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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온 Apr 27. 2024

내달린 끝에 공허를 만나다

존 윌리엄스의 부처스 크로싱



내 안에도 사냥꾼의 마음이 있다


밀러에게서 나를 보았다. 그는 들소를 바라보았다. 기억 속 수많은 들소를 찾아내길, 사냥하길 꿈꿨다. 들소를 향한 그의 마음은 단순한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는 나처럼, 우리처럼 들소로부터 자신을 찾길 바랐다. 그게 아니면 자신이 자신에게 집중하길 바랐거나. 그것도 아니면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음을 온전히 느끼고 싶었거나 혹은 자신의 존재를 사람들의 기억 속에, 이 세상에, 흘러가는 시간 위에 새겨 넣고 싶었거나. 내가 왜 살아있는지를, 왜 계속해서 살아가야만 하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나처럼, 우리처럼.



들소를 좇다


사람은 어떻게든 산다. 내게 대단한 무언가가 없더라도 살 수 있고 내가 이 세상에 쓸모없더라도 충분히 잘 살아갈 수 있다. 그걸 알면서도 우린 우리 자신에게 바란다. 내게 뭔가가 있길, 거짓이라도 좋으니 내 삶에 무언의 의미가 담길 수 있길. 그래서 우린 매일 사냥에 나선다. 내가 지금의 시간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이자, 내가 그대들에게 쓸모가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잡아내기 위해서. 내가 그대들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지금, 이 순간의 '나' 살아있음을 증명하기 위한, 내 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제물을 받치기 위해서. 난 오늘도 어김없이 거대한 들소 떼를 만나러, 사냥하러 나선다.


나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들소 떼가 저 산, 저 계곡 주위에서 자유로이 무리 지어 살아가고 있다. 난 이들을 언젠가 꼭 사냥할 것이다. 이 원대한 꿈을 이룩하고 보란 듯이 사냥꾼으로서 내 존재와 내 삶을 증명하고야 말겠다는 포부를 세상에 밝힌다. 그러나 비웃음. 모두가 내게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고, 꿈에서 깨어나라고 말한다. 그런 모진 말들 속에서도 다시금 그려본다. 끝끝내 믿어왔던 수천 마리의 들소 떼, 나를 증명할 수 있는 그것들이 저 끝 어딘가에서 아른아른 보이는 듯하다. 아니. 분명히 그들은 저곳에 있다. 끝없이 펼쳐진 그들 무리를 난 분명히 보았다. 그들이 있는 곳, 그들에게로 향하는 길을 나는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들소 떼를 그리며, 내 선명한 기억에 의존하며 결국 기어이 길을 나선다.


그들의 존재가 선명히 떠오르기에 더욱 미칠 노릇이다. 저기 있음을 아는데도 잡을 수 없을 때 몰려오는 절망은 나를 구석으로 내몬다. 간절하게 손을 뻗어도 거머쥘 수 없는 것. 그렇게 손을 내민 채로 속절없이 흘려보내는 시간 앞에 중압감이 점차 쌓여만 간다. 희망과 절망 사이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나는 두려움에 서서히 미쳐간다. 떨리는 마음으로 떨리는 다리를 이끌며 좁은 벼랑 끝으로 서서히 나를 몰아간다. 좁다란 조바심의 길을 따라 나도 모르게 올라선 벼랑 끝에서 절벽 아래를 내려다본다. 들소라는 꿈을 좇기 전 내 평온했던 지난날의 삶이 저 아래 편안히 깔려있다. 저 아래는 고요하고 안전하구나.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멀리 온 나는 아득히 멀어진 저 아래 고요의 세상을 그리워하며 지금의 불안하기 그지없는 이곳, 이 현실을 공포로 가득 찬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공허, 사라지고 부서져 버린 것이 주는 것


들소는 손에 없기도, 있기도 하다. 결국 난 그들을 다시 한 번 찾아냈고 사냥했으며 그들의 가죽 수천장을 얻었다. 난 이 전리품을 끌어안고 당당히 마을로, 나의 소망을 비웃던 자들이 있는 그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목숨을 내걸고 끝없이 헤맸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원없이 내 모든 정신을 쏟아부었다. 내가 원하는 것으로 나를 완성하기 위해 남아있는 내 모든 힘을 그러모아 돌아왔다. 내가 옳았고, 내가 해냈고, 내가... 내가... 내가 그 긴 시간을 진정으로 오롯이, 충실히 채워 나갔음을 너희들과 나의 뇌리에 못박기 위해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들소는 손에 있기도, 없기도 하다. 그것을 어렵사리 손에 넣었다 해도 다음날 아침 햇살 아래 속절없이 사라지고 마는 안개처럼 존재가 옅어지다 영영 사라져 버린다. 공허, 무의미. 내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위협적이지 않은 얼굴로 나를 가장 겁 질리게 만드는 것. 난 그들의 뒤를 쫓았다. 난 그들을 한마리, 한마리 죽였다. 난 그들의 가죽을 한장, 한장 벗겼다. 난 그들을 사냥하면서, 그들을 얻어내면서 일초, 일초를 보냈다. 내가 나의 모든 것을 쏟아낸 시간이었다. 내가 오롯이 사냥했던 시간이었다. 내가 완전히 나의 모든 것들을 담아낸, 몰입한, 나 바로 그 자체였던 시간이었다. 그것들이, 그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실재한 시간과 저 곳에 남겨놓고 온 내 의미를 증명할 수천 장의 들소 가죽, 수천 마리의 들소 시체는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나도 물거품이 되었다.


