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MBTI 'E'다.
성향에 걸맞게, 사람 좋아하고 모임 좋아하고 뉴페이스 좋아하는 'E'다.
40년 넘는 시간 동안 여러 모임에도 참여하고 새로운 친구들도 만들고 즐겁게 그들과 교류하며 잘 살아왔다.
그래서 성격유형 검사가 한창 유행하기 시작했던 때, 나는 나의 친한 친구들과 지인들 또한 당연히 나와 같은 'E'성향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학창 시절 친구들 그리고 친하게 지내는 주변 지인들은 하나같이 모두 'I'성향이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드는 생각은 이랬다.
'음... 이상하다. 'I'들은 사람 만나기 싫어하고 집에 있는 거 좋아한다고 했는데... 그동안 나랑 어떻게 놀았던 거지?" "어쩐지 친구 무리에서 항상 내 텐션이 1 등이었 던 이유가 있었구나" 등등
그러던 중에 난 2 주에 한 번 모이는 엄마 독서모임에 가입하게 되었다.
11명 정도의 회원들이 활동하였는데 하나같이 좋은 분 들 이어서 감사하게도 한동안 즐겁게 활동할 수 있었다.
모임이 끝나고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그러다 보니 그중에 5명 정도의 인원이 더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이 5명이 특히 더 친하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노는데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들'이었다.
지금은 나이 먹고 많이 차분해지고 혼자 있는 시간도 잘 보낼 수 있는 성격이 되었지만, 사실 난 어릴 때부터 절대 방전되지 않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다. 같이 놀던 주변 사람들은 나의 에너지에 두 손 두 발 들었다. 늘 만남과 이벤트의 성사는 나의 아이디어로 시작될 때가 많았다. (아마 그들이 'ㅣ'였기 때문이겠지...?)
그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텐션이거나 나보다 낮은 텐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모임에서도 특히 에너지 넘치는 'E'중의 'E'액기스 5명이 추출되어 만들어진 사교모임이 탄생했으니... 이들과 함께 할 때마다 넘쳐흐르는 도파민에 하루하루가 그렇게 신나고 즐거울 수가 없었다. 마치 학창 시절 노는 것에 진심이었던 순수했던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동안 크거나 혹은 작게 빈번하거나 뜸하게 하지만 지속적으로 오랫동안 나의 머릿속을 떠다니던 핍폐한 생각들... 예를 들어 '시댁 스트레스나 사춘기 아이들에 대한 불안과 걱정들, 내 맘을 자꾸 불편하게 만드는 주변인들 등등'의 생각들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이 얼마나 어매이징 하고 퍼펙트 한 인생인가! 우울한 잡생각을 할 시간적 정신적 여유조차 없이 즐거움과 놀이로 빡빡하게 바쁜 일상이라니!!!(물론 돈이 좀 많이 들고 집 청소에 소홀해질 수 있다)
노는 것에 진심인 나를 포함한 이 다섯 분은... 낮이고 밤이고 놀자 하면 무조건 콜이다! 단 한 명도 단 1초도 망설이거나 빼는 사람이 없다. 아침 9시 전에 모이기도 쌉 가능이고 가는 데 1시간 이상 걸리는 서울 나들이도 서너 시간 안에 클리어할 수 있다. 카페에서 대화를 나눌 땐 1초도 오디오가 빈 적이 없다. (오히려 말하려면 손들고 발언권을 얻어야 할 정도임) 놀고 싶은 우리를 막을 그 어떤 것도 이유가 될 수 없었다. 시간이 부족해도 몸이 아파도 다음날 큰 일정이 있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어떤 핑계도 '어떻게든 놀겠다'의 이유를 넘지 못하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저런 이유들로 살살 빠져나가는 사람들은 사실은 그렇게까지 노는 것에 진심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 멤버는 40 평생 찾아다닌 내가 원했던 환상의 멤버일지도!!
