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사무소근무하면 늘 면장의 반응에 직원들은 촉수가 서 있지 않을 수 없다. 5월말 면장에게 버럭질을 한 후 영원히 관계 회복이 어려워 보였으나 중간에 어떤 기류에 의해 우선 내가 수그러뜨리는 형국이 되니 자연스레 평화가 찾아왔다. 그래도 살얼음 걷듯 늘 면장의 심사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곧 다가오는 스위스 여행을 앞두고 일주일 연가를 내야 한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는 유화책이 필요했다. 마침 25년 전 내 직속계장님이 퇴임 후 운영을 하고 있는 녹동의 주조장에서 지인을 통해 공수한 "고흥 유자주"한병을 들고 올라갔다. 막걸리를 보고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던 면장은 오래전 계장님이 퇴임후 하던 곳에서 가져왔다고 하자 "많이 팔아줬야겠고만 "하며 미소를 보였다. 그걸 면장실에 냉장고에 넣어두고 내려왔고 그날 바로 오후에 다음 주 일주일 연가를 내야겠다는 말을 하기 위해 올라갔다. "여름휴가도 안 갔고요. 그때 휴가가 언제냐고 했을 때 말했던 때가 바로 다음 주입니다." 면장은 내가 없으면 큰 심각한 일이라도 벌어지듯 선뜻오케이를 안 하고 달력을 한참 동안 뚫어져보았고 결국 다녀오라고 했다. 아니 다녀오라고 하지 않아도 가야 할 것이었다.
아무리 그때 말했다 할지라도 당장 낼부터 안 나오니 예의상 면장실에 올라가서 낼부터 다녀온다고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나의 발걸음소리부터 나인줄 알았을까. 열린 문으로 들어서자 구석진 곳 파티션 속에 앉아서 정면을 바라보며 인상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면장님 낼부터 연가 잘 다녀오겠습니다"말을 하자 면장은 쳐다도 보지 않고 인상을 쓰고 고개만 까닥했다. 내려오면서 난 후회를 했다. 괜히 올라가서 기분만 잡치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5월에 한바탕 면장에게 버럭질을 한 것뿐 아니라 아무리 그전에 이런저런 감정이 얽혔다 할지라도 이제는 내가 잘하려고 하고 있고 막걸리도 공수해다 주고 거리퍼레이드 아이디어도 내서 우리 면이 2등을 했으면 뭔가 이젠 날선감정도 어느 정도 내려놓아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면장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한번 싫으면 영원히 싫은 건지 좀처럼 마음의 문을 열 것 같지 않았다. 퇴직을 1년 앞두고 있으면서 말이다.
내가 지금의 나이가 되기 전에는 타인의 감정에 이끌려 다녔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타인의 불편한 모습을 보면 안절부절못하고 마음이 불편했고 그렇게 그 상대의 기분에 끌려다녔다. 하지만 이 나이가 되어보니 참 그건 소모적인 일이었다. 면장의 기분이 아무리 그러하고, 면장이 나에게 그런 태도를 보인다 할지라도 난 나로서 내가 할 도리를 할 뿐이고 그건 면장의 감정이고 그것으로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면장은 그동안 주변에서 일방적으로 그의 기분을 풀어주려 노력을 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원래 그러한 평범하지 않는 성격의 사람일 수도 있다. 그렇게 한번 고착된 성격은 쉽게 바뀌지 않으리라. 팀장이 무슨 일을 잘못했고 자신의 생각과 틀리다면 불러서 이야기를 하고 마무리를 짓는게 우리가 바라는 면장의 태도인데 그것과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부터 시작부터 뭔가 잘못된것 같기도 했다. 알 수 없는 것으로 삐진듯한 모습이 익숙지 않았지만 근 1년 이상을 겪어온바 이젠 그런 것도 별 의미가 없다.
