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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온 Aug 25. 2024

그 시절의 모든 것들, 마치 진짜 여름같아

2024년 8월, 과거 속에서



매일 새로움이 태어나는 시절


어릴 땐 여름이니, 겨울이니 하는 경계가 모호했었다. 더위에 대한 감각도, 추위에 대한 감각도 무뎠던 걸로 기억한다. 무딘 감각만큼 계절의 정의도 무뎠다. 선을 딱 그어놓고 여름은 덥다, 겨울은 춥다로 애써 정의 내리지 않았다. 계절을 분리해서 느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름 안에서도 매일이 달랐고 겨울 안에서도 매일이 매번 달라지는데 이 서로 다른 날들을 한 데 묶어 여름, 또 다른 날을 묶어놓고 겨울이라 굳이 칭할 이유가 없었다. 여름은 어떠하고 겨울은 어떠한지에 대해 생각이란 걸 딱히 해볼 일이 없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 어른들이 여름이라는 단어를 쓰는 계절이 오면 난 여느 때와 같이 여름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 없이 그저 보이는 모든 청량하고 맑은 빛깔들과, 들리는 모든 날카롭게 허공을 채워대는 소리들, 살갗에 와닿는 따가운 온도와 축축한 습기 같은 것들을 거리낌 없이 체험하고 다녔다. 그때는 그제는 비가 와서 축축해진 흙길을 찝찝해하며 걸었고, 어제는 날이 더워서 가족들과 시원한 수박을 까먹었고, 오늘은 덥긴 하지만 날이 화창해서 미친 듯이 온 동네를 뛰어다녔다 하는 식으로 달랐던 그제와, 또 달라진 어제와, 연이어 또 한 번 달라진 모습으로 들이닥친 오늘을 그때그때 마주하며, 느끼며 살아갈 뿐이었다.


패턴이 존재하지 않는 일상, 끊임없이 변화하며 서로 다르게 이어지는 순간들을 경계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내 이성의 개입 없이 보이는 것 그대로, 들리는 것 그대로, 느껴지는 것 그대로, 순수한 형태 그대로 받아들였다. 주어진 일상에 대해 생각의 개입 없이, 분류 없이 그것 그대로를, 온전한 형태 그대로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모든 게 다 새롭고 다르게 느껴졌다. 누군가 새롭게 태어난 하루를 내가 깨어나기 전에 머리맡에 놓아두고 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시절이었다.



진정으로 태어나는 계절


매일이 달랐던 그날 속 여름은 청아하고 선명하게 맑은 색을 띠었다. 그래서 모든 사물이 자신의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었다. 한낮의 산은 너무나 확연한 초록색이었고 하늘은 너무나 새파랬다. 집들도, 식물도, 사람도 그 어떠한 티끌 하나 없이 저마다 말갛게 고유한 색을 발했다. 한밤엔 낮 동안 생동하던 모든 색이 죽어버려 까맣게 숨죽인 공간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 텅 비고 시꺼멓게 변해버린 하늘에 새로운 빛, 별빛이 숨 막히게 가득 들어찼다.


나의 지나간 여름 속에선 완전한 빛의 죽음은 존재할 수 없었다. 모든 것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은 더할 나위 없이 빛났다. 여름 아래에선 빛의 존재는 결코 약해질 수 없었다. 모든 것들이 서로의 빛에 반하여 극적으로 대비를 이루었고, 산은 하늘의 존재를 뚜렷하게, 흙길은 자라나는 모든 생명의 존재를 뚜렷하게 하였기에 서로 더욱 빛나며 더욱 강렬하게 존재할 수 있었다.


쨍하게 푸르고 강렬한 것들이 뜨거운 숨결을 불러일으키는 낮의 시간과 모든 것들이 사그라들었을 때 비로소 잠에서 깨어나는 빛들로 수 놓인 밤의 시간을 살아가는 어린이. 이 어린 삶에게 주어진 여름날의 시간은 모든 보여지는 빛, 그 모든 서로 다르게 확실히 드러나고 각인되는 빛들로 인해 더욱 오늘 하루의 의미가 존중받고 더욱 오늘의 일상이 강인하게 이글거릴 수 있었다. 그 어린 생명 앞에 드러난 모든 생명과 모든 사물이 그렇게 강인한 생명력을 빛의 이름으로 내비치는 시기가 여름이었다.


생명의 탄생은 흔히들 봄에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나에겐 여름이 그 역할을 해왔다. 봄철에 돋아난 새싹이 진정으로 자신의 존재 의미를 깨닫고 확신에 차 그 의미를 만천하에 드러내는 계절인 여름, 흐릿한 대기와 애매한 타이밍 속에 감춰뒀던 본질적인 의미가 마침내 강렬하게 타오르게 되는 계절인 여름, 모든 게 죽지 않고 영원히 선명한 빛을 뿜어낼 것만 같은 계절인 여름이야말로 진정한 생명의 탄생을 알릴만한 계절이지 않을까.



어린 새장 안에서 더욱 화려하게 태어나는 여름


지나간 시간 속 어린아이는 어른이 된 지금의 자신보다 어린 세상을 살고 있다. 그 아이는 내가 지금보다 어려진 시간만큼, 거슬러 올라간 시간만큼 덜 여문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무지의 새장에 갇혀있단 것도 모른 채 해맑게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좁은 시야가 얼마나 답답한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 얼마나 나를 불안하게 하는지 하는 걱정 따윈 없는 세상을, 알아야 함에 대한 조급함 따윈 없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주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작고 어린 새장 안에서, 채워진 게 얼마 되지 않아 무에 가까운 세상 안에서 과거 속 아이는 또 한 번의 여름을 맞이하고 있다. 새롭고 강렬하고 다채로운, 지금의 단조롭고 단순하고 '덥다'라는 단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 여름과는 완전히 다른 여름을. 화려하게 내일은 더 화려하게, 그렇게 계속 거듭해서 화려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는 여름을.


가끔 애매한 '유'보단 확실한 '무'가 낫지 않을까 싶을 때가 있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엔 매일의 새로움에 순수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가진 게 얼마 되지 않을 땐 내게 없는 것들을 만나는 순간순간이 위대한 발견의 날로 칭송받을 수 있었다. 무의 상태에서 겪은 발견으로 인해 들이닥친 기쁨은 또 다른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동력이 되며, 다음 발견의 순간을 향한 기대감은 발견의 기쁨이 더 강하게 빛날 수 있도록 내 앎을 향한 의도를 깨끗하고 순수한 상태로 되돌려 놓는다.


그래서 그 시절의 여름이, 그날의 매일매일이 그토록 기쁘고 즐겁게, 늘 색다르게 다가올 수 있었을 것이다. 무의 상태였기에 오늘 눈에 담은 장면이 어제보다 더 선명하게, 그렇게나 뚜렷하게 각인될 수 있었을 것이다. 애매하게 알아버린 지금의 나와는 달리 아무것도 몰랐던 시절이었기에 모든 것들이 화려하게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여름을 좁은 시야와 좁은 생각을 지닌 어린 시절의 내가 겪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진짜 여름의 존재를 어렸던 나는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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