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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온 Aug 17. 2024

남겨진 이들이 승리하는 법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바튼 아카데미



남은 자들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


우리에겐 가끔 나 아닌 다른 누군가의 존재가 필요하다. 제아무리 혼자 노는 게 좋은 사람일지라도 누군가와 함께하지 않는 자신이 기이하고 쓸쓸히 느껴지는 날이 언젠가는 찾아오게 마련이다. 방대한 시간이 주어지는 날처럼. 저마다 누군가와 함께할 시간을 그리며, 한껏 들뜬 티를 내며, 혼자만의 시간 속에 남겨져 있어야 할 당신에게 미소 지으며 당신도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하는 인사를 끝으로 훌쩍 떠나버리는 날처럼.


사람은 홀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의 선택을 받고 또는 서로가 서로를 선택한다. 만약 성격이 괴팍하거나, 크나큰 미움을 샀거나, 무언의 이유로 불편한 존재가 되어버림으로써 누군가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이때의 소외감은 외로움으로 번진다. 만약 평소 모나게 굴어서 사람들이 꺼리거나, 그로 인해 나로부터 비롯되는 그 어떠한 제안도 거절당하는 것이 자명하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용기 냈을 때 내가 마주하게 되는 현실이 비웃음과 좌절이 될까 봐 두려운 나머지 누군가를 선택하고 싶어도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이때의 무력감은 외로움으로 이어진다. 만약 선택을 받기에도, 선택하기에도 어려운 상황, 아끼는 이를 상실한 충격이 너무나 크게 자리하여 다른 무언갈 생각할 만큼의 여력이 남아있지 않는 상황이라면 이때의 고통과 슬픔은 그 무엇으로도 씻어내릴 수 없을 것만 같은 처절한 외로움을 낳는다.


남은 자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선택받지 못해서, 선택하지 못해서, 선택이란 행위를 생각할 힘이 바닥나 버려서 그곳에 그대로 남겨진다. 그리고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그곳에 남겨진 이들에겐 외로움이 뒤따른다. 모두 서로에게 선택받거나 서로를 선택함으로써 떠나버린 공간에 그 모든 서로를 향한 매칭의 가능성을 뚫고 기어이 남겨지게 된 이들은 주변의 소란스러움이 사라진 만큼, 그 적막함이 내는 소음만큼 쓸쓸함을 온몸으로 경험하게 된다.



외로움을 달래는 법 1


외로움은 소음으로 달랠 수 있다. 서로 다른 것들끼리 맞부딪힐 때 터져 나오는 경쾌한 소란스러움으로 달랠 수 있다. 서로의 감정이 큰 소리를 내며 충돌하는 지점에서 오히려 외로움이 달아나 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단, 요란해야 한다. 외로움을 쫓아내려면 아주 요란한 충돌이어야 한다. 그리고 꾸준해야 한다. 외로움이라는 그 축 처지는 기분이 비집고 들어올 틈 따윈 없을 만큼 온 정신과 마음이 이 충돌을 향해야 한다. 왜 그들은 나를 선택하지 않았을까 하는 속상함과 왜 난 그들을 선택하려는 용기를 내보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끼어들 여유 따윈 없을 만큼 모든 신경을 충돌이라는 행위, 충돌에서 비롯되는 그 소음에 집중해야 한다.


충돌의 과정에서 우린 외부의 적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힘쓴다. 저치가 일으키는 이 모든 폭동의 순간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나는 내 모든 것을 긍정하게 된다. 나의 말은 무조건 맞는 것이고 너의 말은 무조건 틀린 것이라는 논조가 자연의 법칙인 것마냥 내 모든 의식을 자연스럽게 사로잡는다. 외로움이 꺾으려던 나의 생동성을 이 전투가 다시 되살린다. 저 짜증 나는 인간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벌이는 이 모든 충돌 속 소음이 내 안의 모든 것을 긍정하고 내 안에서 꺼져가던 의지의 생명력을 되살린다.


외로움은 우릴 자꾸만 안으로 향하도록 한다. 이럴 땐 맞불 작전이 필요하다. 내가 안에서부터 함몰되지 않도록 밖에 적을 둔다. 내가 내면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나의 공격성이 내면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싸운다. 아니, 어쩌면 저절로 붙어버린 충돌이 뒷걸음질 치다 외로움을 달래버린 걸 수도.



