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조지아대학교에서 우리를 지도했던 제임스가 박사학위를 받았나 보다. 조지아대 로고가 박힌 검정 가운을 입은 그의 사진이 인스타에 올라왔다. 잘 사냐고 코로나로 걱정스러운 안부를 전했더니 그는 아주 건강하게 잘 있다며 나에게 요즘 어떻게 사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컴백한 직장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며 "Last day was great!!"라고 했다. 최근에는 영어방송 출연했다는 소식도 전했더니 그는 " That's so awesome!! " 하며 Share 해 달라고 해서 유튜브 주소 보냈더니 " I'll check it out " 해놓고선 아직까지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다. 사실 30분 보이는 라디오 방송시간 동안 다른 두 명의 영어전문가가 블라블라 하는 사이 나는 별 말을 하지 않았기에 그걸 본 그의 반응이 두렵긴 하다. 영어방송에 출연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나름 뿌듯함에 여기저기 지인들에게 페이스북과 Ytube로 방송된 주소를 복사해 보냈었다.
다시 나의 기억은 작년의 5월 미국에 막 도착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갔다. 도착한 첫 주 Suntrust park 야구장을 시작으로 미국의 문화체험 닻이 올랐다. 그곳은 메이저 리그 야구장으로 애틀랜타 다운타운 북서쪽으로 16킬로 떨어진 곳이다. 야구에 관심도 없고 좋아하지도 않고 룰도 전혀 모른 상태라 야구장과 사람 구경만 했을 뿐이라 그 시간이 나에게는 따분하기도 했다. 단체로 식사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기에 각자 몇 달러씩 점심값을 받아서 알아서 점심을 해결해야 하는데 야구장이기에 간식 수준으로 먹을 수밖에 없었다. 캔맥주 하나와 간단한 음식을 사들고 높은 곳에 위치한 관중석으로 조심스레 올라가 앉았다. 난생처음 미국에서 방문한 야구장이라니 참 특별한 경험이긴 했다. 코카콜라 본사가 애틀랜타에 있기에 그곳에서도 여기저기 빨간색의 코카콜라 홍보 흔적을 볼 수 있었다.
그날 애틀랜타 브레이브 팀과 밀워키 팀의 경기가 있었는데 각자 팀의 색깔을 나타내는 응원봉을 휘두르며 관중들은 매우 열정적으로 함성을 지르고 응원했고 태양은 유난히 뜨거웠다. 간간히 가장 환호를 잘하는 사람의 얼굴을 대형 스크린에 비춰줬는데 우리 교육생이 얼마나 열심히 응원을 했는지 그녀의 얼굴이 스크린에 뜨는 바람에 그녀는 무척 신이 났다. 야구는 길어지고 지루해서 교육생 한 명과 잠깐 밖에 나갔는데 나가는 문과 들어오는 문이 달라 잠시 길을 잃고 방황했다. 야구장에서 나올 시간이 다 되었기에 우리 교육생들을 못 만날까 봐 순간 두려움이 찾아왔다. 입구에 제복 입은 통제인에게 서투른 영어로 우리 사정을 설명하고 재입장해서 교육생들이 나오는 시간에 맞춰 같이 빠져나왔다. 잠시라도 한눈팔거나 정신 차리지 못하면 길을 잃기 쉬운 구조였다.
첫 번째 주말을 이용해 1박으로 다녀온 사바나시는 미국 조지아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1733년에 세워졌다. 영국 식민지 시절 조지아의 수도였고 나중엔 조지아주 최초의 주도가 되었다고 한다. 미국 시민혁명과 남북전쟁 당시 전략적 항구도시 역할했고 각종 산업기지로 역할하고 있어서 관광, 산업이 공존하는 역사적 도시라고 한다. 첫날 그곳의 사바나 관광청에 방문해서 개략적 설명을 들은 후 각자 받은 식비로 원하는 점심메뉴와 장소에서 끼리끼리 먹고 숙소에 도착해서는 여장을 간단히 풀었다. 한 시간쯤 호텔룸에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저녁을 먹기 위해 나왔다. 역사가 있는 오래된 항구도시라 분위기가 애선스 시와는 사뭇 달랐다. 교육 처음에 정책연수를 수행하기 위해 꾸려진 6개 팀의 팀원들은 서로 팀들끼리 저녁을 먹는 분위기 인지라 우리 팀도 구글을 이용해 맛집을 찾느라 분주했다. 외국에서는 맛집과 길 찾기만 잘해도 만족스러운 여행이 될 거 같다. 찾은 맛집이 성공적이면 대단히 만족스럽지만 맛집이라고 찾았는데 음식이 별로였다면 실망감이 찾아오게 된다.
