 내가 너무 불쌍해지잖아.”
“내 생리주기가 비교적 일정한 편이긴 하지만 스트레스받으면 배란일이 2-3일 당겨지기도 하고 늦춰지기도 할 수 있고.”
“그렇지. 자기도 그럴 수 있지.”
“생리주기 계산해 주는 어플 가지고 아기가 만들어질 수 있는 날짜 대충 맞춰서 숙제를 하면 분명 오류도 있을 테고, 그러다 보면 넉 달 이상 애기가 안 생길 수도 있겠지.”
“4번. 4번이 제일 일리가 있네. 근데 왜 자꾸 숙제라고 그래? 숙제라고 하지 마. 숙제라고 그러니까 하고 싶다가도 미루고 싶어 지잖아.”
“아 그래? 근데 이거 ‘숙제’라는 말 이쪽에서 많이 쓰는 은어야.”
“이쪽? 어느 쪽?”
“난임 쪽. 나는 뭐 아직 난임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럼 바꿔 말해서, 애기 만들려고 애쓰는 쪽?”
첫 임신 시도를 실패한 이후, 은설은 이미 난임 관련 블로그나 카페의 글을 찾아 읽는 것에 심취해 있었다. 세상엔 은설 이외에도 수많은 여자들이 임신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많은 수가 잘 들어서지 않는 아기 때문에 은설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그 일을 ‘숙제’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자주자주 하자고.”
“뭐라고?”
준수가 외려 흠칫했다.
“자주자주 하면 굳이 날짜 같은 거 계산 안 해도 될 거 아니야. 임신할 확률도 높아지고. 일주일에 한 번 할까 말까인데 무슨 수로 애기가 생기겠어.”
“아아, 그렇긴 하지.”
내친김에 은설은 그간의 속상했던 마음을 준수에게 소상히 알렸다.
“신호를 보내도 막 못 알아듣고, 어플이나 들이밀어야 겨우 알아차리고. 이게 뭐야. 내가 거지야? 꼭 그렇게 구걸하듯이 해야겠냐고. 도대체 왜 그래?”
“내가 그랬나? 미안.”
“자기 혹시 아기 낳기 싫어? 그럼 그렇다고 하든가. 가족계획 다시 세우게.”
“그런 건 아니야.”
“혹시 2번이 맞는 거 아니야? 회사에서 스트레스 많이 받아가지고, 집에 오면 막 아무 생각 안 나고 마누라고 뭐고 다 귀찮고.”
“아니야. 그냥, 기왕 하는 거라면, 자기 즐겁게 해주고 싶고 막 잘해주고 싶은데 그러려면 에너지도 많이 필요하고 그래서 자주 못하는 거야. 내가 20대가 아니잖아.”
준수가 부끄러운 고백이라도 했다는 듯이 은설의 겨드랑이 사이를 파고들었다.
구름처럼 폭신폭신한 준수의 어깨를 두드리며 은설이 말했다.
“굳이 잘해주려 노력하지 않아도 돼. 그냥 자주자주. 내가 바라는 것은 그것뿐이야.”
은설은 그저 점점 ‘숙제’가 되어가는 그 일을 준수도 담담히 받아들이기를 바랄 뿐이었다.
“말이 나온 김에 하는 얘긴데 말이야.”
“무슨 얘기?”
은설이 말끝을 흐리며 뜸을 들이니, 준수가 궁금해 죽겠다는 듯이 채근을 했다.
“얼른 말해. 안 해주면 그냥 자 버릴래.”
“임신한 친구들이 그러는데 말이야, 임신이 잘 되게 하는 여러 가지 비법들이 있대.”
준수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웃으면서도 호기심을 보였다.
“뭔데?”
“뭐 이런 거야. 숙제를 하고 난 다음에 물구나무를 선다던가.”
“그건 어렵겠네. 자기는 물구나무 못 서잖아.”
“비슷한 요가 자세가 있어. 쟁기자세라던가? 그거 하면 돼.”
“다른 건 또 뭔데?”
“새벽 3시에서 5시 사이에 숙제를 한다던가.”
“자다 말고 일어나서?”
“내가 깨워줄게.”
“내가 가능하려나 모르겠다, 잠결에.”
“노력을 해 봐야지, 그건. 그리고······.”
“그리고 또 뭔데?”
“최소 이틀에 한 번씩. 쉬지 않고 한 달 내내 숙제하기.”
“······.”
“장어 사줄게.”
“그거 가지고 감당이 되려나.”
“배란테스트기도 써 볼 거야.”
“임신테스트기 말하는 거야?”
“아니 그거 말고, 배란일 체크해 볼 수 있는 그런 게 있어.”
“별 게 다 있구나.”
“같이 임신 준비하던 샘은 그거 쓴 지 두 달 만에 임신 성공했대. 그 샘이 쓰고 남은 것도 몇 개 얻었지롱.”
그녀의 기운을 받으면, 은설은 자신도 임신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느낌이 나쁘지 않아. 왠지 이번 달엔 잘 될 것만 같아.”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니 아마 확률이 많이 올라갈 거야. 그런 의미에서 이번 달엔 체력을 좀 아껴가면서 달려보자고. 나도 이제부터 참한 생각만 하면서 그날의 한방을 위해 에너지를 잘 모아두고 있을게.”
준수가 몸을 틀어 은설을 등지고 누웠다.
“뭐야, 자게?”
“응. 피곤해. 이건 절대 자기를 외면하는 자세가 아니야. 코를 심하게 골게 분명해서 자기 고막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등 돌리기야.”
‘섭섭해’라고 하려다가 은설은 그냥 말을 삼켰다.
숙제를 마치고 나서 30분 이상 은설의 수다에 맞장구를 쳐주었으면 준수도 노력할 수 있는 만큼은 한 것이었다. 은설은 준수의 등에 자신의 등을 맞대고 누웠다.
“따뜻하다. 나도 잠이 솔솔 올라 그러네.”
“잘 자.”
“자기도 잘 자. ······나 자기 다리 비벼도 돼?”
은설의 요청에 준수가 다리 한쪽을 뒤로 빼어 은설의 종아리 사이로 밀어 넣어 주었다.
“히히~땡큐”
“땡큐 안 해도 돼. 우린 귀와 종아리를 맞바꿨잖아.”
“그렇긴 하지. 그래도 난 잘 때는 귀 안 내어 줄 거야. 자기가 귀 만질 때 귓속이 너무 시끄러워져서 잠 안 온단 말이야.”
“그래서 지금 참고 있어. 자기 얼른 잠들라고.”
“알았어. 잘게”
준수의 종아리를 발등으로 살살 문지르며 은설도 잠을 청했다.
“나중에 애기는 내가 비벼줄게.”
“아니야. 그러지 마.”
“애기도 자기가 비벼주려고?”
“아니야. 애기는 비비는 맛을 모르고 크도록 만들 거야. 나중에 사위나 며느리한테 원망 듣고 싶지 않아.”
“헐..”
“귀도 못 만지게 하자. 나만 만지는 걸로 하자. 시원하고 찹찹한 우리 집 귀는 다 내 거.”
“치이.”
라고 했지만 눈을 감은 은설의 얼굴엔 한가득 미소가 머금어져 있었다.
‘다정한 사람이다. 이 사람과 함께 아기를 만들고 싶다.’
생각하며 까무룩 잠이 드는 와중에도 은설의 발등이 본능처럼 쉼 없이 준수의 종아리를 비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