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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온 Aug 02. 2024

고독은 내가 틀렸다는 생각을 타고 들어온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



프로메테우스가 견뎌내야만 할 삶


인류에게 불을 선물한 프로메테우스는 불에 환호하는 인간과 불에 의해 고통받는 인간 모두를 보았다. 온전히 사랑하는 마음으로 전하였던 마음은 이내 후회로 점철된다. 과거 자신의 순수했던 사랑이 부정당한 이는 고통을 받는다. 그리고 그 고통에 잠식되어 끊임없는 자기 의심에 빠지고 만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예측불허하다. 물리학은 알아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간의 마음을 알기란 쉽지 않다. 우리 모두는 한낮 인간에 불과하다. 누군가의 불행을 상상만 하는 것과 실제로 마주하는 것은 인간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괴리다.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과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이 이후의 모든 불행으로부터 우리를 지켜낼 것이라 굳게 믿을지라도 이후 핵이 만들어낼 감정의 격변까지 헤아리긴 어렵다.



불안정성과 불확실성


사람은 감정 앞에 특히 불안정하다. 스스로의 감정에 대해서도, 타인과 교류하는 감정에 대해서도 우린 쉽게 불안정해지고 만다. 어제의 내가 품은 마음과 오늘의 내가 품은 마음이 여전히 같은 것을 향해 나아갈지라도 그 속에 담긴 감정은 어제와 오늘과 내일, 매시매분매초 달라진다. 지극히 인류애에 기인하여 이룩해낸 꿈이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 모두가 안전한 미래에 살기를 염원하는 마음 아래 놓이길 바라면서도 누군가가 그 마음에 의심을 품는다면, 그 결과가 또 다른 하나의 미래를 더 보여준다면 우린 그저 무기력하게 자기 의심에 빠지고 만다.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지고자 하는 마음 또한 그렇다. 희망적인 미래를 상상하며 제시한 아이디어가, 웃으며 가볍게 건낸 인사가 묵살된다면, 심지어 조롱당한다면 복수마저 꿈꿀 만큼의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오펜하이머는 불안정하던 시절을 보냈기에 어울림, 인정에 대한 갈망이 더했을 것이다. 스트라우스는 자신의 과거로 인해 권위자들 틈에서 열등감을 느끼고 진정으로 그들에게 소속되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격변의 시대, 그 불안정한 시대에 공산주의라는 하나의 뜻으로 모인 이들의 연대는 위협과 한순간의 실수 앞에 언제고 몇 번이고 무너지질 수 있다.


모든 것이 불안정하고 불확실하다. 그러나 우리는 영화를 통해 그 누구보다 예측불허하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들이 그 모든 불확실성을 뚫고 로스앨러모스에 모이는 것을 목격하였고, 그들이 그 속에서 이루어낸 것을 마주했고 함께 환호했다. 그리고 또 잠깐의 불안정과 불확실한 시간을 건너 마치 안정 상태에 도달하게 되는 것만 같은 그들의 미래를 잠깐이나마 마주하게 된다.



청문회


영화는 청문회를 통해 한 물리학자의 역사를 검증한다. 그가 이룩한 모든 것을, 그 안에 담긴 진정성과 가치를 끊임없이 부정하고 의심한다. 결과만 놓고 본다면 그는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아무것도 얻지 못한, 권력 앞에 그저 무기력할 수 밖에 없는 인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그가 그 결과에 도달하기 위해 거쳐온 수많은 과정은 결과만 놓고 잘잘못을 평가하기 어렵게 만든다. 한 인간의 역사를 이렇게 낱낱히 파해쳐 봐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결과만으로는 그 사람이 이룩한 진정한 가치를 평가할 수 없다. 모든 과정 하나하나를 파헤쳐 봐야만 제대로 된 가치를 평가할 수 있으며, 그 속에서 풍부한 가치를 얻을 수 있다.


오펜하이머는 어렵사리 이루어낸 모든 것이 그 본연의 가치를 한순간에 잃는 과정을 경험했고 그 상처 앞에 그는 결국 침묵을 택한다. 의도친 않았더라도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에 대해 또 한 번 진심을 담아 사죄하는 마음의 침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영화를 통해 오펜하이머의 역사를 본 우리는 그저 침묵하지 말기로 하자. 그 억지스런 청문회로부터 그는 부정당했으나 우린 그의 진심을 결과가 아닌 과정을 통해 보으니까. 우린 집단이 결과만 놓고 나에게 고지한 평가에 의존하지 말자. 우린 지난 날의 내가 거쳐온 과정을 보고 자신에게 알맞게 나 자신을 평가하자. 그럼 설령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언젠가는 나로부터 시작된 연쇄반응을 목격할 날을 만나게 될 것이다. 오늘날의 이 영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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