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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온 Jul 27. 2024

그가 그토록 고독해진 이유에 대하여

에르난 디아스의 먼 곳에서



홀로 내던져진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새로운 땅으로 간다. 익숙한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새로운 땅으로 간다. 익숙하던 땅 위의 익숙하던 모든 것들은 가난하고 가난하기에 희망이 있는 곳으로, 기회가 있는 곳으로 떠나려 한다. 삶을 황량하게 만드는 지난날의 땅을 뒤로 한 채 이보단 낫겠지 싶은 땅으로, 기회가 열려 있는 땅으로,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땅으로, 그러나 사실은 베일에 싸여 아무런 보장도 해주지 못할 땅으로 간다.


그는 그 무엇도 원하지 않았다. 더 나은 삶을 꿈꾸지 않았다. 아무런 기대도, 희망도 없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살아갈 뿐이었다. 그런데 내던져졌다. 부모는 자그마한 기회를 붙잡은 틈을 타 어린 두 형제를 미국으로 내던져 버렸다. 부모는 아이들에게 가능성의 문을 열어주고 싶었기에 무작정 아이들을 미지의 땅으로 내던져 버렸다. 그렇게 그는 형과 함께 익숙한 곳을 떠난다. 황량하기만 했던 가난의 공간을 벗어난다. 체념하는 마음으로 상황에 이끌려 나를 아는 공간을 버린다. 그리고 나를 모르는 공간에 발 들이고자 한다. 익숙함과 낯섦이 교차하는, 그 불안정해지는 순간, 그래도 형이 있어 다행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형을 잃어버렸다. 나를 아는 유일한 존재를 잃어버렸다. 이제 그에게 미국이란 땅은 나를 아는 것이라곤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 되어버렸다. 주위를 둘러본다. 자신을 지탱해줄 그 무엇도 보이지 않는다. 무의 세계. 나를 정의할 그 무엇도 보이지 않는다. 나를 지켜줄, 붙잡아줄 그 무엇도 보이지 않는다. 그는 더없이 순수하게 혼자가 되어버렸다. 주위를 둘러본다. 매마른 땅이 보인다. 황량함 속에 완벽하게 홀로 남겨진 자신의 모습도 보인다.



이해의 부재


이해라는 것은 나를 안정되게 한다. 모르던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이해하게 되는 순간 내가 드디어 이곳에 녹아들었음을 느끼게 된다. 이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공간을, 이 처음 보는 모든 낯선 것들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 나는 비로소 적응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낯설기만 했던 그들에게로의 받아들여짐이 이루어진다. 낯선 곳에서 낯설게만 느껴지던 새로운 내 모습이 나에게도 받아들여진다.


이해할 수 없을 땐 불안함에 주눅이 들곤 하는데 새로운 공간과,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일들을 이해하고 나면 자신감이 생긴다. 기분이 좋아지고 힘이 채워진다. 이해할 수 없을 땐 불안함에 진짜 내 본 모습을 숨겨놓곤 하는데 낯선 공간과, 낯선 사람들과, 낯선 일들을 이해하고 나면 당당함이 생긴다. 안정감이 채워진다. 나를 감추던 벽이 허물어지고 나를 감추느라 들이부어 대던 힘이 빠진다. 내가 편하게 드러날 수 있게 된다. 이해하게 되는 날, 숨겨놓았던 나를 다시 꺼내 들게 된다. 새로움을 이해할수록 나는 더욱 나다워진다. 익숙한 길, 잘 아는 길은 너무나 당당하게, 거리낌 없이 잘 쏘다닐 수 있는 것처럼 그렇게 자연스럽고도 당당하게 새롭게 주어진 나의 길을 나답게 걷는다.


