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지 말아야 할 이웃의 규율이자 역사로 생각됩니다.
규칙을 벗어난 사람에겐 '사무라이(侍, さむらい)의 칼'이 단죄했던가 봅니다. 규칙에 철저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일본의 에도 시대(江戸時代, えどじだい, 에도시대, 1603년~1868년) 또는 '도쿠가와 시대(徳川時代, とくがわじだい, 덕천시대)'로 불려지는 때부터 촌락 공동체 내의 규율 및 질서를 어긴 자에 대해 집단이 가하는 소극적인 제재행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무라하치부(村八分, むらはちぶ)'입니다. 이 용어는 따돌림이나 이지메를 가리키는 용어의 하나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공동체에서 규율을 어기거나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교류를 금하고, 따돌림을 가하는 것이 공식적이었다는 실재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왕따의 원류가 일본에 있다는 합리적 증거입니다.
무라하치부... 村八分 마을을 여덟 개로 나눈다? 마을의 80%? 이 한자의 조합이 왜 '따돌림'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을까 궁금해집니다.
'무라하치부(村八分, むらはちぶ)'라는 단어는 공동체에서 누려야 할 것 중 8가지는 빼놓고 못해주겠다는 뜻이 숨겨진 것으로 보입니다.
무라(村)는 말 그대로 지역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접미사인 '하치부(八分)'는 80%라는 의미이고, 이는 10 중에서 2를 뺐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해석으로는 '하치부'는 '튀기다, 튕겨내다'라는 뜻의 '하지쿠(はじく)'가 변한 말이라고도 합니다. 마을에서 튕겨낸다는 단어입니다. 어감이나 활용도로 보아도 이 단어는 '우리'라는 단어를 즐겨 쓰는 한국적인 정서와는 극단적인 배치점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왕따인 '무라하치부(村むら八はち分ぶ)'에게
마을에서 허용하는 두 가지는 무엇이었을까요?
'장례(葬式, そうしき)의 뒤처리'와
'진화(鎭火, 火事, かじ, Fire Control) 활동'입니다.
이유는 공동체에게 피해가 올 수 있는 것이 때문이라는 것을 곧바로 직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장례의 뒤처리'를 돕지 않으면 시체가 내는 부패 악취와 전염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고, 불 끄기를 돕지 않으면 목조 건물이 많은 일본에서는 공동체의 운명을 가름할 수 있는 큰 재앙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무라하치부(村八分)'는 철저하게 공동체에서 외톨이로 만들어 버리는 따돌림 행위였습니다.
그렇다면 일본에서의 8가지 공동체 활동은 무엇일까요?
①성인식 또는 관직(冠, かん)의 축하 , ②혼례(婚礼, こんれい), ③출산(出産, しゅっさん)의 지원, ④병환(病気, びょうき)의 수발, ⑤가옥신축 및 재건축(建築, けんちく)의 지원, ⑥수해(水害, すいがい) 시의 복구지원, ⑦연기(年忌, ねんき, 100일상, `~7년 상 제사) 법회, ⑧여행(旅行, りょこう) 등입니다. 이 얼마나 구체적이고 체계적이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에도시대에는 '무라하치부'가 되면 공동소유의 토지에서 경작활동을 하던 상황이라, 마을 뒷산에 올라가서 낙엽 퇴비와 같은 거름이나 땔감을 구할 수도 없기 때문에 사실상 생계를 꾸려갈 수 없게 됩니다.
지역 공동체만의 독특한 규칙과 질서이기 때문에 합법적이고 객관적이며 공명정대한 것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많아서, 메이지 유신 이후에는 인권을 침해하고 법 정신에 어긋나는 것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일본의 사법기관인 대법원 판결에서도 '무라하치부' 통보는 '협박' 또는 '명예훼손'에 해당하며 금지한다는 판결을 내렸다고 합니다. 문제는 여기부터입니다. 이러한 '무라하치부'의 뿌리는 깊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보존되고 최근까지도 종종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1952년 시즈오카현(静岡県, しずおかけん) 우에노 마을(上野村)에서
'무라하치부(村八分)'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제2회 참의원 보궐선거에서 마을 모두의 비리를 고발한 한 여고생과 그 가족에 대해서 '무라하치부'를 가한 사건입니다.