사바나로 향하기 전 숙소에서 출발하여 일몰이 아름답다는 타이비 아일랜드(조지아주 채텀 카운티에 있는 도시) 해변가에도 잠시 들렀는데 그곳에선 시골풍의 결혼식 피로연을 하는 현지인들을 볼 수 있었다. 미국 시골 소도시의 주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리얼하게 보는 듯했다. 도시생활만 해온 교육생들에게 대서양 바다라니 맨발로 모래를 밟아보고 싶은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많은 현지인들이 이른 5월인데도 해변의 태양을 즐기고 있었는데 그 장면은 지금껏 외국 해변에서 흔히 봐왔던 그런 여유로운 풍경이었다.
우리가 사바나로 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제임스가 전통 있는 유명한 뷔페를 추천해 주었다. The lady & sons라는 뷔페인데 메뉴는 몇 가지 없지만 실속 있게 입맛에 맞게 구비되어 가성비가 좋았던 거 같다. 아무래도 항구도시라 해산물 종류가 많았었다. 우리가 주말에 어디를 가서 무얼 먹었고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 강사와 이야기하는 것도 영어공부에 도움이 된다. 뷔페에서는 오랜만에 거나한 만찬을 즐기고 식비는 달러로 계산해야 하니 팁 포함 총액에서 나눈 금액을 걷었다. 미국에선 팁 때문에 항상 팁까지 같이 계산한 총액을 나누고 현금으로 내는 이런 과정이 필요하다. 저녁을 먹고는 100년 이상 운영해온 유명한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서 30분 이상 긴 줄을 선 보람으로 100년 전통의 아이스크림을 맛보았다. 100년 전통이 있는 가게에서 만든 아이스크림이라는 생각이 가미되어 맛은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저녁 식사 후엔 사탕을 직접 제조하여 판매하는 가게가 줄지어 늘어선 항구로 갔다. 항구에 인접한 가게 대부분이 사탕을 만들 수 있는 기계를 내부에 구비하고 유리막으로 되어 있어서 가게를 찾는 손님 누구나 그곳에 있는 사탕을 만드는 공정을 볼 수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다양하고 아름다운 색깔의 사탕을 만들 수 있는지 놀라웠고, 그 현란한 사탕과 막대에 동그란 빵에 초콜릿과 꿀이 발라진 것은 먹기 아까울 정도로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보였다. 기념으로 사가고 싶었지만 녹아 버린다는 단점으로 인해 대부분 구입하는 것을 꺼려했다. 워낙 유명해서 사바나를 찾는 관광객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항구 건너편 허치슨 섬에는 컨벤션 센터가 있었고 주기적으로 페리가 무료로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저녁의 바람은 약간 차가웠고 전국에서 모인 공무원 33명이 어떤 인연으로 이곳 미국까지 우리가 이렇게 모이게 되었는지 모두가 잠시 행복감에 젖어 저 바로 바다 가까이 보이는 우리가 건너온 도시의 불빛을 회심에 가득 찬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처음으로 영어에 대한 부담감을 벗어던지고 휴양지에서 느끼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교육생들의 얼굴에 나타났다. 바로 앞 컨벤션 센터로 가는 페리 안에서 나는 어느 때보다 카메라 셔터를 끊임없이 눌러 그들의 표정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았다. 저 멀리 바닷가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에서 앞만 보고 달려온 시간들을 뒤로한 채 잠시 한숨을 돌리고 휴식을 취하는 편안함을 엿볼 수 있었다. 내년 다시 업무로 복귀하여 빡빡한 일상으로 돌아가면 이 같은 여유를 누리기 어렵게 때문에 다들 현재 이 시간을 즐겨야 한다는 다급한 마음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막상 그 상황 속에 들어가 있을 땐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 많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다시 그곳을 떠올릴 때 마음속에서 재구성되는 새로운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여행이라는 것이 돌아왔을 때도 그곳에 대해 회상하면서 행복감을 가져다 주기에 다들 여행에 중독되는 것이다.
