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소확행은 아마도 점심 식사 후의 커피 한 잔일 것이다.
브랜드 커피는 5천 원 정도이고, 비브랜드 커피는 2,500~3,500원 정도던가?
매일 회사에 출근하여 육체적 정신적 노동을 하는 워커들에게 5천 원 남짓한 비용을 소비하는 것은 생산적인 일에 하루를 바친 자신에게 주는 작은 보상과 격려일 것이다.
그들은 그럴 자격이 된다. 자기가 벌어서 자기 돈으로 커피 한잔한다는데 누가 뭐하고 할 것인가?
나도 그런 자격이 되는 사람들 중 하나였었다. 기억도 희미한 10여 년 전에 말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결혼하고 애를 키우면서 원해서 백수가 된 것도 아닌데, 인생의 순리를 따른 것뿐인데, 심지어 회사 생활보다 육아와 살림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훨씬 힘든 노동임에 틀림없는데,
애를 낳고 실질적인 생산활동을 안 하고 있다는 이유로 갑자기, 당당히 커피를 마실 수 없는 자격으로 격하되었다.
물론 아예 카페를 안 가거나 테이크 아웃 커피를 안 마시는 것은 아니다. 그저,
라는 물음에 멀게는 사회의, 가깝게는 남편 또는 시댁 식구들의 대답은 긍정적이지 않을 거라는 거다.
그 곱지 않은 시선 속에서 당당히 커피를 마시기에는 어딘가 눈치가 보인다.
대학시절 만난 남편과 아름다운 연애를 하고 결혼 후 10년 가까이 아이 없이 맞벌이를 하다가 아기를 갖는 것에 집중하기 위해 싱글 때부터 오랫동안 다녔던 직장을 그만두고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로서 전업주부의 삶을 살고 있는 친한 언니의 소확행은 직장 생활 동안 즐겨왔던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것이었다.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홀로 동네 카페에 잠시 들린다. 테이크 아웃도 좋고, 잠시 카페 의자에 앉아 멍 때리는 것도 좋다 그곳에서의 아아 한 잔이 언니에게는 육아의 고단함을 씻어주는 작은 행복인 것이다.
언젠가 언니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내가 커피를 진짜 좋아해"
"응, 알지"
"울 집 앞에 바로 스벅이 있는데, 브랜드 커피는 좀 비싸잖아. 마침 집 근처에서 작은 카페를 발견했는데, 저렴하고 커피도 완전 맛있는 거야. 그래서 이제 글루 다녀"
"오, 그래? 잘 됐다"
"근데 난 사실 달달구리 디저트도 엄청 좋아하거든, 맨날 커피 시킬 때마다 무지하게 망설이잖아"
"뭘?"
"갓 구운 마들린 한 개를 사 먹고 싶은데, 커피 만으로도 나에게는 사치라는 생각에 내가 저 디저트까지 먹을 자격이 있나 하고... 결국엔 고민만 수백 번 하고 커피만 마시지만. 후후"
"아, 그렇구나..."
커피를 마실 자격, 커피와 디저트를 함께 먹을 자격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
우리는 돈을 버는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즐기는 커피 한 잔, 쿠키 하나를 먹는데도 눈치를 본다.
한때 유모차를 끌고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는 아줌마들을 '맘충'이라고 부르던 때가 있었다.
한창 소설과 영화로 이슈가 되었었는데, 난 자진해서 눈치보며,
라는 공식을 스스로도 느끼던 와중에 대놓고 그런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고 애 키우는 것도 서러워 죽겠는데 '맘충'이라고 욕까지 먹다니, 나름 정신적 충격이 상당했다.
숫자로 시작해서 이름으로 끝나는 그 작품을 책과 영화로 접하면서 한창 육아에 힘들었던 시기였기에 너무 공감이 되어 서러움에 펑펑 울었었다.
둘째가 네 다섯 살, 막 기관에 다니기 시작할 무렵. 수년 동안 생산적인 일, 창조적인 일을 전혀 할 수 없었던 터에 자존감이 바닥까지 내려가, 우울증이 하늘을 찌르던 시기였다. 더 이상은 집 구석에 못 있겠다 싶어서 뛰쳐나가려던 차에 집 근처에 투땡플레이스라는 커피 체인점이 생겼더랬다.
투땡 커피숍은 신세계였다. 둘째가 어려서 오랫동안 카페 구경을 못 해 본 터였는데 기차 좌석처럼 늘어선 1인 전용 테이블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자리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방해받지 않고 혼자 공부나 개인 작업을 하기에 딱이었다.
바로 이거다 싶어서 하루는 묵혀 놓았던 노트북과 드로잉 북을 들고 커피숍을 찾았다.
특별히 대단한 작업을 하지는 않았지만 매일 집구석에서 살림과 육아만 하다가 새로운 환경에 혼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었다. 그동안 쌓여있던 스트레스와 우울증이 사리지는 것 같았다.
따듯한 커피 한 잔과 사랑스럽고 리듬감 있는 음악, 그리고 돈 버는 일은 아니지만 나 자신만을 위해 노트북을 쳐대고 연필을 굴리는,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이 시간이 정말 꿈같고 소중했다.
이 경험이 너무 기뻤던 나머지, 아이들을 원에 보내고 남은 시간 내내 매일 출근도장을 찍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렇지만, 돈을 벌지 않는 나에게 커피값 4,300원은 너무나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평일 동안 매일 간다고 하면 4,300*20=86,000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그 돈으로 뭔가를 배운다던가 운동을 다닌다면 그 정도 금액은 나에게도 허용될 것 같은데, 커피숍을 가는데 매달 그 금액을 쓴다고 한다면, 사회적으로도 남편에게도 욕을 먹을 것 같았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스스로 선을 정했다.
