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박 8일 서유럽여행 (06/25)
유럽 여행을 시작 한 지 3일째가 되는 날이다. 아쉽지만, 다시 올 기약 없이 로마를 떠나게 되었다. 오전 7시 30분,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버스에 올랐다. 행선지는 피렌체. 로마에서 북서쪽으로 233Km를 가야 한다. 교통편은 크게 비행기로는 1시간, 기차로는 1시간 반에서 3시간, 육로로는 4시간이 걸리는 거리이다.
우리 일행은 가장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무솔리니 통치 시절 건설되었다는 1번 고속도로를 타고 우측으로는 아펜니노 산맥을 기대여 북서쪽으로 향했다.
피렌체(Firenze)는 토스까나(Toscana) 지방의 주도(州都)이다. 영어로는 프로렌스(Florence), "꽃 피는 마을'이란 뜻이다. 역사적으로 참으로 오래된 도시로 고대 로마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 제국 시절에는 게르마니아와 갈리아 지역으로 출정하는 로마 부대의 중간 숙영지이기도 했다고 한다. 이곳은 꽃들이 항상 만발하여 로마 군인들에게 향수를 달래며 휴식을 취하는 사랑받던 도시였다고 한다.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꽃을 피운 도시이기 때문에 자부심 또한 대단한 곳이다.
미켈란젤로, 단테, 레오나르도 다 빈치 등 중세 유럽을 대표하는 인물들 또한 이곳 피렌체 출신이다. 인구 35만 명으로, 도시의 남동부에서 서부의 방향으로 아르노 강이 흐르고, 강 양쪽 언덕을 중심으로 도심이 발달하였지만 전체적으로는 강 북쪽이 좀 더 발전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르노 강은 기후와 토질 등의 자연 여건이 좋아 농산물을 비롯하여 문화를 비롯하여 풍요 그 자체를 구가하던 도시였다는 면모를 이곳 저곳에서 발견할 수 있게 된다.
토스까나(Toscana, 한때 겨울용 양털 점퍼가 유행했을 때 많이 입었던 토스까나 점퍼의 이름 기원이 이곳 토스까나이다. 아직도 양들을 방목하는 장면을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다.)
[사진 설명 : 위쪽 왼편 사진, 로마에서 미처 못다 한 얘기 중 하나, 로마에는 길거리에 소나무가 많았다. 우리네보다는 키는 컸지만 분명히 가지치기한 소나무가 많았다. 위쪽 가운데 사진은 1번 고속도로, 위쪽 오른쪽 사진은 안개 낀 고속도로 주변, 가운데 왼쪽은 이탈리아 지도에서 본 로마와 피렌체의 위치, 가운데 오른쪽은 피렌체시의 문장, 역시 꽃 피는 마을답게 주제는 붉은 꽃이다. 아래쪽 왼편은 현재 사용 중인 중세 고풍 그대로의 농가, 아래쪽 가운데는 높은 산 언덕에 성곽과 현재까지 사람이 살고 있다는 중세 도시, 아래쪽 오른편 사진은 피렌체 근처의 현대화된 아웃렛]
피렌체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50분. 로마에서 출발해서 휴게소에서 한 번 휴식을 취하고 4시간을 내내 달려온 지라 몸은 욱신거리기 충분한 거리였다. 그래서 건강할 때 여행 다녀야 한다는 선배들의 조언이 맞아 떨어질 수밖에 없음을 다시 한 번 절감하고.
피렌체 첫 도착지는 미켈란젤로 광장(Piazzale Michelangelo). 아르노 강의 남단 언덕에 있는 이 광장에서는 광장 자체를 감상하기보다는 아르노 강을 가로지르는 베키오 다리와 그로부터 이어진 멀리 보이는 두오모와 지오또의 종탑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열중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물론 이 미켈란젤로 광장 중심부에는 피렌체 시내를 내려다보는 또 하나의 가짜 다비드 동상이 세워져 있다.
"내 열망과 의욕은 한결같이 회전하는 수레바퀴처럼 사랑 덕택이었다" - 단테
사진의 하단부를 장식하고 있는 아르노 강을 가로 지르는 유명한 다리가 있다. 바로 베키오 다리(Ponte Vecchio), 뜻은 오래된 다리라고 한다. 이 다리는 열아홉 살의 단테와 베아뜨리체가 처음 만났다는 운명의 장소이다. 이 장면이 그려진 그림도 있지 않은가?
