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온 Apr 20. 2024

이젠 끝내고 싶어졌다

2024년 3월, 프랑스 파리에서

불만은 좋은 것들 틈에서도 자라난다


만인의 파리에 도착했다. 안시에서부터 이곳에 떨어지는 순간까지 그 어떤 불편도, 그 어떤 불안도 없었다.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고 모든 것이 편안했다. 가져올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남겨두고 온 좋았던 지난 기억이 아쉬움보단 앞날을 기대하게 하는 데 일조하고 있음을 느끼며 리옹역을 빠져나왔다.


앞선 공간에서 다음의 공간으로 지나오는 과정에서 매번 지난 공간을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보았다. 그리고 매번 새로운 미지의 장소를 향해 불안의 시선을 던졌다. 그러나 여행 전 가장 우려되었던 파리로 향하는 여정에서는 되려 아쉬움과 불안의 날이 무뎠다. 익숙함. 너무나 다른 공간으로 나아감에도 이 여행 자체가 나에게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 익숙해지고, 무뎌지고, 즐거워지고, 편안해지고, 행복해지고. 불만은 찰나의 순간에만 발화하고는 금세 꺼져버렸다. 그래서 절대적으로 즐거움이 우세한 여행길이었다.


길이 더러워서였을까, 사람들의 표정이 무미건조해 보여서였을까, 건물들이 알록달록하지 않아서였을까, 날이 조금 더 따뜻해져서였을까. 아니면 좋았던 나날들 속에 서서히 가라앉혀지던 파리에 대한 좋지 않은, 아직은 마주하지 않은 선입견이 실제의 파리 앞에서, 현실적 감각 속에서 되살아났기 때문일까. 걷잡을 수 없는 화가 일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짜증스럽기만 한 시작. 난 이날, 이 불만의 시작점을 기억한다. 좋음과 싫음의 경계가 너무나 뚜렷했기에 정확히 기억한다. 리옹역의 가장자리를, 싫음으로 향하는 그 경계를 넘어섰다. 이전의 좋음이 너무나 확실하고 이후의 싫음이 너무나 명확해서 파리가 싫다. 아마 앞으로 쭉 싫을 것이다. 그 어떠한 노력 끝에서도 나는 너를 절대로 좋아할 수 없을 것이다.




싫음은 싫음을 낳는다


짧고 강렬한 싫음의 순간을 한 번, 그저 단 한 번 마주하고 나면 점점 싫음의 늪으로 침잠하게 된다. 평소에는 멍하다가도 눈앞에 싫음이 나타나면 의식이 또렷하게 살아난다. 흠, 내가 너를 싫어할 수밖에 없는 수만 가지 이유를 찾아내기 위해 혹은 극복, 너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몇 가지 이유라도 찾아내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집중한다.



이유를 찾기 위해 살아난 의식은 제 할 일을 한다. 멍하니, 온전히 지금의 감각과 감정을 받아들일 틈을 주지 않고 제 할 일만 한다. 외부를 내부로 끌어드릴 수 없도록 감각을 차단하고 내 안으로만 침몰하게 한다. 생각이 내 안에서만 돌아가게 한다. 결국 내 사고에 갇힌 채 그 어떠한 노력으로도 싫음을 극복하지 못하게 한다. 나를 향한 집중은 내가 믿는 것, 너는 싫어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그 믿음을 굳어지게 한다. 흐르는 상황에 가만히 사고를 내버려둠으로써 확장되던 모든 것들을 서서히 의식한다. 의식 하나하나에 내 모든 것을 집중시킨다. 이 의식과 집중을 통해 모든 정신과 감정이 싫음이라는 단 하나의 감정으로 응집된다. 싫음이 존재하게 된 데 대한 명분을 갖추기 위해 나는 넓어지지 못하고 점점 좁아진다.


편견은 알지 못함에서 발생한다. 반면 싫음은 무지에서도, 앎에서도 모두 온다. 모를 땐 몰라서 무작정 싫고, 알 땐 알아서 싫어할 수밖에 없다. 모름의 상태는 대상을 향한 비현실적 상황극을 펼치며 더욱 그를 싫어하게 한다. 그간 쌓아왔던 나의 모든 지식은 그를 향한 싫음을 대변하는 데에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단단히 붙들어 맨 의식을 놓지 못한 난 그렇게 정보의 많고 적음이 주는 무의미함과 어떠한 노력으로도 끝끝내 회복하지 못하는 관계로 인해 겪게 되는 무기력함을 안고 계속해서 싫음을 향해 나아간다.



