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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전날 돈가스를 먹는 나라, 일본

태생적인 이름이 인기를 끌게하는 음식

일본어로 '가쓰(カツ)'는 '이긴다(かつ, 勝つ)'와 발음이 같습니다.


돈가스가 일본에서 인기를 끈 비결 중 하나가 그 이름 속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일본에서는 지금도 돈가스는 시험생이 시험 전날 합격을 기원하는 음식으로 꼽고 있습니다.


이기게 해 준다는 음식 돈가스(豚カツ, とん カツ)는 수험생에게는 반드시 먹어야 하는 음식이라고 합니다. 물론 쉽게 먹을 수 있는 대중 음식이기도 합니다.


제가 처음 돈가스를 먹어 본 때는 고향 소도시에서 70년대 후반 누나들을 따라가 경양식집에서 멀건 옥수수 수프와 함께 밥으로 할까요? 빵으로 할까요? 하면서 자리에서 주문을 받는 종업원에게 나의 선택으로 결정할 수 있는 첫 번째 음식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간식과 주식이 구분되지 않았고 포만감이나 식감이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신기한 음식이었습니다. 이후에 경양식 집에서 얇은 돼지고기를 빵가루를 묻혀서 튀긴 돈가스는 주요한 외식 메뉴로 꼽혔습니다. 그런데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일본 출장길에 만난 돈가스는 같은 이름이 이렇게 서로 다를 수 있을까 하면서 그야말로 천양지차로 같지만 다른 종류의 음식으로 다가왔습니다.


일본의 돈가스는 고기를 먹지 못하게 묶였던 제한을 푼 

1872년 이후 60년 경 세월이 흐른 뒤에 등장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서양과의 접촉에서 가져온 충격파를 일본이 흡수한 과정이 고스란히 담긴 음식이 바로 돈가스라고 평론한 글도 보았습니다. 포르투갈 사람들로부터 튀김 조리법을 전수받은 이래, 서양의 커트렛 요리를 튀김요리로 발전시켰고, 밀가루 대신해서 빵가루를 튀김옷으로 사용하여 밥의 텃세를 뛰어넘는 걸작품이라고 해도 과연 이 아닌 것이 일본의 돈가스인 것 같습니다.


돈가스는 밀가루, 계란, 빵가루로 입힌 세 겹의 튀김옷이 뜨거운 기름과 고기를 격리시켜 육즙이 유출되는 것을 막고 육질을 부드럽게 유지합니다. 그리고 빵가루에 적당히 스며든 기름이 풍미를 더하고 사각사각 씹히는 맛이 간식을 먹는 듯한 유희를 더해줍니다.


일본의 작가 오카다 데쓰(岡田 哲)는 그의 저서 《돈가스의 탄생》에서 양식의 왕자 돈가스의 탄생 그리고 돈가스가 그 발생지 우에노와 아사쿠사에서 전국으로 급속하게 퍼진 일이야말로 일본 시민이 서양 요리를 소화하고 흡수했음을 나타내는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외래 음식문화를 토착화하는 일본이라는 거대한 실험실에서 튀김을 사용하는 돼지고기의 두께는 두꺼워졌고, 양배추, 겨자, 우스타소스처럼 궁합이 잘 맞는 부속품들이 준비되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돈가스라는 절충형 양식을 완성하는 데 동원된 것이 일본 전통 채소나 와사비, 간장이 아니라 양배추는 겨자와 우스타소스였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돈가스가 그전까지 일본에 존재하지 않았던 음식을 만들겠다는 의식적인 실험의 결과였음을 증명해 줍니다. 일본에서 사용하는 돈가스 소스는 영국산 우스타소스와는 판이합니다. 간장을 섞어서 가게마다 비법을 발휘한 혁신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도 원조 싸움은 있나 봅니다. 


원조설에 오른 한 돈가스 집은 폰치켄입니다. 1929년  판매하기 시작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렌가테이 (煉瓦亭)라는 식당입니다. 한국의 유명한 식객이 TV에 출연하면서 널리 알려진 식당이라고 하는데, 1985년에 문을 열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원조 논쟁에 빠져들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합니다. 맛있게 먹고 오면 그뿐인 것이니까요.


앞서 언급한 오카다 데쓰는 그의 책에서 돈가스가 지금의 형태로 되기까지의 험난한 과정을 소개했는데, 그 시작은 포르투갈과 스페인으로부터 전래된 새로운 음식문화였습니다.


1872년 가나가키 로분(仮名垣魯文)에 의해 ‘홀커틀릿’을 만드는 법이 일본에 소개되었다고 합니다. 바로 육식 금지가 해제된 해입니다. 홀커틀릿이란 뼈가 붙어 있는 돼지고기에 빵가루가 아닌 밀가루만 묻힌 후 소량의 기름으로 프라이팬에서 지져내는 것을 말합니다.


일본인들은 홀커틀릿의 조리법을 응용하여 뼈가 붙어 있는 쇠고기, 양고기, 닭고기로 비프가스, 뷔르가스, 치킨가스를 탄생시켰으나, 여전히 기름에 지지는 음식이었다고 합니다. 1895년 기타 겐지로(木田元次郞)가 양배추 채를 곁들인 돈가스의 전신인 ‘돼지고기 가쓰레쓰’를 팔기 시작하였다. 이는 앞서 말한 대로 서양의 프라이팬에 기름을 이용해 만드는 것이 아니라, 튀김처럼 많은 양의 기름 속에 넣어 튀기는 방식이었으며, 고기의 뼈는 발라냈다고 합니다. 돼지고기 가쓰레쓰는 간장과 향신료를 섞은 독특한 소스를 얹고 채를 친 양배추를 곁들여서 칼로 썰어 먹었다고 하는데, 양배추를 곁들인 이유는 영양상의 조화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실제로는 적당히 싼값에 양이 많아 보이는 야채를 곁들일 수 있는 가장 좋은 재료가 양배추였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1929년 도쿄의 요리사 시마다 신지로(島田信二郎)가 쿠나이쇼(宮内省)의 다이젠시키(大膳職)를 은퇴한 '시마다 신지로(島田信二郎)가 우에노(上野)에 폰치켄(ぽんち軒)이라는 양식점을 열어 얇은 돼지고기가 아니라 2~3cm 두께로 두툼한 돼지고기를 튀긴 돈가스를 팔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오늘날과 같은 돈가스의 원조라고 불리는 이유입니다.


나이프와 포크를 사용하지 않고도 먹도록 칼로 미리 썰어 놓았으므로, 종래의 일식처럼 젓가락으로 먹을 수 있었습니다. 


‘포크(pork) 가쓰레쓰’, ‘돼지고기 가쓰레쓰’, 돈가스 등으로 혼용되어 불리다가, 
1959년 이후에 돈가스라는 이름이 정착하였다고 합니다.

주방이 실험실이 되어서 외래 음식 문화를 토착화한 돈가스를 통해서 일본이 가진 변환(Transfer) 능력을 새삼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돈가스라는 것입니다.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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