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FP가 망한 인간관계 극복하는 법>
MBTI 성격 유형 테스트가 유행한지 오래다.
테스트 결과 나의 MBTI 유형은 ENFP였다. 여기서 맨 앞의 'E'는 '외향형'이라는 뜻이다.
앞자리가 'I'인 유형도 있다. 'I'는 내향형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ENFP의 특징을 간단하지 않게 나열하자면 <감정적 공감 고수 너무 헌신적 잘 흥분하고 별남 금방 질림 퍼주는 거 좋아함 변덕스러움 굉장한 열정 잘 들어줌 모순덩어리 사람들을 알고 싶어 함 충동적 의사결정 모든 걸 시도하려 함 예술과 글쓰기를 좋아함 촉이 좋음 활동가 집중력고자 지루한거 싫어함 잘 빡치거나 금방까먹음 참신함에 환장함 감정나누는 것에 행복해함 구속 싫어함 긍정적 마인드 저금 못함 작심 3일 인간관계가 틀어졌을 때 제일 스트레스 받는 유형 전생의 개가 환생한 사람>
이 유형의 특징들을 찾아 모아 보니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나라는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 한 번에 요약되는 것이 신기하고 재밌었다.
'맞아, 이런 장점이 있었지'라며 뿌듯해하기도 하고 또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나의 단점들을 적나라하게 나열 해주니 뻘쭘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동안 고민해왔던 '왜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를까'하는 물음에 답을 받은 듯했다. 나의 유별난 특징을 정확히 집어 주니까 뭔가 날 있는그대로 인정받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전 세계 사람들을 대상으로 16가지 유형으로 나눈 것 중 적어도 한 명은 나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나만 이상한게 아니었어!'라는 묘한 동질감에 기쁘기까지 했다.
그리고 얼마 후 기나긴 코로나 시대가 열렸다.
'E'즉 외향형인 나는 사람들을 안 만나고 밖에 안 나가고는 절대 살 수 없는 사람이다.
어린 시절부터 이틀 연속 집에 있었던 기억이 없다.
20대 시절에는 금요일에 나가면 일요일 새벽에 집으로 돌아왔을 정도이다.
그만큼 밖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에너지를 얻고 삶의 의미를 느끼는 타입이다.
그래서 자유로운 20대 시절을 보내고 독박 육아를 하던 30대에 누구보다 힘들었었는데... 또다시 코로나로 집에 갇혀지내게 되다니...
초기에 코로나가 발병했을 시기, 사람들은 코로나 확진자가 하루 50명만 되어도 덜덜 떨었다. 특히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게 코로나는 큰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사람을 안 만나고 이렇게 오랫동안 지내본 적이 있었던가?
초기에는 3일 정도만 집에 있어도 힘들었다.
일주일이 넘어가니 정신이 이상해지는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 짜증과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때가 겨울방학 시즌이었는데, 보통 엄마들은 2달이나 되는 겨울방학기간을 제일 힘들어한다.
기나긴 겨울방학이 끝났는데도 아이들은 계속 계속 학교에 가지 않았다.
난 하루 종일 집에 갇혀서 청소와 빨래를 하고 밥과 설거지를 무한 반복했다. 힘들었다.
물론 뛰어놀지 못하고 집에만 있어야 하는 아이들 또한 고통스럽고 안쓰러운 건 당연하고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왜 나에게 이런 불행이 한 번에 닥쳤는지...' 그 즈음에 절친했던 아줌마 한 명에게 이유 없는 절교(?)를 당했다.
아니, 분명 이유야 있었겠지. 그러나 난 그 이유를 아직까지 모른다.
이 부분에서 나의 성격유형의 특징인 '인간관계가 틀어졌을 때 제일 스트레스 받는 유형' '감정나누는 것에 행복해함' '전생의 개가 환생한 사람'이라는 부분을 보면 너무 안타까워서 할 말을 잃을 지경이다.
개를 상상해 보라 대부분의 개들은 도도함과는 거리가 멀다(차라리 고양이였으면...)
주인에게 이끌려 식용으로 팔려가서도 꼬리를 흔들며 주인을 그리워하는 것이 개다.
너무 싫다. 사람들에게 상처받기 싫다. 왜냐하면 난 사람들이 그만큼 좋기 때문이다.
그 예로 대학 1학년 때 이런 일이 있었다.
30살의 만학도였던 2학년 남자 선배가 있었다.
멋져 보였다. 얼굴이 잘생겨서가 아니라 늦은 나이에 어린 친구들 틈에서 열심히 작업하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30살은 나에게 커다란 어른이었고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난 그 선배를 잘 몰랐고 그 선배도 날 잘 몰랐다. 그냥 이름과 얼굴 정도만 아는 사이였다.
1학기가 지나고 2학기가 시작되었을 때였던가.
그때 당시 난 쬐금 화려한 옷차림을 좋아했었더랬다. 남한테 어떻게 보이던 잘 신경 안 쓰는 타입이었다. 여하튼 누구에게든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어느 날 선배들이 모여있는 과실을 지나게 되었는데, 문이 열려있었고 그 선배와 다른 몇몇 선배들이 있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그 선배는 내 얘기가 나오자 질색을 하며 싫어했다. 내가 듣고 있는지 모르고 그랬겠지만 난 다 듣고 있었다. 난 꽤 충격을 받았다.
'도대체 왜? 난 그 선배를 마음속 깊이 존경하고 있었는데?' 그 마음을 표현을 하거나 잘 보이려고 행동한 적은 없었지만, 그 선배는 나의 머릿속에 항상 좋은 이미지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우리가 제대로 이야기라도 나눠 본 적이 있었던가?'