여행이라는 건 참 멋진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스레 든다. 사람의 마음속에만 남는 것, 그렇기에 더욱 귀중한 것을 여행은 우리에게 안겨 준다. 여행하는 동안에는 느끼지 못해도, 한참이 지나 깨닫게 되는 것을. 만약 그렇지 않다면, 누가 애써 여행 같은 걸 한단 말인가?
<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 중
사바나는 특히 '포레스트 검프'라는 영화 오프닝 장소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그 외 사바나 박물관을 방문한다면 그곳의 역사를 더 생생하고 자세히 즐길 수 있을 텐데 박물관을 관람 못해서 많이 아쉬웠다. 도시 전체가 전통이 있고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것을 상점 및 도시 전체의 분위기에서 느낄 수 있었다. 미국에 사바나라는 도시가 있었나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고 , 사바나 하면 아프리카 사바나로만 생각했는데 조지아주의 사바나라는 도시를 알게 된 건 또 다른 진귀한 것을 알게 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곳의 태양은 아프리카 사바나만큼이나 뜨거웠고 찾아오는 관광객 또한 한층 업된 기분인지 6명이 페달을 돌려 움직이는 자전거를 타며 함성을 지르는 반바지를 입은 긴 머리 금발 여성들을 볼 수 있었다. 도시 주요 관광명소를 도는 트램 같은 순환 열차도 탈 수 있다. 다시 이곳을 오게 된다면 시원한 로컬 맥주를 마시며 작렬하는 태양 아래 축제 분위기처럼 한층 업 되어 있는 이 유서 깊은 도시 곳곳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리라. 그렇다!!! 사바나에도 로컬 맥주 브루어리가 있다. 뜨겁고 열정이 넘치는 도시에 당연히 그곳의 맥주가 있다.
다음날에도 사바나를 걸어서 개별적으로 많이 돌아다닐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지만 구글 지도에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욕심껏 돌아보지 못했다. 더 많이 보고 더 느끼려 한다면 얼마든지 오는 길에 미술관도 들를 수 있었지만 하루 2만 보이상 걷느라 날은 무덥고 발은 퉁퉁 부어오르고 나이로 인한 체력은 견디기 힘들었다. 각자 알아서 돌아다닐 수 있는 자유시간을 줘서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일행이 6,7명이 되었고 , 점심때가 되어서 맛집을 찾는데 누군가 구글에서 유명하다는 Six Pence라는 레스토랑을 찾아서 그곳에서 유쾌한 점심을 먹게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둘러보니 일행들이 어디론가 흩어지고 나 포함 3명만 숙소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가던 중 일행 중 한 명이 '앗'하고 소리쳤다. 그녀는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미국의 지방 소도시의 도서관 앞에서 100달러짜리 지폐를 주운 것이다. 잃은 사람은 아마 도서관을 찾은 학생일 수도 있고 관광객일 수도 있는 그 가련한 사람의 슬픔을 헤아리기도 전에 외국에서 돈을 주운 사람은 지금껏 한국에서 천 원짜리 한 장 횡재한 경험이 없는 자라 갑자기 나타난 행운에 어쩔 줄 몰라했다. 나를 포함한 다른 한 명은 같이 다시는 사람들이 복이 많아서 네가 그런 행운을 얻게 된 것이라고 옆에 붙어서 행운이 있는 자와 같이 어울려야 행운이 생긴다는 것을 계속 강조했고, 그 덕에 기념품 가게에서 20달러치 티셔츠 4개를 얻게 되었고 그중 한 개는 또 다른 교육생에게 선물로 줬다.
