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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Aug 04. 2024

장년의 나홀로 스위스 여행 준비

작년에 뜻하지 않게 아주 우연히 스위스를 갈 결정을 내렸다. 그건 대한항공에서 온 마일리지 소멸에 관한 메일로부터 시작되었다. 모든 일은 그러하듯 하나의 사소한 징후부터 시작된다. 그후로도 삶에서 드러내는 갖가지 징후 하나도 빠뜨리지 않으려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과거 습관이기도 했는데 어느날부터 무뎌 지다가 갑자기 또다시 삶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2019년 교육 기간 동안 5월 뉴욕,  9월 스웨덴, 덴마크, 스페인을 다녀온 후  폭풍이 휘몰아치듯  전 세계 코로나 분위기로  두 번 다시 해외는 가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다 작년 연말에 날아든 마일리지와 관련된 메일은 2024년에는 해외여행을 꼭 가야 할 것만 같은 것을 알려주는 메시지와 같았다. 그러기에 언젠가 가야 한다면 지금이 장년의 여행 그 시작이라고 확신했다. 


일사천리로 가족합산을 하고 항공권 예매를 하고 현지 숙소를 예약했다. 그것도 10개월 전부터 말이다. 그렇게 숙소예약하고 스위스패스까지 다 구입하고 나니 빼도 박도 못할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마치 자신이 되돌아온 다리를 불태운 장군의 결연한 의지같이 말이다. 뭔가에 홀리듯 모든 것을 예약해 버렸다.  다취소해도 얼마간의 수수료만 내면 되지만 이제 와서 취소한다면 가장 손해는 스위스패스 5일권이다.


일정이 길어지면 여러 가지로 번거롭다. 이왕 갈 바엔 길게 가야 하지 않냐고 남들은 말하지만 혼자 겨우 가면서 시간이 길어질수록 숙박비도 추가된다. 퇴직 후엔 조금 더 길게 스위스 여행을 즐길 기대를 하고 있다. 그땐 장기근속휴가도 쓸 예정이다.  늘 그러듯 난 인생을 너무 크게 기대를 한다. 그럴수록 실망도 크다고 하지만 그때 실망할지언정 엄청난 기대를 하는 건 천성이라 어쩔 수 없다. 이제 핸드폰 유심과 얼마간의 스위스 현지화폐만 구입하면 바로 떠나도 된다.


항공권.숙박 모든걸 바인딩


여행카페에서 스위스는 여자 혼자 여행해도 가장 안전한 나라라는 말에 용기를 얻었다. 정신없이 살아온 30년 이상의 파란만장한 직장 생활해 오며 자녀들도 이제 성장했고 이제부터는 나를 되돌아보는데 많은 시간을 쓸 때인 건 확실하다. 자녀들에게 안부 궁금하며 카톡을 보내면 돌아오는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엄마 사소한거 하나하나 궁금해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언제나 다정다감한 딸들이 될수 있을까. 나 역시 다정다감한 엄마가 아니기에 크게 기대하면 안된다.



여행은 빠를수록 좋다. 나이 들어 돈을 더 모아서 가야지 하고 나서 그 나이 들을 때는 체력도 쉽게 따라주지 않는다. 아직은 조금이나마 체력이 남았다. 캐리어가 좀 더 무거워진다면 힘들 수 있다. 최소한의 짐만 들고 가자 하며 집어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며 고민한다.


장년의 여행은 지금까지 잘 견뎌왔던 나에 대한 포상이다. 스위스라는 여행지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대 자연을 기차여행하면서 상념에 빠지고 글도 쓰고 더욱 강한 여성이 되기 위해 더없이 좋은 곳이라는 확신이 든다. 건강의 중요성을 깨달은 자의 삶은 이전과는 다르다. 현재에 감사하며 덤으로 산 인생이라는 생각은 더욱더 나를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펼쳐지는 미지의 세계로 떠민다.


하지만 막상 떠나는 날이 다가오자 두려움이 들었다. 매일 밤 어둠이 깔리면 과연 내가 혼자 저녁에 낯선 스위스에서 잠들 수 있을까, 리기산과 융프라우까지 잘 도착할 수 있을까. 나이 들면 복잡한 버스노선, 전철노선 잘 잡기도 힘든데 과연 내가 어버버 하지 않고 그린덴발트가기전 인터라켄 동역에서 내려서 브리엔츠 호수를 보고 다시 와서 그 린덴발트 숙소까지 갈 수 있을까.


여행카페에서 동행을 찾아보기도 했고 지인들에게도 연락해 봤지만 여행운이라는 것도 같이 일치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안다. 여행도 운이고 그 운명의 선상 위에 함께할 사람 찾기는 정말 어렵다. 오히려 현지에서 바로 만나는 게 쉬울 거라는 약간의 운명론자인 나는 그렇게 위안을 한다.


정말 가장 두려운 건 길 찾기다. 더 두려운 건 구글지도로 노선검색을 해야 하는데 배터리가 방전되었을 경우다. 그런 상상만으로도 겁이 난다. 그래서 구글에서 공항에서 숙소까지 숙소에서 필라투스까지, 루체른에서 그 린덴발트까지 그 기차역에서 몇 번 버스를 타고 가는 걸 다 검색해서 프린트를 했다. 구글에서 출력한 이 노선을 잘 탈 수 있을까 하고 여행카페에서 어떤 댓글에서는 서울에서 지하철 타는 것과 같다고 했는데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래도 잘 찾아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과 바짝 차린 정신으로 하루하루 정보를 추가하고 빠진 게 없나 점검하는 기간은 길지만 그 과정 또한 여행하는 과정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니 이런 시간 또한 소중하고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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