나는 내 시간 안에서 사라졌다. 나의 쓸모는 사라졌다. 나는 무의미해졌다. 나의 원래 장소로 돌아온 줄 알았건만 지금 내가 선 곳은 벼랑 끝이었다. 발 아래 내가 들소의 꿈을 말했던 곳이, 내 들소의 꿈을 듣고 비웃던 이들이 있던 마을이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일직선으로 곧장 떨어진다면 저곳에 닿을 수 있을 것 같다. 저곳, 나의 꿈이 실제로 실현만 된다면 내가 살아있음을 인정받을 수 있었던 곳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지금의 이 상실감, 이 공허함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마냥 말끔히 사라질 텐데.


난 돌아갈 수 없다. 왔던 길을 따라 되돌아 가기엔 너무 먼 곳으로 와버렸고 이젠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다. 불안에 쫓겨 어딘지도 모를 너무나 먼 곳으로 내달려 버렸고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해 버렸다. 지금의 이 끝에서 저 바닥 끝으로 곧장 떨어진다면 모든 걸 다시 되돌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추락의 끝에 난 죽음을 얻겠지. 영원한 상실을 얻겠지. 아마도 한가닥 정도 남아있었을지 모를 희망마저 돌이킬 수 없는 먼 곳으로 소멸해 버리겠지.



소중하던 것의 소멸


어렵게 얻은 것도 쉽게 사라질 수 있다. 그것이 세상이고 그것이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얼마나 어렵게 얻은 것이냐에 따라 되돌아오는 상실감의 크기가 커진다. 내가 얼마나 온 마음을 다했느냐에 따라 소멸로부터 오는 공허함의 무게는 무거워진다. 꼭 쥐고 있던 나의 것이 허탈하게 빼앗기고 말 때 전의를 상실한다. 그렇게 다음은 사라진다. 내가 존재했던 그 순간의 의미와 함께 나의 미래, 나의 다음 꿈도 사라진다.


내 꿈이자 나를 세상으로부터 환히 밝힐 등불이었던 들소. 들소는 내가 정 붙이기 힘든 이 험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간절히 바랐던 것이었고 내가 유일하게 진심으로 희망했던 것이었다. 들소를 사냥할 때 난 유난히 예리해진다. 보잘것없는 사냥꾼일지라도 들소를 사냥하는 그 순간만큼은 어느 누구보다 많은 것을 이해할 수도, 또 많은 것을 알아챌 수도 있다. 평소에는 되는대로 막살더라도 들소를 사냥할 때만큼은 나름의 순서와 법칙을 앞세워 일목요연하게, 깔끔하고 매끄럽게 사냥한다. 대부분의 시간 속에서 내 생각과 나의 행동을 의식하지 못할지라도 들소를 향해 총을 겨눌 때면 내가 지금 여기 있고 들소 한 마리를 향해 총을 겨누고 집중하고 방아쇠를 당기고 하는 그 모든 행동 하나하나에 또렷한 정신으로 임한다. 들소는 그저 먼 곳에 내걸린 꿈이라서 소중한 게 아니다. 내가 그 안에서 느끼는 집중하는 시간, 나를 느끼고 나를 체험하는, 나를 나로 가득 채우고 나로 새겨내는 그 시간이 소중한 것이다.


그 소중하게 새겨진 순간이 사라졌다. 내가 가장 사랑할 수 있었던 시간이 사라졌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기에, 시간 앞에 모든 것들은 다 변해버리기에 그날의 좋았던 시간은 두 번 다시 얻을 수 없다. 그래서 더 먹먹하고 더 아프고 더 안타깝고 더 무섭다. 영원한 상실, 영원한 소멸 앞에 무기력하기만 한 나 자신의 한계 때문에 겁이 난다. 다음의 사냥에서도 난 나의 한계에 가로막혀 또 한 번 영원한 이별을 겪겠지. 영원히 난 나의 기록이 소멸하는 것을 직접 목격하며, 가슴 아파하며, 한편으로는 두려움에 벌벌 떨며 그렇게 무력하게 나의 의미, 나의 존재를, 나의 희망과 나의 꿈이 사라져가는 것을 바라만 보아야겠지.



나선으로 이어보다


나선형. 난 이 단어를 왜 이리도 쉴 새 없이 되뇌게 되는가. 그건 아마 소멸의 끝에서 상실의 고통과 공포를 견디기 위함이겠지. 내가 잃어버린 그 소중한 모든 것들이 사실 다른 이름과 다른 모습으로 내 안에 쌓여 그다음으로 나아갈 발판이 되어주었다, 그리 나 자신을 위로하기 위함이겠지. 나선형은 진짜 존재할 수도, 그저 나 자신을 다독이기 위한 눈가리개일 수도 있다. 그래도 나선형을 향한 믿음은 진정으로 내가 간절히 원하고 이뤄낸 것, 내가 내 모든 것을 담아낸 그 소중한 것이 내 손 닿지 않을 뒤안길로 사라져 이제는 영영 만날 수 없더라도, 아니 내가 의미를 찾고자 몸부림치던 그 모든 것이 애초에 의미를 지닐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을지라도 내가 지나온 시간은 무의미하지 않기에 우리 다음의 희망을 다시 그리고 다시 길을 나서보자 하는 힘을 줄 수 있다. 다시 내가 살아갈 수 있게 힘을 빌려줄 수 있다. 그렇게 난 점점 닳아 이제는 태초의 의미가 희미해진 저편의 기억을 붙든 채 나선의 한 계단을 딛고 오늘도 내 들소, 내 의미를 좇아 사냥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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