이 분들은 모두 애가 둘 이상이며 3명과 4명을 키우는 엄마들도 있다. 힘들었을 긴 육아로 15년 이상 억눌렸던 놀고 싶은 열망이 우리가 만남으로써 폭발한 것일지 모른다.
그렇게 정신없이 즐겁게 보낸 지난 3개월(방학 빼고... 방학 때는 집에서 밥을 해야 해서 못 나감)
난 느꼈다. 나의 에너지가 줄줄 빠져나가고 있다는 것을...
작년 말부터 난 글도 쓰지 않고 만화도 그리고 않고 영어공부도 하지 않았다.
오로지 이들과의 관계를 잘하기 위해 내 모든 에너지를 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나의 불안증은 다시 스멀스멀 나를 덮쳐왔다.
그들을 만나면 재밌어 죽겠다. 행복해하는 내가 보인다. 그런데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뭔가 마음 한 구석이 허전했다. 그리고 심각한 것은 이들과의 끈끈한 관계가 잘못될까 봐 노심초사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이들은 톡방에서도 매일 빈번하게 소통을 하는데 혹여나 내가 카톡방 대화를 놓쳐 이야기에서 소외될까 두려워 종일 핸드폰의 알람을 신경 쓰기도 했다.
그런 이야기가 있다.
마약중독자들이 마약에서 못 빠져나가는 이유는 마약이 주는 극강의 도파민을 맛본 후 마약이 없는 그들의 일상은 지루한 정도가 아니라 지옥이라고... 지옥 같은 괴로움을 벗어나기 위해 더 강한 마약을 찾게 되는 것이라고.
이들과의 만남을 마약이라고 극단적인 표현을 하는 것은 당연히 오버다.
하지만 분명 이들은 나에게 마치 마약 같은 극강의 즐거움(도파민)을 주었고(주었다기보다 내가 느낀 거죠)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그 정도의 즐거움(도파민)이 안 생기니 뭔가 내 일상이 시시해져 버렸고 그리고 이들과의 관계에 뒤쳐지거나 끝나버리는 것이 두려워 결국 내 정신과 에너지는 그들을 만날 때에도 만나지 않을 때에도 온통 이 관계에 올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점점 예전처럼 혼자 있을 때 느끼는 충만한 감정을 느끼기가 힘들었다.
분명히 작년까지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에서 오는 즐거움보다 소소한 일상을 혼자서 보내면서 잔잔한 행복을 느끼며 살겠다는 글을 썼었는데... 나는 진정한 다중이인가...?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또다시 우울해질 뻔했지만... 나라도 나에게 관대한 사람이 되고 싶기에... 사람은 누구나 완벽할 수 없고 실수할 수 있고 생각이 휙휙 바뀔 수도 있는 '불완전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누구에게 휩쓸리지 않고 안정적이고 주도적인 내 삶을 롱런하기 위해서 지금의 사탕(마약에서 사탕이 되었다) 같은 즐거움을 조금 내려놔야 할지 말지 말이다.
오랜만에 할리땡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지금 느끼는 (최근에 느끼지 못했던) 안정감과 편안함이 나에게 결정을 내려주는 듯하다.
나는 '극강의 즐거움은 없지만 평온하고 수수한 일상'을 선택하겠다.
잠시동안이지만 그들로 인해 너무 즐거웠고 행복했고 감사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들을 만나기 전 나의 작은 스트레스들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이걸로 충분하다. 이 일로 어떤 성장을 했는지는 딱히 설명이 힘들지만 이 일로 나는 기쁨과 고통을 동시에 느꼈고 그리고 극복하고 스스로 결론에 도달했기에 나는 이 경험을 아쉬워하지 않는다. 나는 또 성장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의할 점. 나보다 텐션이 높은 사람들이 과반수 있는 모임은 주의하자!
기가 너무 많이 빨릴 수 있다.
뭐든지 발란스가 가장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