개인의 역사


감정은 시야를 가린다. 평소였으면 볼 수 있었을 것도, 평소였더라면 더욱 주의를 기울여 관찰할 수 있었을 것도 격해진 감정 앞에선 모두 놓치게 된다. 최악의 상황은 내 안에 불붙은 이 감정이 향하는 대상에 대해 알고자 하는 의욕마저 죽여버리는 것이다. 그 사람에 대한 일말의 기대마저 상실한 상태로 모든 순간에 좋지 않은 나의 감정을 덧씌워버리는, 그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를 그릇되게 평가하고 마는 것이다.


시간은 정말로 약이 될 때가 있다. 싫어죽겠다 싶은 인간과 오랜 시간을 함께하던 어느 날 문득 그 사람의 무언가, 아주 사소한 하나를 이해하게 되는 날이 온다. 그럼, 약간의 인류애가 이 사람에게도 깃들게 되는데, 그 순간 내가 잔혹하게, 매섭게 몰아붙이던 지난날이 떠오르고, 그로 인해 죄책감이 생기고, 그렇게 그 사람을 향한 미안한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게 된다. 그리고 미안함에 대한 보상처럼 갑작스레 인류애가 봇물 터지듯 이어진다. 마음의 문이 조금 더 열리고 그 틈으로 그 사람을 조금 더 관찰하게 되고, 그렇게 조금 더 그를 이해하게 되고, 그렇게 점점 그 사람을 알아가게 된다. 지금의 그가 될 수 있게 한 과거의 조각이 하나씩 꿰맞춰진다. 그의 인생 역사가 틀을 갖추고 의미의 살을 붙임으로써 점점 생명체의 모양새를 띠게 되면 그에게도 지극히 생생했던 역사가 존재했음을 깨닫게 된다. 현재 그의 행동이 지니는 과거의 깊이를 깨닫게 된다.


한 인간의 역사를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게 되는 날, 한 인간을 향한 애정도 생겨난다. 우리가 미래를 지향하는 인간이라지만, 예측을 예찬하는 요즘의 인간이라지만 우린 또한 과거로부터 애정을 느끼는 인간이기도 하다. 누군가가 살아왔던, 지나왔던 길을 알게 되는 만큼 그 사람을 향하는 온정의 깊이가 깊어진다. 현재의 모든 망나니짓, 모든 괴팍함, 모든 침울함 속에서도 그 사람의 지난 과거의 줄기를 발굴할 수 있고, 험난했을 길을 어렵게 걸어온 그의 인내를 존중하게 되고, 마침내 지금에 당도한 그에게 따뜻한 격려의 눈길을 보낼 수 있게 된다.



외로움을 달래는 법 2


충돌은 겉으로 봐선 드러나지 않는 무의식을 드러나게 한다. 허물, 욕심, 욕망, 약하고 여린 마음 같은 것들을 드러나게 한다. 그래서 충돌의 과정에서 상대의 무의식, 그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과 행동을 목격하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의 인간적인 측면, 지극히 나약하고 여린 측면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이 진실성과 여린 마음에서 그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 연민의 마음이 태어난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그를 좀 더 주의 깊게 들여다보게 하고, 좀 더 이해하려 노력하게 하고, 그리고 좀 더 그를 '나와 같다' 여기게 한다.


동질감.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동질감과 함께 올 때가 있다. 내가 겪었던 아픔을 그에게서도 발견할 때면 그가 겪고 있을 아픔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가 누군가의 아픔을 그저 상상만으로 이해할 때 겪는 아픔과는 달리, 이미 같은 아픔을 겪어본 이는 그의 고통을 아주 세밀하게 그려냄으로써 그 세세한 장면과 느낌 하나하나가 고통을 하나씩 가중하는 것처럼 더 크게 아픔을 공유할 수 있다. 이미 같은 아픔을 겪은 이는 세밀한 장면 하나하나를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기에 그의 고통을 더욱 내 것처럼 느낄 수 있다.


그러하기에 같은 그림을 그려낸 자들끼리, 같은 감정을 공유한 자들끼리 나누는 위로와 위안은 무경험자가 전하는 마음보다 더 진정성을 가진다. 같은 길을 걸어본 자들끼리 나눈 이해의 폭은 넓고도 깊다. 너무나 상세하게 서로의 마음을 그릴 수 있기에 마치 내가 연장되어 네가 된 것처럼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이 끈끈한 이해가 끈끈한 연결성을 제시한다. 나는 너의 선택을 받을 것이고 나도 그런 너를 무조건 선택할 것이다. 이들은 이 확고한 연결성 위에서 외로움을 잊을 수 있다. 나 아닌 누군가가, 네가 분명히 나와 함께 해줄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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