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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 사람 Jul 15. 2023

시작의 시작

시작으로 얻은 것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아주 오랜 시간 상상 속에서 일어나던 일이었다. 작가 신청을 하기 전까지 '브런치 작가 되는 법'을 검색하며 보낸 시간들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알게 되었다. '작가'가 되고 싶으면서도 한 문장을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나였다. 브런치 작가에 도전했다가 떨어졌다는 여러 후기들을 보았다. 막상 브런치에 올라온 글들을 읽어보면 '이 정도는 나도 쓰겠는데?'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나는 아직 작가 신청을 할 준비가 되지 않았어'라는 변명을 하며 글쓰기를 시작하지 않았다. 


사실 작가 신청을 할 준비-글쓰기를 시작하는 것-는 애초에 시작도 하지 않았으니 끝날 리가 없었다. 상상 속의 준비만을 하며 시간과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하며 시간을 보냈다. 언제나 나의 이야기를 즐겁게 들어주는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중 글쓰기의 필요성을 다시 느꼈다. 생각해 보니 브런치를 처음 알게 된 것도 그녀의 추천이었다. "언니 브런치를 써 봐. 언니 얘기 쓰면 다른 사람들도 좋아할 거야" 


이렇게 말해주던 그녀가 몇 년 뒤에도 한 문장도 쓰지 못했다는 나의 넋두리를 듣고는 "언니 일단 뭐라도 써. 우리 같이 쓰자. 나도 쓸게"라고 말하더니 다음날 자신은 약속을 지켰다는 톡과 함께 새로 쓴 글의 링크를 보내왔다. 오랜 시간 숨어 지내던 나의 승부욕 혹은 조별과제의 책임감 같은 것이 다시 존재감을 드러냈다. 


10일 정도의 시간 동안 글 2개를 썼다. 글을 썼다는 느낌보다는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열고 자판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 글쓰기를 마치고 같은 날 작가 신청을 했다. 머릿속에 있는 많은 생각 중 일부를 빠르게 써 내려갔다. 상상 속에서는 아주 오래 걸리던 일이었다. 막상 노트북 자판 위에서 손가락이 한번 움직이기 시작하니 멈추기 전까지 빠르게 움직였다. 아직 퇴고를 할 만큼의 성실함은 갖추지 지 못했기 때문에 브런치에서 제공하는 자동 맞춤법 검사를 한 번 돌리는 정도로 만족하기로 했다. 


작가 신청을 하고 2일 뒤에 작가가 되었다는 브런치 어플의 알림을 받았다. 이렇게나 간단한 일이었다니. 약간의 허무함과 안도감이 동시에 들었다. 시작하지 못한 많은 일들을 이렇게 처리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 얼마 만에 느껴보는 만족감인가. 일이 아닌 개인적 삶에서 오랜 시간 동안 없던 느낌이다. 시작은 미룰수록 더욱 어려워진다. 미뤄온 시간만큼 완벽해져야 손해 본 느낌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손실 회피는 욕구이므로 이겨내기 위해서는 꽤나 큰 의지력이 필요하다. 


이제 시작을 마쳤으니, 앞으로 글을 쓰는데 필요한 의지력은 줄어든 셈이다. 시작은 다음 시작을 좀 더 쉽게 만든다. 시간이 지날수록 좋은 글만 써서 발행하고 싶은 마음과 싸워야 하겠지만 우선 뭐든 써서 내보내야 부족함을 확인할 수 있다. 부끄러움을 이기는 것도 능력이다. 시작은 어쩌면 초심자의 부끄러움과의 싸움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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