비우지 못해서 너의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특별한 날과 특별한 장소에서는 유난히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이 빛을 발한다. 꺼뜨리고 싶어도 꺼지지 않는 빛.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넋 놓고 느낄 수 없게 하는 빛. 바깥세상을 있는 그대로, 그저 그 자체로 바라볼 수 없게 하는, 내 눈을 멀게 하는 빛. 여행이라는 특별한 이벤트가 나의 의식을 잠들지 못하게, 계속 깨어있게 한다. 특별한 기억을 추억에 새기고자 하는 욕망이, 지금 내가 서있는 공간은 특별한 곳이라는 자각이 공간과 공간 사이에 그득하여 나의 의식을 편히 쉬지 못하게 한다. 그럼에도 너의 의미를 찾아내 보자는 열의와, 미움은 극복해 낼 수 있단 희망이 되려 나를 더욱 깨우고 너를 더욱 강렬히 바라보게 한다. 그 맹렬한 집중력으로 너를 관찰하고 너의 틈을 포착한다. 그리고 그 틈을 긁어내고 틈을 키운다. 점점 나는 너로 가득해진다.



내가 텅 비어있어야 외부의 긍정이, 아무것도 덧씌워지지 않은 너 그 자체가 나에게로 흘러 들어올 수 있다. 그러나 나의 의식은 파리 너에게 들어서는 순간부터 너에게서 벗어나는 순간까지 잠들지 못했다. 시작된 싫은 감정은 꺼지지 않는 의식의 불빛 아래 끊임없이 너를 의식하고 미워하고 의식하고 또다시 미워하길 반복했다. 너와 나의 관계가 나아지길 희망하는 마음으로 너의 존재 의미를 찾아주고자 했으나 그럴수록 머릿속은 너로 채워져 너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다. 내려놓지 못해서 진정한 너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다. 비우지 못해서 너의 의미를 찾지 못한 채 뒤돌아섰다. 결국 유의미해지지 못한 너에 대한 미움만 남기고 나의 자리로 돌아왔다.




이제는 너를 끝마치며


파리는 내가 두고 온 공간을 그리워하게 하는 곳이었다. 여행의 즐거움과 추억에 대한 미련을 깔끔하게 잘라내 버리는 곳이었다. 파리에선 지치고 지겨웠다. 파리의 모든 것이 새로웠음에도 단조롭기만 한 서울과 뻔하기만 한 나의 방이 그리웠다. 파리를 등지고 내가 있어야 할 원래의 공간으로 복귀하고 나면 나의 일상은 늘 그래왔던 것처럼 반복적이고 기계적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런 빤하고 단순하고 반복적인 것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음에도 파리와의 새롭기만 했던 일상에 종료를 선언하고 쳇바퀴 같은 나의 일상으로 하루빨리 돌아가길 희망했다.


무의식적으로 일상의 굴레를 반복해서 돌려대던 나의 공간이 떠오른다. 파리를 떠나 다시 그곳으로 돌아갔을 때 얻게 될 평범하고 비의식적인 삶이 주는 아늑함이 떠오른다. 들어선 순간부터 나를 끊임없이 각성 상태로 내몰던 파리를 떠나 한결같이 따분한 내 집으로 들어선다면 나의 의식은 비로소 편히 잠들 수 있을 것이다.


익숙한 공간, 나에게 편안함을 주는 공간은 의식을 죽인다. 아이러니하게도 의식이 종료된 이 공간에서 되레 난 자유로워진다. 무언가를 당당히 싫어하기 위해 명분을 찾아내야만 한다는 압박과, 특별한 시간과 장소이기 때문에 모든 순간에 의미를 지워내야만 한다는 강박과, 그 모든 순간 속에서 내가 어떻게든 성장해야만 한다는 목표 의식이 자꾸만 허물어지는 공간. 나를 한없이 늘어지게, 또 한없이 게으르게 만드는 공간. 결국 원하던 대로 나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공간에 돌아왔다. 이제야 비로소 익숙한 일상에서 파리 너를 마무리하며 내내 켜져 있던 내 의식의 전원을 끈다.









이전 08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