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온 Apr 12. 2024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2024년 3월, 프랑스 샤모니에서

심심하다


지금의 시대를 관통하고 있는 나는 잦은 죄책감에 부딪히곤 한다. 멍한 상태일 때, 불필요한 무언가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소모하게 될 때, 지금의 시간 이후 내 손에 쥐어진 게 별로 없을 때. 그래서 샤모니는 나에게 죄책감을 충분히 안기고도 남을 곳이었다. 이곳은 아주 작은 시골 마을(내가 잘 몰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이었고 이곳에서 난 그다지 할 게 없었다.



많은 이들이 샤모니를 찾았다. 대부분 겨울 스포츠 즐기기라는 확실한 해야 할 일로 찾아온 듯 보였다. 그들은 가족, 친구, 또 다른 누군가와 함께였다. 그들의 시간은 스키 하나만으로도, 함께 하고 있는 누군가와의 대화만으로도 가득 채워졌다. 비록 작은 산골 마을일지라도 이후 그들은 이곳에서의 시간을 빈틈없이 빽빽이 채워진 아주 충만했던 날로 추억할지도 모르겠다.


그들과는 다른 목적이긴 했지만 나 또한 이곳 샤모니에 얻어갈 무언가와 해야 할 무언가를 가지고 오긴 했다. 프랑스에 온 김에 최대한 많은 곳을 나의 경험에 축적하겠다는, 일종의 도장 깨기 정신으로 행해진 마을 탐험과 평소에는 틈틈이 시간을 쪼개서 읽어야 했기에 온전히 즐기기 어려웠던, 그래서 이번에 각 잡고 격파해 보고 싶었던 책 읽기. 그렇게 나도 다른 이들처럼 이곳에서의 시간을 무언가로 차곡차곡 쌓기 위해 챙겨온 책을 읽어보기도, 동네를 쭉 돌아보기도 했다. 그리고 돌아갈 차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그들과는 달리 슬슬 무료함을 느껴보기도, 심심함에 안절부절못하며 조금이라도, 어떤 것이라도 더 채워보자는 마음에 축 늘어지는 시간 끌기용 발걸음으로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녀 보기도 했다. 그렇다. 이곳은 혼자 왔으며, 겨울 스포츠를 즐길 목적이라곤 쥐방울만큼도 지니고 있지 않은, 더군다나 심심한 시간을 전혀 즐길 줄 모르는 나와 같은 여행객에겐 무척이나 어려운 곳이었다.




소멸하다


심심함에는 무료함이 있다. 그리고 심심함에는 조용함, 차분함, 소음의 부재도 있다. 고요하고 넉넉함도 있다. 내가 어느 순간에 이르러서야 심심함을 맞닥뜨리게 되었는가에 따라 그날의 심심함이 훗날 지니게 될 의미가 달라진다. 샤모니를 추억하는 오늘의 내게 이날의 심심함은 모든 것이 소멸하는 시간으로 남았다. 겨울과 봄의 틈에 낀 샤모니로 향하는 길은 설산 아래 펼쳐진 파릇함 사이로 단조롭기도, 다채롭기도 한 것들이 채워져 있었는데 마치 이 세상에서 순수한 것들만 골라 모아놓은 것만 같았다. 그 맑디 맑은 풍경에 빨려 들어갈수록 지저분하고 거추장스러웠던 모든 것들이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샤모니에 도착했을 땐 계절의 기로에 멈춰 선 듯한 자연경관과 이전 도시들과는 또 다른 소음과 분위기로 채워진 공간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애매함과 낯섦이 샤모니로 오는 동안 설렘으로 부산스럽던 마음을 지워내고 차분함만을 남겼다.



새로운 세상, 새롭게 만나는 자연에 집중하다 보면 [해야 할 일 리스트]가 서서히 옅어진다. 그럼 무의식이 끊임없이 갈망해 오던 것이 표면으로 떠오른다. 모든 부담과, 불편함과, 억지스러움을 떨쳐낸 완전한 휴식. 계획을 앞세우던 의식이 소멸하고 무의식의 목소리가 자그마한 카페로 나를 인도한다. 그리고 시작된다. 그래야만 해서, 안 그러면 불안해서가 아닌 마음이 너무 편안해서, 자리가 너무 안락해서, 공간의 소음이 너무 적당해서, 그곳의 향기가 너무 포근해서 저절로 책을 찾게 되고, 저절로 그것을 읽게 되는 시간이.