더 이상 내가 생쇼를 한다한들 면장의 기분이 좋아질 리도 없고 다른 직원들 대하듯 하진 않을것이다. 이미 서로 끝의 감정을 보여준 터라 어떤 기대도 희망도 없고 그냥 사무실에서 사무적인 그런 관계일 뿐이고 그런 관계에서 호의나 미소나 농담이나 그런 걸 바랄 필요는 없다. 나에게 말을 할 때 싸늘하게 표정이 바뀌면서 말투도 바뀌는 걸 옆에서 본 9급 여직원이 무척 놀랐다. 원래 그러하였으니 그러던가 말던가이다. 근평을 최하를 주더라도 어떤 무시하는 표정과 말을 하더라도 그러던가 말던가이다. 나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원래 그러하였으니 그런가 보다이고 나 역시 그것으로 인해 충격받지 말아야 하는데 또다시 기분만 잡치고 말았다. 어제 하루 그렇게 기분 잡치고 나니 시간이 해결해 준다. 다시 '그는 원래 그런 인간이었으니 그러든가 말든가'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5년 만에 인천공항이다. 낼 출발하지만 여유 있게 모든 걸 하고 싶어서 5시간 걸려서 공항에 도착했다. 정말 아무리 이론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도 현지 와보니 그냥 주먹구구식 보이는 식이다. 이론으로 지하엔 뭐가 있고 3층엔 뭐가 있고 이게 습득이 되지 않는다. 정말 버스가 1 터미널에 먼저 멈추고 2 터미널로 간다는 사실도 내 기억에는 없는 일이라는 게 너무 놀라웠다. 언제나 버스가 제일 먼저 스탑 한 공항에서 내려던 기억뿐인데 말이다. 그때 두바이 항공이어서 그랬나 하고 기억을 유추해 보지만 그 후로도 대한항공을 탔으니 분명 2 터미널로 갔을 것이다. 나이 드니 나 역시도 노인처럼 행동하는 것 같다. 내가 직접 찾으면 될걸 안내소에 지하는 어디로 가냐고 물었다. 엘리베이터를 누르는 순간 다른 여성도 함께 탔는데 난 지하를 눌렀는데 그 여성은 1층을 눌렀다. 내려가는 도중 한번 섰는데 그곳이 1층인 줄 알고 내렸다. 가보니 내가 찾는 국민은행 간판이 보였다. 가자마자 주민번호를 누르라고 해서 누르니 "없는데요.." "여기 국민은행 아닌가요???" 했더니 은행은 바로 옆이었다. 어쩐지 바로 앞에 와이파이 도시락이 보이길래 은행에서 서비스로 와이파이도 주나보다 생각했다. 날 바라보는 여직원의 한심하다는 눈빛을 보았다. 바로 옆 국민은행 가서 환전 거래명세서를 보여주니 카톡문자를 보여주면 된다고 한다. "다락휴가 어디 있나요?" "여긴 1층이고 지하로 가셔야 해요.." 아니 여기가 지하인 줄 알았더니 1층이라니... 은행여직원도 날 촌뜨기로 보는 눈빛이었다. 저녁 8시부터 입실인데 너무 빨리 도착했다. 내 계획은 여기저기 둘러보고 구경하다가 8시 되면 캡슐호텔로 들어갈 계획이었는데 앞으로도 4시간이 남아있다. 나의 이 허둥지둥 바보 같은 행동을 딸에게 카톡으로 전했다.
"그러니 내가 걱정 안 할 수가 없다니까.." 하면서 그동안 엄마에게 무관심 한줄만 알았던 딸은 세상효녀가 되어 나를 걱정한다. 역시 시간이 흐르면 딸들은 엄마한테 잘하게 되어 있나 약간 흡족한 마음이 들었다.
일단 캡슐호텔 들어가기 전까지 이곳에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머릿속이 복잡하다. 직원들 선물을 사 온다면 그 카레차별녀에게는 아무것도 안 줄까 하다가 남들과 차별적으로 줄까도 생각하고 있다. 거기만 빼놓고 주면 너무 티가 날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 5천 원이면 거긴 500원짜리라도 줘야 그날의 사건에 대한 응징을 해줄수 있을것 같다. 사람은 역시 쉽게 변하지 않는데 그다음 날에도 인력 1은 내가 피크닉 음료를 어디서 가져오는 거 보고 과자 어딨냐고 피크닉 남은 거 어딨냐고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여전히 사무실서 먹는 타령 중이다. 인력 1은 우리 면사무소가 망하기 전엔 떠날 사람이 아니다. 결국은 내가 먼저 면사무소를 떠나게 될 것이다. 일단 세상은 참 웃긴 일들이 많다. 그건 그렇고 한국을 떠나 내일 스위스로 향하면 이런 자질 구레하고 감정을 소모하는 일로부터 부디 자유로워지길 바란다.그리고 길을 잃고 방황하지 않도록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