테라핀 브루어리는 2002년에 세워진 애선스 시 로컬 맥주를 만드는 곳으로 1인당 입장료를 내면 브루어리 내부를 구경하고 덤으로 다양한 맥주 8잔까지 마실수 있는 쿠폰과 무료로 가져갈 수 있는 유리컵을 준다. 그 쿠폰으로 양껏 다양한 로컬 맥주를 맛보느라 기분이 업된 상태로 돌아왔다. 8가지 맛은 전부 다양한 이름으로 그에 상당하는 이름을 가지고 있고 대부분 고급스러운 독특한 향이 깊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레스토랑에서도 판매되는 맥주 중 테라핀이 제일 비쌌다. 보통 10달러 정도 했지만 마셔보면 그 가격만큼 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내 입맛에는 맞았다. 주변의 여자 교육생 중 나만큼 맥주를 즐기는 사람은 없고 여자 교육생 대부분은 한국에서 주로 소주를 즐겨하던가 아니면 아예 술을 먹지 않던가 하는 부류로 나뉘었다. 정말 내가 얼마나 재미없는 생활이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본사가 있는 CNN, 코카콜라, 조지아 아쿠아리움 역시 빠질 수 없는 방문지였다. CNN 1층은 푸드코트와 기념품 가게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방송국 견학하려는 사람들로 실내는 엄청 붐볐고 음식 주문하는 줄도 길어서 제일 짧은 줄을 찾아서 대충 끼니를 때워야 했다. 개인적으로 몇 달러씩 받은 것으로 제일 짧은 줄을 찾아서 음식을 주문했는데 음식에 대해 잘 모르고 영어도 능숙하지 않아서 제대로 주문했는지 의문이 들었고 먹은 후에도 먹은 거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운 좋게 어떤 팀은 유기농 푸드코트에서 테이블까지 차지하고 식사 같은 식사를 하고 대단히 만족스러웠다고 했다. 그 외 방송국 안엔 프로그램 출연하기 위한 온갖 코스프레 복장을 한 다양한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방송국 투어를 시작하기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대기석으로 갔더니 상당히 말이 빠르고 익살스러운 안내원이 홍보물품 팔듯 요란하게 안내를 시작했고 미니 영화관 같은 어두운 좌석에 일정수의 관람객이 앉게 되자 그는 곧바로 CNN이 어떤 약자냐고 아는 사람 있냐고 물어보았다. 우리 교육생 한 명이 손을 들고 " Cable New Network "라고 말했다. 그걸 맞춘 교육생은 5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토익 900점대를 유지하고 있었고 10년 전 미국에서 1년간 연수한 적 있고, 항상 귀에 이어폰을 끼고 영어공부에 몰두하던 사람이었다. 영어를 어느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도 그와 같은 꾸준함과 의지력, 집중력 또한 요구됨을 다시 한번 깨달았고 영어공부에는 나이가 없다는 사실을 그가 증명해 준 셈이었다. CNN과 코카콜라, 급하게 아쿠아리움을 본 강행군한 후에 미국 인권 운동의 선구자인 마르틴 루터 킹 목사 기념관으로 이동했다. 시간이 늦은 터라 기념관은 닫힌 상태였고 입구 꺼지지 않는 불 근처에서만 사진을 찍어야 했다.
I have a dream today!
I have a dream that one day every valley shall be exalted, and every hill and mountain shall be made low, the rough places will be made plain, and the crooked places will be made straight; "and the glory of the Lord shall be revealed and all flesh shall see it together."