그런데 그는 미국이라는 땅덩어리가 지닌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유일한 언어가 아닌, 자신이 알지 못하는 언어로 하나가 된 낯선 이들을 이해할 수 없다.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이 거대하고 메마른 황량한 사막을 이해할 수 없다. 지금의 순간이 어쩌다 자신에게 들이닥쳤는지 이해할 수 없다.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는 그의 앞에 펼쳐진 새로운 땅 위의 모든 것들을 조금씩 알아간다. 그러나 그의 앞에 펼쳐진 새로운 땅 위의 모든 것들은 그로부터 빠르게 달아난다. 조금 이해했다 싶으면 다시금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질문들이 던져진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나날들이 흘러간다. 모든 것들이 그를 빠른 속도로 벗어나기에, 그가 그 모든 것들을 따라잡을 수 없기에 그는 이 땅 위의 모든 것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는 이 새로운 땅 위에 뿌리내리지 못한다. 땅에게로부터 내뱉어진 그는 녹아들지 못한다. 불안정한 삶을 살며 불안정하게 흔들린다. 그는 철저히 혼자다. 그 어디에도 스며들지 못하여 완연히 혼자인 이방인의 형태로 겉돈다. 그는 그답지 못한 걸음으로 한결같이 낯설기만 한 이국땅을 부자연스럽게 걷는다.



상실


그는 미국이라는 땅덩어리 위의 모든 것들을 이해할 수 없기에 그것들과 섞일 수 없다. 그는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헤어졌다. 자발적인 헤어짐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비자발적인 헤어짐이었다. 비자발적인 헤어짐은 그를 땅 밖으로 내뱉는다. 비자발적인 헤어짐이 주는 상실감은 그가 조금이나마 땅 아래로 내렸던 뿌리를 도로 걷어내게 할 만큼 그를 고통스럽게 했다.



황무지


그에게 주어진 땅은 황무지다. 그가 내린 뿌리마저도 메마르게 만들 황무지. 절대 비옥해지지 못할 땅. 이 퍼석거리고 거칠기만 한 땅은 그의 가녀린 뿌리에 상처를 내고 화상을 입힌다.


왜곡과 배척은 땅을 메마르게 한다. 누군가의 진실과 진심을 망가뜨릴 때마다 그 누군가의 땅은 척박해진다. 누군가를 비난하고 밀어낼 때마다 그 누군가의 땅은 끝없이 타들어 간다. 누군가를 향해 서서히 불려 나간 오해는 그 누군가가 뿌리내리고 자라날 토양을 불모의 모습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게 만든다. 그래서 그는 더 이상 쓸모없어져 버린 자신의 척박한 땅을, 더 이상 평온하게 자리 잡을 수 없게 된 자신이 타들어 가는 땅을 허망한 눈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오래오래 그 땅 위를 아련한 마음으로 겉돈다.


허무하게 흘러버린 시간은 땅을 메마르게 한다. 그저 살아있기에 마지못해 살아간다면 그 사람의 땅은 말라버린다. 과거에 차곡차곡 남겨놓은 유의미한 것들은 지금을 살아가게 할 거름이 된다. 무언가를 해보고 싶게 만드는 힘이 된다. 반대로 과거에 유의미한 것을 남기지 못한 자에겐 오늘을 살아갈 힘이 되어줄 비옥한 땅은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땅은 삭막해졌다. 한때나마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으나, 비옥해지고자 노력했으나 그 모든 노력 끝에 얻은 결말은 아무런 의미도 낳지 못했다. 좌절되고 좌절되고 거대하게 좌절된다. 그에게 유의미한 과거는 남아있지 않다. 그의 땅은 무의미함으로 바싹 말라버려 그가 영원히 이 땅에 정박하지 못하고 겉돌게 한다.


이정표가 없는 땅은 메말라 버린다. 내가 어울리는 사람들은 나를 설명해 줄 이정표가 된다. 그러나 그는 그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하기 때문에 그에겐 자신이 누구인지를 설명해 줄 그 어떠한 이정표도 없다. 그의 존재를 설명해 줄 가족도, 친구도, 이웃도 없다. 그는 그저 이방인일 뿐이다. 나 스스로 나의 이정표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영어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이기에 자신의 입으로 자신을 설명할 수 없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도 없다. 살아가기에 바빴고 고통에서 벗어나기에 바빴기에 그럴 여유가 없다.


그의 땅은 황무지다. 절대 비옥해지지 못할 땅. 퍼석거리고 거칠기만 한 땅. 그는 영원히 자리 잡지 못하고 영원히 허공을 맴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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