문제의 참의원 보권 선거에서는 부정이 행해진 것을 깨달은 '이시카와 사츠키(石川皐月, 후지 노미야 고등학교 재학생)'은 아사히 신문의 지국에 부정선거를 고발하게 됩니다. '동네에서 이장이 기권 방지를 위한다면서 투표소 입장권을 회수하고 있으니 귀 지국에서 조사했으면 좋겠다'는 편지를 보내게 됩니다. 이때 편지에는 보낸 사람의 이름과 주소가 적혀있었고, 아사히 신문에서는 이시카와 사츠키가 재학 중인 후지 노미야 고등학교에 나타나 이시카와를 만나 인터뷰를 하게 되고, 며칠 뒤 사건이 기사화됩니다. 그리고 며칠 뒤에 부정선거 관계자 수십 명이 경찰에 출두 명령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문제는 조용히 마무리되는 듯이 보였지만, 다른 문제로 발전해 갑니다. 이른바 '무라하치부(村むら八はち分ぶ)'가 시작된 것입니다. 선거가 끝나고 며칠이 지난 뒤 '이시카와 사츠키'는 마을 여성에게 불려 갑니다. "오늘 십 수명의 사람들이 경찰에 불려 갔다. 아직 모두 돌아오지 않고 있지만, 돌아오면 모두에게 인사하고 가야 한다"라고 하면서 "학생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고발하고 기뻐할지 모르나,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이 창피한 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알아야 할 것 아니냐"며 마치 부정선거를 고발한 것이 잘못인양 떠들어대기 시작하는 얘기를 듣습니다.
이때부터 '이시카와 가족'에 대한 따돌림이 시작되었습니다. 모내기가 시작되었지만, 예전과 달리 인근에서 아무도 오지 않았고, 아침저녁 만나는 사람들과 인사조차 받아주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사카와 여동생에게는 '스파이'라는 야유를 퍼부었고, 지역신문에서는 '이시카와'의 아버지 소오코오(操行)에 대해서 대서특필하게 됩니다. '이시카와의 아버지가 돈을 돌려주지 않는다'는 주장과 함께 '이시카와 아버지'의 문제를 바로잡지 않으면 마을의 큰 문제가 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아사히 신문을 비롯한 전국의 신문과 잡지가 '이시카와 가족'에 대한 '무라하치부(村むら八はち分ぶ, 따돌림)'에 대한 문제를 보도하기 시작하면서 시즈오카현 우에노 마을이 주목을 받게 됩니다. 신문에 보도가 되고, '이시카와' 지지 성명이 이곳저곳에서 발표되고, 수기가 책으로 나오고, 심지어 '무라하치부(村八分, むらはちぶ)'이라는 이름의 영화까지 제작되어 상영되었고, 일본의 공영방송인 NHK를 비롯한 많은 방송에서도 '무라하치부(따돌림)'이라는 단어는 방송 자숙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무라하치부'만 억제되었을 뿐, 그 뿌리는 또 다른 '이지메'라는 '따돌림'으로 싹을 틔우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무라하치부'는 완전히 사라졌을까요?
절대로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코로나19 감염자나 밀접 접촉자들에 대한 지역 내의
'무라하치부' 소동은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현대 일본의 대도시 권역은 이웃이나 지역 내의 유대관계가 발달하지 않은 익명적인 구조라서 '무라(村)'가 사라졌으니 '무라하치부(村八分)'도 자연스럽게 사라진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지금도 전통적인 지역공동체가 건재한 농촌이나 어촌 등에서는 여전히 존재하는 폐습을 엿볼 수 있다고 합니다.
제가 수집한 자료 중에서 '무라하치부'와 관련된 큰 사건은 지난 2013년 7월, 야마구치현에서는 '야마구치 연속 살인 방화 사건'인데, 귀향한 이에게 집단따돌림을 당한 후 가옥 2채를 불태우고, 5명을 살해한 사건의 원인이 바로 '무라하치부'와 관련된 것입니다. 가해자는 2019년 최종 사형 판결을 받고, 2024년 현재 미집행된 것으로 확인 했습니다.
'우리'와는 다른 문화를 가진 일본이기에 어떻게 다른지 확인하는 차원에서 '따돌림'의 원류를 찾아보았습니다.
제대로 알아야 대처할 방도가 나옵니다. 절대로 흉내 내어선 안될 가까운 이웃의 현실을 둘러보았습니다.
한국과 다른 정서적 원천을 가진 일본을 대할 때, 이웃에 대한 사랑은 '우리'라는 단어만으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김형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