[사진 설명 : 단테와 베아뜨리체가 처음 만났다는 베끼오 다리의 사진과 가운데 왼편은 헨리 홀리데이가 그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그런데 세 여인 중에 베아뜨리체는 누구일까? 그리고 가운데 오른편은 피렌체의 주인공 단테이다.]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출발이었다. 그 출발점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다. 피렌체에 도착했던 날의 하늘은 우울한 중세의 마지막처럼 잿빛이었고 가끔 지나치는 피렌체 사람들의 표정 또한 밝지 못했다. 그 이유가 어쩌면 그들은 과거 선조의 역사가 생활기반이다 보니 그대로 두어야만 생존이 보장되는 그래서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해서는 되는 않는 잔혹하다 싶을 정도의 아이러니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만일 우리네 선조의 역사가 이처럼 찬란했다면 그것을 걷어내고 빌딩을 지을 수 있었을까? 그것을 당장 걷어내지 못하는 피렌체 사람들의 복선이 표정에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좁은 골목, 답답하리만치 작은 문과 창문, 울퉁불퉁한 거리. 관광객들에게만 즐거움을 주는 요소일지도 모른다.
[사진설명 : 관광안내책자에 나오지 않는 피렌체의 골목. 그들은 우리네보다 불편하게 살고 있음이 분명했다.]
피렌체의 음식은 우리네 전라도 음식처럼 이탈리아에서는 최고라 한다.
피렌체 음식이 최고인 이유는 풍요로운 농산물에 영향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이탈리아에서는 최상이라고 한다. 그리고 유럽의 음식은 그리스를 출발점으로 이탈리아를 거쳐 프랑스에서 완성되었다는 정설도 이를 뒷받침한다. 우리나라에서 전라도 음식을 최상으로 꼽는 이유가 맛깔스러운 음식을 만들기 위한 원재료인 농산물이 풍부했기 때문이라는 이유와도 같다고나 할까?
피렌체 음식의 특징은 올리브유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담백한 것이 특징이고, 소금과 후추로 가볍게 맛을 낸 소고기를 숯불에 구운 스테이크 비스테까 알라 피오엔티나(Bisteca alla Fiorentina)를 먹었다. 또한,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키안티(Chianti)라는 이름의 적포도주가 나오는 곳이기도 하다. 키안티는 피렌체 남부의 구릉 지대를 뜻한다. 이 말은 피렌체가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포도주를 생산하는 곳이라는 말로도 연결된다.
[사진설명: 비스테까 알라 피오엔티나와 키안티 와인으로 점심. 작은 스테이크로 달라했더니 너무 부족한 듯하게 나왔다. 최상단 우측은 우리가 식사한 Fantasia 식당의 문장. 마치 일본 오사카 상인들이 노렌을 걸어 놓은 듯. 아래 흰색 벽화의 글씨는 우리네 관광객들이 써놓은 불법 방명록 글귀들]
단테의 첫사랑을 찾으러 온 기분으로 피렌체에 당도했다. 날씨만 조금 우울했을 뿐 첫사랑에 대한 설렘은 점심을 마칠 때까지 변함없었다. 그런데 식욕을 채우고 식당 밖에서 다음 행선지를 향하기 전 심호흡으로 마음을 다잡을 때, 세종대왕님의 문화유산인 한글을 피렌체에서 만나게 되었다. 남의 집 담벼락에 '왔었노라'를 연발하는 글귀들.
선배 두 분은 산을 무척 좋아하셨다. 두 분은 서로 산을 좋아하기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어느 일요일 산에 자연 보호하러 간다며 커다란 쓰레기봉투를 가지고 떠나는 B 선배에게 A 선배가 충고하던 얘기가 생각난다. "산을 좋아하는 것은 산에 가지 않는 것일세. 산을 좋아한다는 사람들이 산에 쓰레기를 버리고 온 것 아닌가? 산에 올라가지 않은 사람이 어찌 산에다 쓰레기를 버리겠는가? 그러니 진정으로 산을 좋아한다면 산에 가지 않는 것일세. 산불을 내는 사람도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행위이고."
남들의 문화유산이 부러워 이 먼 길을 찾아왔는데, 고작 담벼락에 낙서로 증거를 삼으려 하는 이들을 보고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아무튼, 배가 든든하니 금강산을 향하자. 산타 크로체 성당을 지나 시뇨리아 광장, 베끼오 궁전, 꽃의 성모 마리아 성당, 단테의 생가를 향해 피렌체 여행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