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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온 Mar 30. 2024

깨끗함을 경험한다는 것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2024년 3월, 프랑스 안시에서

깨끗함을 희망하는 이유


프랑스 여행을 계획하면서 가장 기대했던 곳은 안시였다. 인터넷에서 확인한 안시의 세상은 맑고 깨끗함 그 자체였으며 그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다. 복잡하지도 다급함이 느껴지지도 않는 곳이었다. 명확하고 깔끔한 곳. 실제 이미지뿐만 아니라 잔상마저 뚜렷하게 남는 곳이기도 했다.


깨끗함은 내게 안정과 휴식을 준다. 깨끗함은 더 이상의 무언가를 생각지 않게 한다. 깨끗한 공간과 분위기에 물들 때면 다른 불필요한 것들, 과하게 누적된 감정들이 지워지고 본연에 가까운 것만 남게 된다. 나에게 있어 건강한 휴식, 진정한 의미에서의 휴식은 바로 이런 맑고 깨끗한 상태에 놓여있을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안시를 통해 진정한 휴식을, 극강의 맑고 깨끗함을 나에게 선물하고 싶었다. 다 비워내고 본질만 남기고 싶었다. 다음의 시간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나를 위해.



깨끗함이 발화하는 순간


깨끗함을 느끼는 순간은 바로 이런 때이다. 맑은 공기, 투명한 호수, 깨끗한 거리, 많지 않은 요소로 채워진 심플한 공간, 과하지 않은 은은한 조명, 잘 가꿔진 자연환경과 같은 이런 1차원적인 조건이 충족된 곳에서 깨끗함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선명함과 명확함에서도 깨끗함을 느낄 수 있다. 이곳의 자연과 구조물은 니스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 니스는 뭉개지는 듯하면서도 온화한 색감과 질감을 가진 곳이었다. 그래서 활기차고 유연하게 어우러지며 포근하단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반면 안시의 경우 색의 대비감 때문인지 서로 다른 물체 간의 선이 더 선명하게 그어진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그래서 세상이 깔끔하고 반듯하게 보인다. 색감이 전반적으로 어두운 데에서 오는 무게감도 깔끔함을 만드는 데 기여한다. 차분하고 진중한 분위기, 선명한 경계가 주는 명확함, 단조로움과 여백의 미가 주는 안정감이 니스에서와는 또 다른 여유와 편안함을 준다.



나는 적당함이 좋다. 너무 과하지 않은 것. 이곳의 사람들은 서로 적절히 섞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안시의 이방인이기에 어쩌면 착각을 한 것일 수도 있겠으나 겉보기엔, 외지인으로서 느끼기엔 그러했다. 사람 사이에 최소한의 선이 존재하고 이를 벗어난 무례함도, 이를 뚫고 들어온 친근함과 친절, 개입도 없는 상태. 너라는 사람의 삶은 존중하되 네가 고립되어 외롭다 느끼진 않을 만큼의 관계. 내가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만큼만 도움을 주고 그 이상의 친밀함은 요구하지 않는, 쿨하게 빙긋 웃으며 돌아서는 이들이 존재하는 세계. 이 자질구레하지 않고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관계가 눈에 보이는 깨끗함을 넘어 개개인의 내면에도 감정적, 경험적 깨끗함을 준다.



매일 찍어내는 마침표


여태 살면서 제대로 마침표를 찍어본 날이 며칠이나 될까. 늘 집에 돌아가면서, 자기 직전에 무언의 찝찝함을 느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해야만 했던 일을 만족스럽게 마무리했더라도 뭔가 더 남아있지 않나, 뭘 빼먹지 않았나, 그러고 보니 이것과 저것도 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어김없이 뒤따른다. 하루가 이걸로 땡하고 종결되지 않는다. 늘 굵든 얇든 꼬리를 남기니 마음이 편하지 않다. (다른 이들에 비해선 아주 적은 양이겠지만) 만성적인 불안에 시달린다.


안시에서의 마무리는 달랐다. 니스에서도 마음 불편하진 않았지만, 이상하게 안시에서만큼은 마침표의 존재가 뚜렷하게 느껴졌다. 내일 어디에 가봐야지 하는 계획을 세웠음에도, 새로운 할 일이 생겼음에도 오늘 하루가 명확하게 끝맺어지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 이게 분명함이 주는 힘인가?


평소 일상에서는 내가 하고 있는 것들, 나의 상태가 명확하게 인지되지 않았다. 복잡한 상황과 관계, 병렬적으로 수행되는 업무들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너저분한 거리와 숨 쉴 틈 없이 채워진 물건들, 구조물들, 사람들이 모든 일과 감정이 시작되고 끝나는 지점, 그 경계를 지운다. 모든 게 혼탁하니 뚜렷한 인식과 인지가 어렵다. 그래서 내가 무엇을 시작했고 무엇을 끝맺었는지 제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런 혼란스러운 환경에 맑음과 깨끗함이 던져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시야가 맑아지고 모든 것의 경계가 뚜렷해진다. 아, 끝이 저기 있었구나? 난 이제야 또렷이 보이는 그 끝에 마음 편히 마침표를 찍을 수 있겠구나.




독립성


인간이라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생명체라면 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건 알지만 그럼에도 주변 환경의 요구사항을 100% 반영한 인간이 되기보다는 나 자체에 가까운 인간이 되기를 원한다. 내게 안시에서의 사람들이 그래 보였다. 그들의 시간은 그들 자신을 위해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혼자 운동을 즐기는 사람, 혼자 차를 마시는 사람, 혼자 느긋이 책을 읽는 사람, 혼자 널브러져 낮잠을 즐기는 사람이 그래 보였다. 다른 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다른 이와 어울리면서도 상대방에게 완전히 종속된, 의존하는 게 아닌 언제고 다시 독립된 개체로 돌아갈 수 있는 상태로 보였다. 함께하지만 각자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듯이 보였다.


종속된 인간, 타인에게 상당히 의존적인 인간은 명확하지 못한 것들로부터 만들어진다고 믿는다. 그들은 불만족, 일상의 미종결로부터 온다고 믿는다. 반면 독립된 인간, 타인과 어울릴 수는 있지만 나라는 개체가 명확히 존재하며 이 확고한 나를 기반으로 타인과 어우러지는 인간은 분명하고 확실한 것들로부터 온다고 믿는다. 그래서 안시 사람들의 독립된 시간이 눈에 띈다. 깨끗하면 더 잘 보인다. 내 생각과 행동이 더 잘 보인다. 내 시작과 끝이, 너와 나의 경계가 선명하게 그어져 있다. 내가 여기있고 너는 저기 있는 게 분명하게 인식된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마음인지, 너를 통해 무엇을 얻고 싶은지 확실하게 이해된다. 깨끗함이 만들어낸 명확함과 분명함이 나와 세상을 선명하게 드러내며, 개개인에게 독립성을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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