나보다 10살이나 많은, 날 잘 모르는 남자 선배한테, 심지어 맘속으로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 사람한테 나도 모르게 미움을 받는 상황이라니. 그때 알았다.
인생은 매몰차다며, 나름 큰 깨달음을 얻은 사건이었다.
그래도 나의 긍정적 마인드로 그 충격은 오래가지 않았던 것 같다. 괜찮다. 나도 그 이후로 안 좋게 생각하게 되었으니까.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내 관심 밖의 인물이 되었다고나 할까. 나에게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고 또 난 그 선배가 생각하는 이상한 싫은 여자애는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나만 아니면 됐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결론은 미움받는 것도 모르고 사람을 좋아하는 개의 영혼을 닮은 나의 MBTI가 별로다.
4년이나 친했던 사람한테 이유도 모른 채 까였다. 둘째 딸 친구 엄마였기에 우리 둘째 딸까지 세트로 까인 것이나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그 사람한테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의 어떤 부분이 엄청 싫었겠지...
슬픈 사실은, 난 마지막까지도 그 사람과 그 사람의 딸을 좋아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좋아한 만큼 잘 지내보려고 최선을 다했었다.
하지만 인생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걸... 어린 20살 때 깨달았건만, 이번에는 그때와 달리 후유증이 오래갔다.
딸은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 아줌마를 비롯한 대다수의 엄마들이 그 아파트 주민이었고, 아파트에 살지 않는 나는 나름 인싸였던 그 아줌마와의 트러블 덕에 아파트 안의 다른 엄마들과도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어 동네 친구하나 없는 외톨이 신세가 되었다. 이 외로운 코로나 시국에 말이다.
다시 언급하지만, '인간관계가 틀어졌을 때 제일 스트레스 받는 유형' 과 '감정나누는 것에 행복해함' 의 특성을 지닌 ENFP인 난 감정을 나눌 인간관계가 사라져버려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E'가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감정을 서로 공유하며 치유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코로나 시국이다. 모임은커녕 밖에 나가 사람을 만날 수도 없다.
내 인간관계가 지금처럼 깨끗한 적이 있었던가? 아니 태어나서 처음이다. 이렇게 주변에 아무도 없어보기는... 사람 좋아하는 ENFP인 난 결혼식 때도 내 지인만 70명을 초대했었다.
내가'I'였다면 좀 나았을까.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자아성찰 후 다시 일어날 에너지를 얻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얻는 'E'다.
한 날은 아침에 광합성을 하며 산책을 하면 우울증에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집 앞 공원에 갔었다.
이어폰을 귀에 꼽고 음악에 맞추어 씩씩하게 워킹을 했다.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고 날은 구름 한 점 없이 좋았다. 생긴지 얼마 안 된 공원은 넓고 깨끗하고 조용했다.
그러나 너무 조용했다. 생명체라곤 개미 몇 마리뿐.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우울한 기분을 벗어나고 싶어서 공원에 왔는데,
공원에조차 사람이 한 명도 없다니. 모두 다 나를 외면하는 것 같아서 너무 외롭고 쓸쓸했다. 쓸데없이 날씨가 너무 좋아서 더 슬펐다.
코로나가 싫다고 발버둥 친다고, 외롭다고 난리를 쳐도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이들은 계속 집에 있고, 내 기분이 땅으로 꺼질 것 같이 우울하든 말든, 난 끼니 때가 되면 밥을 해야 했고, 10분에 한 번씩 아수라장이 되는 집안을 정리해야 했다. 계속 기다려봤자, 이 그지같은 코로나는 끝날 기미가 없었다.
이대로 나를 냅두면 당장 언덕 위의 하얀 집에 갇혀도 이상할 것이 없을 것 같았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는 'E'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에게 치유받아야 할 것 같았다.
작년 내내 난 그리운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결혼 후 멀리 살고 있는 나의 학창 시절 친구들, 코로나 때문에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임산부 때 만나 알고지냈던 육아 동기들, 사는 게 바빠서 몇 년 동안이나 못 본 회사 동생들, 20대 시절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 만화동아리 언니들 친구들... 하나하나 일일이 찾아가 만났다. 가깝게는 옆 동네 수원부터 멀게는 일산, 부천, 서울 곳곳을 말이다. 가는 길에 한 두시간 운전하는 것이 하나도 힘들지가 않았다. 그 사람들을 만날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기뻤다.
오랫동안 못 봤었는데도 반갑고 좋았다. 난 어쩔 수 없는 개가 환생한 사람인가 보다.
내가 문을 두드렸을 때 한 번에 흔쾌히 나를 반겨준 사람들, 그리고 진심으로 나와의 재회를 기뻐해 준 나의 지인들에게 받은 행복한 에너지로 나는 상처받은 마음을 많이 치유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 성격유형의 특징 중 하나인 '긍정적 마인드'도 이 위기를 극복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때로는 심각한 상황에서도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오해를 사기도 하지만 말이다.
결론은 내가 가진 성격유형적 특징들이 나를 힘들게도 했지만 결국엔 '나'스러운 방법으로 잘 극복하였다.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진심으로 맞는 말이다.
앞으로도 ENFP의 특징을 잘 살려서 어쩔 수 없는 '개'지만 '긍정적인 개'가 되어야겠다.
개는 보기만 해도 사랑스러운 존재인데, 긍정적인 개라니... 꽤 좋은 조합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