남편은 출근이 조금 자유로웠었는데, 노트북과 책을 한 아름 들고 낑낑대며 열심히 커피숍에 다니는 나를 보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었다.
"도대체 그걸 다 들고 어디서 뭘 하는 거야?(한 쪽 입꼬리는 살짝 올라갔음)"
"나 커피숍 가는데?"
"뭐? 내가 돈 쓰지 말랬지? 난 커피에 돈 쓰는 게 제일 아까워"
(사실 남편은 무자비한 자린고비였다)
"아 진짜...나 뭐 좀 하려고... 혼자"
"할 거 있으면 집에서 하면 되지. 집 얼마나 좋아? 커피도 집에서 마시고"
"집에 있으면 잘 안된단 말이야. 자꾸 집안일만 하게 되고 게으름 피우게 되고... 몇 년 동안 집에만 있어서 나가고 싶엉"
"으이구, 된장녀. 그럼 가서 돈 되는 일을 좀 연구해 보던가"
돈 못 버는 자의 설움이란... 커피 한 잔도 사치다. 젠장!
남편의 비아냥거림에 마땅히 대꾸할 말이 없었다. 1원 한 장 못 버는 내게 커피는 사치품이 맞았다.
그날도 마음에 돌덩이를 안고 커피숍으로 향했다.
그 후로도 간간이 커피숍을 다니며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가끔 프리랜서 일도 하며 나름 알차게 보냈다.
그래도 여전히 커피 한 잔을 주문하는 나의 마음은 100% 클리어하지 않았다.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커피숍에 있을 수 있는 날에는 점심값도 아까워서 쫄쫄 굶었다. 커피값도 사치인데 점심값까지 보탤 수는 없었다.
맘충이라는 사회의 시선과 돈도 못 벌면서 (남편 말대로 집에서 해도 될 것을) 쓸데없는 돈을 써서 가족경제에 해를 끼치는 이기적인 엄마라는 프레임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모두들 그렇듯, 삶이 원래 그렇듯, 나도 크고 작은 힘든 일들을 겪었다.
아이가 어릴 때는 육아가 너무 힘들고 매일 똑같은 일상에 정신력과 체력이 바닥이라 우울했고, 아이들이 좀 큰 후에는 이 사회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없는 것 같아서 내 삶의 의미와 내 정체성을 찾지 못 한채 푹 퍼져버린 내 자신이 한심해서 우울했다.
그리고 인간관계의 실패와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 등으로 극도로 정신력이 약해져서 결국 집 근처 정신과에 상담을 받으러 갔다.
상담을 집중적으로 해주는 병원은 상담료가 아주 비쌌는데, 내가 간 곳은 약을 처방해 주는 병원이어서 그런지 병원비는 비싸지 않았지만 상담 시간은 10분 남짓으로 짧았다.
상담이 시작되고 어떻게 오셨냐는 의사의 물음에 난 어렵게 첫 마디를 꺼냈고, 내 이야기에 내가 설움에 복받쳐 막 눈물이 흘러넘치려는 찰나, 의사는 내게 말했다.
"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아, 저기... 벌써요? 쿨쩍"
"다음 손님이 있어서요. 약 처방해드릴게요"
"약이요? 아... 네 쿨쩍, 그런데 약 먹으면 괜찮아지나요?"
"네 훨씬 좋아집니다"
"네에... 아, 그런데 혹시, 약 부작용 같은 건..."
"조금 졸릴 수 있어요. 자, 다음 환자요"
의사의 로봇 같은 반응에 나왔던 눈물이 쏙 들어갔다.
의사가 정확하게 나의 증상을 안 건지 어쩐 건지 모른 채 덜컥 약을 받아왔다.
이 약을 먹어도 될지 갑자기 의심이 들었다.
갑자기 오기가 생겼다. 이 약을 먹지 않고 이 우울증을 이겨보리라.
그래도 내 의지를 확고히 하기 위해 약을 버리진 않았다.
'미래 정신 의원'이라고 선명히 찍혀있는 약 봉투를 화장대위에 올려놓고 볼 때마다 의지를 다 잡았다.
결과는 나의 승리였다. 난 결국 약을 먹지 않고 우울증을 잘 극복했고, 그리고 한 가지 깨달은 게 있었다.
만약 내 증상이 나아지지 않고 결국 약을 먹고, 꾸준한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면? 그 비용을 계산하니 정말 어마 무시한 금액이 나왔다. 그리고 남편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아빠야, 정신과 상담 비용이 얼마나 비싼지 알지? 한 번에 10만원은 할 걸?"
"응, 그렇겠지..."
"근데 내가 스스로 잘 이겨냈어. 잘했지?"
"응, 잘했네"
"아빠, 내가 우울해져서 약 먹고 정신과 상담 다니는게 낫겠어? 커피숍에 매일 출근해서 커피 마시며 우울증 안 걸리는 게 낫겠어? 어느 게 이익일까?"
"그야, 병원에 안 가는게 낫지"
"그치? 그게 훨씬 싸지? 그런데도 나 커피마시는 거 돈 아까워? 나 정신 치료하는 값인데?"
"아니, 커피숍 가, 매일 커피 마셔"
그 이후로 난 더 이상 남편 눈치를 보지도 않았으며, 내가 얼마나 이 집 안에 소중한 존재고 이 사회에 당당한 일원으로서 고단한 삶에 커피 한 잔 들이켤 자격이 있다는 것에 일말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난 지금도 당당히 최근 신축으로 인기 급상승한 할리땡 창가에서 이 글을 쓰며 우울증에 빠지지 않기 위해 나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창작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귀를 간지럽히는 사랑스런 BGM, 그윽한 커피향과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