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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빛의 도시'인가 '꽃의 도시'인가

- 7박 8일 서유럽여행 (20/25)


28 OCT2008


'파리'는 발을 딛자마자, 나의 입에서 사랑한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끌어내렸다.    


테제베가 파리의 동부에 있는 갸루 디 리용(GARE DE RYON) 역에 도착한 시간은 여행 엿샛날 오후 1시. 열차는 정말로 절대 갈 수 없게, 앞머리가 딱 마지막 개찰구 코앞에 멈추어선 것이다. 그제야 KTX가 왜 앞뒤가 같은 모양으로 만들어졌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벌써 역대합실 천정의 철골부터 조각을 달고 있었고, 물받이 통에 사자 목이 걸려 있었다. 역을 빠져나와 힐끔 뒤로 돌아 역사 외관을 둘러보았을 때 역시, 그야말로 아름다운 대리석 조각상들이 틈새 틈새를 장식하고 있었다. 그중에 젊은 아가씨의 누드상도 창밖을 장식하고 있었다. 거의 19금 자태로

. 눈을 돌릴 수 없도록 매력에 그 누구라도 예술의 도시 파리라는 명사에 확신적 긍정의 마침표를 달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파리'를 여행하기 전 기초 정보를 파악하고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 예의


센 강 중류에 있으며, 면적은 105㎢ (서울의 1/6). 인구는 250만 명(서울의 1/4, 주프랑스 대사관 배포 자료)이다. 물론 위성도시 인구를 포함하면 1천1백만 명을 훨씬 뛰어넘는다.  그런데 그 누구도 파리를 낮은 수준으로 판단하지는 않는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답고 낭만적인 이 도시는 해마다 1천만 명의 여행객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파리를 세계의 문화 중심지로, ‘꽃의 도시’라고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고, 프랑스 사람들은 스스로 파리를 '빛의 도시'라고 부른다. 그러나 여행객인 나에겐 파리는 "꽃의 도시"였다.

파리의 역사는 2천 년을 넘긴다. BC 300년경 켈트족의 파리지(Parisii)라는 부족이 센강의 섬들에 정착하면서 역사가 시작되었고, AD 52년 로마의 갈리아 지방 정복과 함께 로마의 속주로 편입되면서, 로마 지배 이후 파리는 급격히 팽창, 발전하게 된다. 중세 메로빙 왕조와 카롤링 왕조를 거치면서 주요 도시로 성장하고, 10세기말 위그 카페(Hugues Capet) 왕조의 등장과 함께 파리는 수도로서의 확고한 지위 구축된다. 13세기경 시테 섬을 중심으로 상업지구 및 대학지구 형성, 발전하고, 19세기 중반 오스만(Haussmann)의 파리 개조 계획 시행 및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현재와 같은 모습의 근대도시로 변모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본 파리의 시가지는 150년 전의 모습과 크게 다름없는 모습!


파리는 센강을 기준으로 우안(rive droite)과 좌안(rive gauche)으로 나뉜다. 우안은 전통적으로 정치, 경제 기능이 집중된 곳으로 정부 기관, 사무실, 백화점, 주요 기차역 등이 집중해 있다. 반면 좌안은 교육 기능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좌안의 라틴 지구에는 소르본을 비롯한 대학 및 연구소 등이 집중해 있다. 우리나라가 한강을 중심으로 강북과 강남이 나뉜 것과 같이 강은 이쪽과 저쪽을 나누는 중요한 구분 점으로 활용되는 특징이 이곳 파리에도 존재한다.


세계의 다른 나라 수도와 비교하여 몹시 좁은 편에 속하지만 둘레 36km의 환상도로(옛 성벽 자취)에 둘러싸인 부분이 1860년 이래의 파리 시가지이다.  재정지출이나 상업거래량도 전국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 ‘수도에의 집중현상’은 프랑스의 특징이며, 파리는 세계 제4위의 인구밀집 지역이라고 한다.


까다로운 파리지엔의 입맛을 감동시킨 '수라(Soura)' 한식집엔 꼭 들러보세요.


파리 도착 첫날 처음 방문한 곳은 '수라'라는 상호의 한정식집이었다. 예전에 신문기사를 통해서 파리인 입맛 사로잡은 한식 밥상 '수라'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입맛 까다롭기로 소문난 파리 사람들을 사로잡은 한식 밥상이 있다니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물론 세계적인 식도락의 나라 프랑스에 왔으니 그중에서 에스까르고(Escargo, 달팽이 요리) 식사는 예정이 되어 있지만, 파리 시내 14구에 자리한 ‘수라(SOURA)’(대표 이영미)는 그야말로 놀람 그 자체였다. 


현지식만을 고집하며 던 나는 '수라'에 들어서면서 우리 일행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외국인이라는 것에 놀랐다. 스물다섯 평이라는 작은 식당엔 54개 좌석이 전부지만, 파리를 찾은 아니면 파리에 있는 이들에게 경쟁력 있는 한식을 먹는다는 자부심에 기분이 우쭐해졌다. 물론 음식 맛이 얼마나 좋은지 현지인들에게 한식 밥상의 맛과 멋을 알리는 우리 맛의 전진기지인 셈이다. 단체 여행객들에게 그저 그렇게 몰고 가는 한식당 중에 하나가 아님이 분명했다. 어김없이 여행객인 우리 식탁은 가장 빈약했음에도 말이다.


파리는 이렇게 내 발목을 또 잡는다. 이번 주에는 고작 파리에 도착해서 점심까지 밖에 기록을 못 하게 되었으니, 샹젤리제를 지나 에뜨와 개선문, 그리고 개선문에서 베르사유 궁전 그리고 센강의 유람선이 여섯째 날의 일정인데. 여기서 다음 주를 기약한다. 이런 식으로 파리가 이렇게 내 발목을 또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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