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의 매력
폴 댄스를 시작한 지 갓 한 달이 넘은 폴린이다.(폴린이는 폴 초보자를 의미한다) 어떻게 폴 댄스를 시작했냐고 묻는다면 그저 호기심이었다. 회사원일 때는 요가 또는 필라테스를 정기적으로 다니다가 지금은 등산과 러닝을 꾸준히 하는 생활체육인이 되었다. 조금은 역동적인 운동이 당겼는지 새해 계획 중 하나가 폴 댄스 배우기였다. 다만 백수 신세라 이렇게나 빠르게 폴 댄스를 시작할 줄 몰랐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학원이 있었고 마침 새해 이벤트로 1회 무료 체험을 진행했다. “무료”에 이끌려 수업 예약을 한 후 가지고 있는 옷 중 제일 짧은 상, 하의를 챙겨 학원으로 향했다. 시간 활용이 자유롭기에 5시 40분의 수업에 참여했고 비슷한 연령대보다는 어린이가 많았다.
본격적으로 동작을 배우기에 앞서 함께 스트레칭을 했다. 스트레칭 동작은 요가와 필라테스 수업에서 하던 동작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다만 조금 더 빨랐고 유연성을 요구했다. 반년 이상 꾸준히 운동하던 생활 체육인이었기에(걷기에 특화된) 하체의 힘은 조금 있지만, 유연성으로 따지면 100점 기준으로 10점은 되려나 싶은 몸이었다. 아이들은 굉장히 유연했다. 모두가 다리를 찢고, 허리를 뒤로 동그랗게 말고 있을 때 나는 같은 동작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각도에서 허우적댔다. 겁이 많은 내가 느끼기에는 더 구부리면 척추는 부러질 것 같았고 황새를 쫓다가 가랑이가 찢어질 뱁새였다. 분명 스스로 전력을 다하는 자세였지만 선생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을 테고 차츰 내게로 걸어오셨다. 자세를 잡아주는 그녀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헙”하며 숨을 참았다. 힘들면 보통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데 그 정도의 여유는 있었는지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마음속으로 ‘체험 수업이 있어서 다행이야, 폴 댄스는 정말 나랑 안 맞는다’라는 생각을 다섯 번쯤 했다. 그만큼 공격적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이 마음은 개별 동작을 배우면서 손바닥 뒤집듯 반전되었다. 첫날의 동작은 “물구나무”자세였다. 바닥에 무릎을 대고 엎드린 후 두 손으로 폴을 잡고 팔꿈치로 지지한다. 그다음 뒷다리를 힘껏 올려 차서 물구나무를 선다. 같은 동작을 배우는 수강생과 서로 다리를 잡아주며 몇 번 시도하니 예상보다 쉽게 완성할 수 있었다. 선생님의 시범 동작을 볼 때만 해도 ‘무서워서 어떻게 하지’라는 마음이었는데 한 번 성공하고 나니 뜻밖의 희열이 따라왔다. 이 자세는 물구나무를 서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지탱하면서 정수리가 아닌 이마를 땅에 마주 봐야 하는 자세다. 또 가슴은 내밀고 등은 구부리는 힘을 줘야 한다.
물구나무를 섰을 뿐인데 목과 어깨가 너무 시원했다. 마치 마사지를 받은 것처럼 머리도 상쾌했다. 구부린 자세와 거북목을 달고 사는 내게 해당 부위가 펴지는 느낌은 엄청나게 매력적이었다. 분명 스트레칭을 할 때만 해도 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마음이었는데 물구나무서기 자세 하나로 상황이 역전됐다. 목과 어깨가 펴지는 느낌이 뭐길래 긴축 재정을 펼치는 중인 백수의 마음을 홀린 것일까? 그리고 여전히 백수인 자의 재등록을 도운 폴 댄스의 매력은 무엇일까.
수업을 들으며 몸에 대해 통찰을 한 결과 힘이 엄청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힘을 주며 살라고 가르친 사람도, 강요한 사람도 없는데 어깨와 목에는 왜 이렇게 힘이 들어가 있을까. 일을 하지 않는 지금도 왜 어깨는 긴장한 듯 올라가 있는 것일까. 동작을 배우고 몸을 조금씩 늘려나가면서, 그리고 힘을 빼면서 자연스럽게 자신과 연결 지었다. 조금 힘을 빼고 살아도 괜찮다는 마음의 소리였다. 또 유연성을 길러서 멋진 동작을 만들고 싶은 욕심도 자라났다.
이제 두 달 차 폴린이인 내가 얼마나 학원 생활을 지속할지 당장은 확언할 수 없다. 다만 머리를 안 자르고 기르고 있는 이유는, 폴 수업에 맞춰 내 일정을 계획하는 이유는 당분간 내 삶에는 폴 댄스가 꽤나 높은 순위로 자리 잡고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만족할 만한 동작을 완성할 때까지, 입문을 졸업하고 폴 웨어를 하나 더 구입하기 전까지는 뜨거운 마음이지 않을까.
아무래도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