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박 8일 서유럽 여행 (18/25)
14 OCT2008
융프라우에 부딪히는 바람도 거칠어 단번에 눈발을 수백 미터씩 날려 보낸다.
[사진설명 : 융프라우 정상에 날리는 눈바람]
오후 4시 20분. 이제 바늘을 칼처럼 날을 세운 듯 아프도록 시리게 뺨을 때리고 날리는 바람을 피해 하산을 시작했다. 융프라우로 오르던 왼쪽 능선의 그린데 발트(Grindenwald) 노선이 아닌, 오른쪽 능선을 오르는 라우터브루넨(Lauterbrunen) 노선을 택했다. 여행객들에게 왼쪽이던 오른쪽이던 선택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로움이 주어졌다.
[사진설명 : 산 기울기에 맞추어 아예 경사지게 좌석이 배치된 등산 열차]
석양에 부대끼는 능선들은 하얀 눈보라는 석양의 빛은 머금어 황금빛으로 눈길을 유혹했다. 눈으로 보이는 협곡과 빙하 그리고 바위산은 그저 사진에서 보았던 그것과는 달리 내 눈으로 보았다는 것일 뿐, 마치 미국 서부의 그랜드 캐니언에서 그 깊이와 길이를 눈으로 측정하지 못하는 어둔한 그리고 막연함이 수치로 나열해 가는 인솔자의 말과 도저히 일치되지 않는 혼돈 감으로 진위에 대한 의심만 증폭되었다. 눈에 보이는 저 얼음덩이가 몇백만 년이나 되었다고? 저기 저 얼음덩이 높이가 몇 백 미터라고?
해발 2,061m의 클라이네 샤이데크 (Kleine Scheidegg. 2,061m)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5시 20분. 이제 석양의 기세도 꺾이고 서서히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울 때서야 융프라우가 속살을 보여주었다는 안도감 그리고 행운을 실감할 수 있었다.
결코, 쉽게 정상을 열어주지 않는다는 융프라우, 그러나 우리에게는 관대했다.
세 번째에 와서야 겨우 융프라우를 볼 수 있었다는 한 동행 여행객의 감탄사에 무덤덤히 내려오면서 점점 쓸쓸하게 느껴지는 어깨를 쓰다듬던 여행객 모두는 그제야 히죽거리며 감탄의 꼬리말을 이었다. "정말 그렇다고 하네요. 제 친구도 그냥 10m도 앞을 분간할 수 없는 눈안개 속에서 컵라면만 먹고 왔다나요?" 그래도 오를 때의 설렘과 비장함은 찾을 수 없이, 피로와 추위가 엄습한 등산 열차는 전혀 살갑지 않았다. 가끔 빗면으로 산자락을 보이는 산들의 연속사열은 적당히 익숙해 있었다. 그저 특이한 것은 온갖 눈 위에서 놀고 탈 수 있는 장비들이었다. 거기서 네댓 살 된 스위스 한 꼬마를 보았다. 녀석이 워낙 활달해서 초점을 잃었지만, 어딜 가나 아이들의 모습은 밝아서 좋다.
[사진설명 : 중간 기착지 및 하산 주변들의 광경. 아이 사진 포함]
저녁 7시. 정확하게 6시간 동안의 융프라우 여행이 마감되었다.
인터라켄 동역에 열차가 도착한 시간은 정확하게 저녁 7시. 그러니까 오후 1시에 출발한 지 6시간 만이었다. 역시 스위스의 시계처럼, 스위스 역에 걸린 시계처럼 아주 정확하게 열차는 움직였다. 열차에 내려서는 인터라켄 동역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저녁식사 장소로 모두 지친 발걸음을 옮겨 슈피허(Casino Folklore
SPY
CHER)
라는 민속공연 식당으로 들어섰다.
스위스의 민속 음식은 겨울과 축산에 맞추어져 있는 듯했다.
치즈
, 백포도주, 소고기
….
스위스 요리하면 대표적으로 퐁듀(Fondue)를 꼽는다. 백포도주와
치즈
를 녹인 소스에 작게 썬 빵을 찍어 먹는
치즈
퐁듀(Fondue de fromage)
가 아마도 우리가 가장 잘 아는 음식이다. 다른 퐁듀로는 샐러드 오일에 소고기를 튀겨먹는
미트 퐁듀(Fondue bourguignonne)
가 있다. 우리 일행이 먹게 된 저녁은 미트 퐁듀였다. 맛을 따지자면 우리네 한우 등심을 숯불에 구워 먹은 것 이상이 될 수 없었다. 왜 그리 고기 맛이 밋밋했던지
…
.
스위스 민속공연은 정말 시니어들의 독점 부업임이 틀림없었다.
미트 퐁듀를 식탁에 깔아놓고는 민속 공연이 시작된다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공연자들이 등장했다. 아뿔싸 "이런 경우는 처음이야···." 여행객들의 입에 오르는 탄성은 입 모양을 합창하듯 똑같이 보였다. 시간이 지나도 마찬가지, 상큼하게 요들송을 불러줄 아가씨 공연자는 하나도 없었고, 물론 총각도 보이질 않았다.
질그릇에 동전 돌리기, 빨래판 박자 맞춰 긁어 소리 내기, 스위스 혼- 길이가 족히 3m는 넘어 보였다.- 아코디언 연주, 소 방울로 연주하기 그리고 숟가락 부대껴 소리 내기며 생활용품에 가까운 아주 단순한 소리 악기까지 스위스 민속공연은 소박하고 심지어는 단순의 극치를 보는 듯싶었다. 이 모두 시니어 공연자들의 몫이었다. 한편으로는 아쉬웠지만, 공연 마무리를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는 장면이 되어서는 우리네 동네 아줌마나 아저씨 같은 푸근하게 다가와 함께 어울리며 춤추는 시간으로 맛없는 식사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받은 것 같았다.
[사진설명 : 스위스 시니어들이 주관하는 민속공연]
밤 9시가 되어 공연 관람과 식사를 마친 우리는 인터라켄에서 7박 8일 중의 하루를 묵으러 숙소를 찾았다. 서서히 누적되어 가는 피로감에 닷새째 밤은 기억도 없이 지나가 버린 것 같다.
다음 여행은 예술의 도시 파리를 향한 7박 8일의 여섯 째날부터 기록한다. 센강이여 나폴레옹이여 에펠탑이여 그대로 있어다오, 내가 온전히 볼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