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저는 악마입니다'라고 하는 인사

일본인 집을 방문할 때, 가장 높임 인사말로 이렇게 인사한다는 이유

일본인 집에 초대를 받아 방문한 적이 있나요?
아쉽게도 저는 기회가 없었습니다. 


지난 2018년 가을의 일본 출장은 3개월여간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저의 출장 일정 중 가장 긴 기간이었습니다. 대기업의 장기 출장지에는 늘 현지 어학선생님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마침 일본어 선생님이 이미 주재원들과 장기 출장자들을 위해 과정을 진행 중이었습니다. 일본어 선생님은 나이가 익어가는 주부였고, 숙원 하던 '일본집' 방문의 기회가 생길까 내심 기대로 컸습니다.


집에 들여놓을 만한 인품이나 관계의 성숙도 등에 따라 다르겠지만, 영화나 책 등의 콘텐츠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경험하기에는 그들의 삶이라는 현장이 가까이 있으니 조금 더 호기심과 욕심이 발동하는 것이겠지요. 사실 일본에 장기 출장을 통해 아쉽게 생각했던 것이 일본인의 집에 초대를 받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일본인이 살고 있는 집에 가보고 싶었는데, 실행을 할 수 없었습니다. 누가 초대를 해주어야 방문을 할 수 있는 것이죠. 먼저 초대해 달라는 요청을 하는 것은 예의범절의 바닥도 모르는 행동이라 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호텔이 아닌 일본인들의 거주지에 머물러서 숙식을 혼자서 해결했기 때문에, 일본집에서 살아본 셈이고, 일본의 식자재를 가지고 음식을 해 먹었으니 일본 현지 생활에 근접하려는 흉내를 내 보았지만, 내 정서가 한국 토종이다 보니 일본인의 속들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어 선생님이 일본인이고 일본집에 살고 있으니, 일본집에 초대를 받는 것은 억지로도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저 호기심의 차원이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생각을 염두에 두실수도 있으나, 그 선생님의 행색은 그야말로 매력 없다로 간단히 설명되는 수준이었습니다. 아무튼 생활 일본어를 시작으로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인사말이 있었지만, 그중 가장 흥미를 끄는 인사말이 있었습니다. 바로 초대받은 집에 들어가면서 하는 인사입니다. 아마도 관행적으로 외우는 것이 외국어 초심자의 태도이기는 하지만, 특이한 의미를 가진 한자를 포함하고 있으면 확인을 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일본어 회화책에는 '오자마시마스(おじゃまします)'라고 되어 있고,
일본어 선생님은 무조건 관행적으로 쓰는 것이니 외워서 쓰라고 하십니다. 


특히 경어체로서 예의를 갖추어야 하는 경우에는 잊으면 안 된다고 강조하시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인사말의 본질에 대해서 궁금해했지만, 쉽게 속의 의미를 알 수 없었습니다. 통역직원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없었고, 짧은 일본어 실력으로도 포기하는 것이 맞는 방법이겠구나 하면서 인터넷을 뒤지기도 했습니다. 저에게는 배움을 향한 하나의 작은 도전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일본 소설에서 '오자마시마스(お邪魔します)'라는 문장이 나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오자마시마스(おじゃまします)'와 같은 뜻으로 사용하는 것을 보니 틀림없었습니다. 여기서 쓰인 단어 자마(邪魔, じゃま)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사특(邪慝)하고 나쁜 마(魔). 몸과 마음을 괴롭혀 수행(修行)을 방해(妨害)하는 악마(惡魔)'라는 뜻이었습니다.


인사말 "오자마시마스(お邪魔します, おじゃまします)"를 한국어로 직역하면 "저는 악마입니다."라는 뜻입니다.
 

"나는 악마입니다."라고 인사를 하는 것이 남의 집에 들어갈 때 해야 하는 일본인의 높임 인사말입니다. "실례합니다(失礼します, しつれいあいます)"라는 말보다 경어체로 쓰이면서 외국인에게는 관용구로 배우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 일본거주 한국인으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 인사말은 에도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일본을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민정 시찰을 나갔을 때, 아주 큰 회당을 짓는 광경을 목격했답니다. 이 회당은 누구가 짓느냐고, 교인들입니다. 교인이 무슨 돈이 있어서 이렇게 큰 회당을 짓느냐? 교인들이 십시일반으로 헌금이라는 것을 낸 것이라고 합니다. 교인들은 무엇을 얻느냐? 믿는 하나님이 죽으면 천국에 보내준다고 믿고 있답니다. 그 하나님이 어디에 거처하느냐? 하늘에 있답니다. 그 말은 들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자식과 같은 부하를 잃어가고 목숨을 던져가면서 성(城)을 하나씩 점령했는데, 이 기독교는 보이지 않는 신(神)을 믿으면서 이렇게 성(城)만 한 회당(會堂)을 짓는 모습을 통해 '기독교의 위력'에 겁을 먹게 되었답니다. 그리고는 기독교를 탄압하기 시작했고, 절(寺)은 공부방 겸 등기소로 전락시켰답니다. 


기독교를 탄압하면서 '오호담당제(五戶擔當制)'로 서로 기독교인이 있으면 신고하도록 관리했고, 여러 집의 사람들이 한 집에 모이면 의심했고, 신고하지 않으면 다섯 가구 전체가 죽임을 당하게 되니, 남의 집에 가서 십자가 형상을 보게 되면 바로 신고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로 인해서 외부인을 초대하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고 합니다.

그러니 남의 집에 들어간다는 것이 그 집에는 '악마'로 보이기에 충분한 것이 되었습니다."


에도시대 250년 동안 '기독교'를 탄압한 흔적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고, 선교사들에게 일본은 '선교의 무덤'이라고 불릴 정도로 어려운 곳이라고들 하는데,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간과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남의 집을 방문할 때는 "악마입니다."라고 들어가고 나올 때는 "악마였습니다."라고 인사를 하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관용구로 굳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인사말은 "진지 드셨어요?"라고 하는 한국의 관용적 인사말과 유사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어느 나라나 아픈 과거는 있기 마련입니다. 일부터 아픈 부분을 들추어내려는 것이 아니지만, 지적 호기심이 발동되면 깊이 있기 탐색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유희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혹시나 일본인 집에 가실 일이 있으면 "오자마시마스(お邪じゃ魔まします)" ="저는 악마입니다"라는 인사말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쉽게도 그 일본인 선생님 댁에 가보질 못했습니다. 


'악마 인사말'을 써먹을 기회가 없었습니다. 


ⓒ김형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