카페를 나와 발길 닿는 대로 마구잡이 탐색을 이어간다. 이곳을 가봐야지 하는 계획은 애초에 있지도 않았고 그 순간 꽂히는 길을 향해 무작정 걸었다. 여기 골목의 구조가 마음에 들어서 괜히 한 번 들어갔다 나온다. 여긴 유난히 사람이 적네 싶어서 기웃거려 본다. 목적지가 존재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안하면, 조급함이 사라지고 여유만 남아 있다면 길을 걷는 매 순간 최적의 경로를 따져 물을 필요가 없어진다. 둘러볼 공간이 한없이 작은데 시간은 지나치게 넉넉하다면 어떻게 걸어야 이곳의 주요 명소를 하나도 빠짐없이 제시간 내에 둘러볼 수 있을지를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필요가 사라진다. 그저 그 순간, 그곳에 놓인 내가, 그저 끌리는 곳으로만 나아가면 그뿐이었다. 늘 내 머리채를 잡아 끌어대던 무언가가 이 한없이 작고 심심한 동네 샤모니에 와서 소멸해 버렸다. 그들의 부재로 걷는 발걸음이 너무 가볍고 편안했다.



샤모니에서의 끝이 다가올수록 내 쉼을 향한 갈망도 끝에 다다랐다. 나를 힘들게 해온 모든 것들을 말려 버리고 그 빈 자리에 휴식과 평온함을 가득 채웠다. 원하던 것을 얻고 나서는 급격한 무료함에 빠지긴 했지만, 그래서 그날 그 끝무렵은 한시라도 빨리 다시 안시로 돌아가길 염원하긴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그날 소멸시킨 것과 맞바꿔 채워온 것들로 지금 이 순간을 버티고 있을 수 있으니.



온전하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 아니, 정확히는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싶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려면 사랑하는 대상의 온전한 모습을 마주할 수 있어야 한다. 온전한 모습. 이것은 내가 열심히 고민한다고 해서 들춰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완전한 내버려둠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야 하고 그에게 그 무엇도 의도하지 않아야 한다. 그가 그 자체로만 존재할 수 있도록 내가 그에게로 보내는 모든 것들을 차단한 채 그를 멀찍이서 지켜만 보아야 한다.


샤모니에서 난 나를 내버려두었다. 내가 어떻게 하길 바라지 않았다. 심심함이란 고통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순간에도 내가 그 감각을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내버려두었다. 나로 향했던 모든 의지와 의식을 걷어내고 나를 지켜보았다. 난 열심히 노력하는 삶에서만 기쁨을 느끼는 사람인 줄 알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난 그런 사람이라는 결말에 도달했으니까. 물론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허나 그것만으로는 내 기쁨의 원천을 정의할 수 없었다. 내 진정한 기쁨, 나의 내면이 원하는 기쁨은 완전한 자유, 휴식이었다. 내 의지가 닿지 않는 곳에서 아무렇게나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유와 누구의 명령도 들리지 않는 곳에서 맛볼 수 있는 휴식을 원했다. 그 자유와 휴식이 갖춰진 샤모니에서 표면 아래 감춰져 있던 나의 온전한 형체가 제빛을 발한다. 그 순간만큼 내가 나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간 순간은 없었을 것이다. 그 순간만큼 고요하게 나를 사랑한 순간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 돌아보니 사랑이었다


막상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지금은 심심함에 온몸을 뒤틀어대던 샤모니에서의 시간을, 모든 정적이었던 시간을, 평소 무의미하고 무가치하다고 여길만한 시간을 쏙쏙 골라서 그것들만 그립다. 무의미로 채워진 정적인 시간을 유의미하고 풍부함으로 채워진 시간보다 더 사랑하게 된 것마냥 그날이 계속해서 그립다. 아무리 지겨워도 찌든 듯한 피곤함은 없었던 그날의 내가 의미로 가득 채우려 노력하는 지금의 나보다 더 사랑스러운 것마냥 샤모니에서의 무료함이 너무나 그립다.


현대인의 부지런함을 향한 강박은 떨쳐내기 어렵다. 우리에겐 부지런하지 못한 자는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믿음이 짙게 깔려있다. 무수히 많은 옆 사람들이 무수히 많은 무언가들을 열심히 하고 있으니 나도 뭔가를 꼭 해야만 할 것 같은 압박을 쉽게 그리고 자주 느낀다. 그러다 보니 심심함을 즐기기란 점차 불가능해졌다. 심심함이 스치는 순간 죄책감에 빠지고 이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운이 나쁜 날은 무의미한 도파민 지옥에 빠져들기도, 운이 좋은 날은 유의미한 무언가, 생산적인 무언가를 이뤄내기도 한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나는 만족감을 얻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족감과 함께 다량의 피로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죄책감과 피로의 무한 굴레 속에서 나를 잃고 나를 사랑하는 시간도 점차 잃어갈 것이다.


샤모니에서의 시간을 돌이켜보면 모든 순간이 행복했다. 막상 그날의 심심함을 뒤로하고 지금의 복작거리는 일상으로 복귀하고 보니 그날 그 순간의 모든 것이 사랑이었다. 나를 무겁게 하던 것들은 사라지고 나를 편안하게 하는 것들이 채워졌던 심심함의 시간, 온전한 나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시간. 비록 끝으로 갈수록 급격한 심심함을 경험했지만, 일상의 습관과 강박으로부터 진정으로 잘 싸워낸 시간이었기에 그날의 샤모니는 돌이켜보니 사랑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이전 07화 깨끗함을 경험한다는 것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