스톤마운틴은 애틀랜타 동쪽에 위치한 곳으로 인공호수, 숙박 등 각종 레저시설이 있는 곳으로 거대한 바위산이 유명하다. 바위산에 어떻게 조각을 했는지 남북 전쟁 때 싸운 남쪽 군인 영웅 제프슨 데이비스, 로버트 리, 토머스 잭슨 장군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케이블카로 정상까지 올라갔다 내려온 후 바위산 전체를 도는 열차를 운 좋게 잡아 타고 도는데 창밖으로는 오로지 자연 그 데로의 바위와 산 나무들 그게 전부였다. 종점 부근에는 오래전 그곳에 있었음직한 주택과 식당 모형들과 아주 오래전 운행했었던 운행열차의 모형도 전시해두었다. 아주 오래전 월든의 저자 소로우가 살았던 그곳이 바로 이런 곳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오로지 자연 속으로 마음을 맡기고 행복한 기분으로 순환열차가 한 바퀴 돌아 시작점에 도착한 순간 강렬한 허기가 느낀 건 나뿐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가 저녁으로 먹을 남부 전통음식이 준비된 바베큐장으로 서둘러 발길을 움직였다.
그 장소에는 이미 한인 유학생 몇몇이 미리 바비큐 요리를 준비 중이었다. 머릿속으로 '야 맛있겠다, 뭘 먹지?' 하며 이런저런 잡스런 생각들을 하며 허기와 피곤에 지친 나를 포함한 몇몇이 정신을 잃고 한눈을 파는 사이 놀랄만한 일이 눈앞에 펼쳐졌다. 주변에 서 있었던 교육생들이 보이지 않았다. 나를 포함한 4명이 잡다한 생각과 별 내용 없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사이에 모두 어느 사이에 야외 나무 테이블에 앉아서 통통 살이 오른 새우요리를 조용히 먹고 있는 것이다.
그것에 아연실색한 우리는 순간 눈 깜짝 한 순간 일어난 일이라 우리도 하나라도 더 먹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서둘러 빈 테이블에 가서 또 다른 새우가 구워 나오길 기다렸으나 새우는 빨리빨리 나오지 않았고 스테이크도 금방 구워 나오지 않았다. 지나친 허기 앞에서 각자 누굴 챙기고 할 겨를이 없이 다들 먹는데 바빴다. 소량의 스테이크와 새우가 홀라당 없어지자 소고기 바베큐가 익었는지 보러 간 사람들 하나둘 돌아오지 않았다. 바베큐 굽는 화로 옆에 서서 한점 두 점 먹느라 우리 테이블에 고기를 가져올 생각을 안 한 것이다. 지금도 스톤마운틴만 생각하면 아쉬운 새우와 바베큐가 떠오른다. 우리 넷을 뺀 나머지가 눈 깜짝할 사이에 모두들 조용히 또 그렇게 우아하게 먹고 있는 광경과 살이 통통 오른 남부 전통음식인 새우요리와 숯불에 맛있게 구워진 스테이크들은 내가 태어나 지금껏 먹은 고기양을 훨씬 능가한 것이었다. 그날부터 모두의 다이어트 계획은 어긋나기 시작했으며 , 아니 미국으로 온 후에 다이어트는 실패한 계획이나 나름 없었다.
식사를 마친 후 각자 받은 레이저봉을 들고 무료로 무한 리필되는 음료와 팝콘 가까운 곳에 자리 앉아 어둠이 깔리면 시작되는 바위산의 레이저쇼를 기다렸다. 장군들의 암각화가 없었더라만 더 잘 보일 텐데 했지만 그 위치가 중앙이라 그 위치에 빔을 쏘는듯했다. 웅장하고 바위산 전체를 울리는 듯한 음악이 레이저쇼가 진행되는 내내 흘러나왔다.
남북전쟁 이전의 미국의 상황, 미국을 상징하는 미키마우스, 코카콜라 등 현재 미국을 상징하는 모든 것들을 레이저 쇼로 보여주었다.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본거지였기에 무엇보다 미국의 우월성을 한껏 나타내는 쇼였다. 모두들 관람 후 돌아가는 길에 길게 남은 어떤 여운을 느꼈고 미국이라는 나라가 지금 이렇게 형성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10부에서 계속)